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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랑 Jan 07. 2020

우울의 시작은 사소하다


2014년 10월.


첫 사회생활인 마케팅 회사 인턴을 시작한 지 절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 사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휴학하고 인턴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아이들은 모두 학교를 다녔다. 한 친구는 대학 생활의 고충을 토로했다. 수업을 따라가기 벅차고, 주변 동기들이 학점을 위해 매일같이 공부해서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과제가 많은 데다 공부까지 해야 하는데 돈도 없어서 죽을 맛이라고. 다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시험 기간까지 겹쳐 많이 예민한 상태였다.


나도 인턴을 하며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너무 긴 통근 시간도 그렇고 직장 생활을 처음 체험하는 거라 적응해야 할 것도 많았다. 사수님께 첨삭받은 원고에 빨간 흔적이 많을 때는 내 능력을 의심했다. 작은 지적 사항이 하나하나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나 총체적으로 나란 인간에게 실망감이 컸던 때였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돌아오는 말은 일관적이었다. “그래도 레포트는 안 쓰잖아?”, “그래도 돈은 벌잖아?”, “그렇구나. 근데 나는…” 이야기는 매번 ‘근데 말이야, 나는’식의 ‘우울 배틀’로 이어졌다.


누가 더 수면 시간이 적은지, 누가 더 힘든 일을 헤쳐 나가는 중인지, 누가 더 불쌍한지 겨뤄 보는 싸움. ‘나는’으로 시작한 발화는 자꾸 ‘힘들다’, ‘우울하다’로 끝났다. 나의 고통을 이야기해 봤자 돌아오는 건 그에 대한 위로라기보다 우울한 반격일 뿐이었고 나는 이에 맞서며 우울 배틀 2차전을 시작했다.


상대의 우울 공격에 반격할 소재를 생각해 내기 위해 안달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니 더 우울해졌다. 서로 위안받으려고 대화하는 건데 대화할수록 슬퍼진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 이야기는 접어 두고 상대의 투정을 인내심 있게 들어 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돌아오는 건 ‘너보다 내가 더 불쌍하지?’라는 듯 자기 말만 하는 상대의 매정함과 이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자괴감 그리고 이런 대화를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몹쓸 생각이었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은 힘들수록 남의 고민까지 다 들어 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 심지어 그 고민이 자신이 가진 우울보다 하찮아 보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늘 자기 떡보다 남이 가진 떡이 훨씬 커 보이는 법이다.


위 사건 이후 나는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머릿속에는 말해도 될 것과 말하면 상대방이 자신의 상황과 비교해서 ‘나보단 낫네.’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 섞여 있었다. 결국 선택되어 나오는 말은 진짜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곧 나는 내가 취할 최선의 행동이 침묵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음이 그렇게 변하자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든 그와 나 사이에 알 수 없는 벽이 쳐졌다. 그 기분이 너무 싫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벽. 이 사람 앞에서는 내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고 결정하는 기준이 현저히 높아졌다. 내 우울은 거기서부터 출발했고,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생각과 밑도 끝도 없이 막말하는 상담자, 나를 우선해 주지 않는 2년 된 남자 친구와의 이별로 증폭됐다. 그 겨울 내내 집에 박혀 자기혐오를 하기 바빴다.


“네가 뭐 그리 힘들다고 우울해해? 배가 불러서 그러지.”, “돈이 썩어 나니 정신병원엘 다니지.”, “그래도 네가 나보다는 훨씬 나아.” 우울했을 때 내가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이런 말들은 나를 두 번 죽였다. 그때 써 둔 글을 보면 참 가관이다. 우주 먼지보다도 못한 지구의 산소 낭비충. 그게 바로 내가 보는 나였다. 내 불안과 그에 따른 행동은 사실 아무런 상황도 초래하지 않는데 내가 앞으로 사람과 관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나를 휘감고 놓아주지 않았다.


난생처음 겪은 우울과 자기혐오라는 마음의 대장정은 내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도 우울 배틀을 하지 않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 주는 다른 남자 친구의 등장으로 잠시 끝을 맺었다. 사실 지금 와서 당시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면 나와 자신을 비교하고 저울질하는 사람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 주는 사람이 더 많았다. 우울이 무서운 이유는 나를 좋아하고 아껴 주는 사람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때 생겨난 우울은 간헐적으로 찾아와 종종 나를 괴롭힌다. 가신 줄 알고 방심하면 고개를 쳐든다. 그리고 요즘도 내 깊은 감정을 남에게 잘 말하지 못한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내가 늘 잘 사는 줄 안다.


가끔 친구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다 들어 줄게.”, “나한테는 얼마든지 의지해도 좋아.”라고 말한다. 진심으로 고맙고, 나는 그들의 존재 자체로 의지가 된다. 그래도 입을 잘 열진 않는다.


일이 있으면 그냥 글을 쓴다. 글은 말이 없지만 나를 책망하지도 않는다. 글을 통해 그저 조용히 혼자 사태를 정리하고 자아 성찰을 하며 나아가는 것이 편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내 성향 때문에 나와 멀어진 친구도 있다. 그럴 때마다 또 내 잘못 같아서 속세와의 연을 끊고 혼자만의 동굴로 몸을 숨긴다. 언제부턴가 이런 내 모습에 그냥 체념하게 됐다. 멀어지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다 붙잡을 순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에서 우울증에 걸린 남편을 두고 아내 하루코는 말한다.     


츠레는 앞으로도 이 우주 감기와 계속 알고 지낼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밤도 새벽이 없는 밤은 없다. 비록 흐릴지라도 새벽하늘이 밤보다는 훨씬 밝은 법이다.


밤이 가면 낮이 오고 낮이 가면 또 밤이 오듯 사람의 마음도 유동적이었다. 행복이 지나가고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오면 그 변화의 순간을 받아들이고 담담히 주변을 둘러봤다. 캄캄한 어둠 속에도 반짝이는 별이 있었고 그러다 잠에서 깨면 또 새벽은 찾아왔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기복이 반복될수록 별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시작됐다. 머리로는 유유히 흘리는 법을 알아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나는 점점 더 고약한 웅덩이에 빨려 들어갔다. 내가 가진 가치관과 세상의 보편이 자꾸만 충돌하는 걸 느꼈기에.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갈등은 시작이었을 뿐이구나. 이 성격으론 꽤나 사는 게 쉽지 않겠다.


우울이 각성하는 계기는 사소하다. 하지만 그 뿌리가 어디까지 내릴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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