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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게릴라 Oct 23. 2019

습작의 시간

조용한 오후의 에세이


10살 터울 유일의 동네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앳된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가진, 공. 뚜렷한 이목구비와 강렬한 눈빛 때문에,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외모. 화려한 옷차림과 빨간 립스틱. 거침없는 솔직한 말투로 어딜 가나 주목받는 그녀.

오목조목 하지만 자칫 밋밋 해보일 수 있는 그냥 선한 인상에. 화장기 없는 얼굴. 깔끔한 옷차림. 어딜 가나 그저 평범한 사람. 주목받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나.

그녀는 빨강. 난 파랑.    

딱! 봐도 다른 색깔을 가진 우린 거침없이 다른 부류라 친구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각자 글을 쓰기 위한 공부와 습작 활동을 이어오던 우리는 어느 인문학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처음 그녀가 쓴 글을 읽었다. ‘철학’과 ‘사진’을 전공한 그녀의 글은 깊고 감각적이었다.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감정으로 복잡하고, 현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글을 직관적으로 흐르는 대로 쭉 써 내려간다. 순간의 감정과 느낌을 고스란히 옮겨 새기는 작업이 그녀는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발상이 떠오르면, 글을 쓰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나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글을 쓸 때, 먼저 글의 전체적인 구조와 스토리,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한다. 전체적인 맥락에 아귀가 맞고, 쉽게 이해되는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초고 이후, 적어도 3번 이 상 글을 고쳐 쓴다. 그것이 독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성격은 상처를 뚫고 나오는 방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날 것,

있는 그대로를 참 좋아하는 그녀는

상처 받고 피가 철철 흐르는 상태 그대로를 직시하고, ‘날 것’ 있는 그대로 상처를 직면한다.


반면 나는 극한 감정의 고조와 복잡한 상황의 몰입을 최대한 피하려는 방어기제가 있다.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는 일단 그 상황을 피하고 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돌아가 하나씩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정리의 도구는 당연 ‘글’이다.
이 것 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료해지기 위해서.


알 수 없던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정리되는 습작의 시간이 안겨주는 해방감이 좋았다.

반면, 그녀는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그것이 뼈아픈 상처에서 비롯된 정리되지 않은 문장일지라도 그 모두 자신이 걸어온 시간이기에.

참 아이러니하게도
글은 명료하지만,

실제 나는 아주 복잡하고 다채로운 사람인 반면,
글은 감각적이지만,

실제 그녀는 아주 굵고 직관적인 사람이다.

습작은

지나온 시간을 있는 그대로 드로잉 하는 일이다.

또한 걸어가야 할 시간을 채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글은 현재의 자신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자신이 이루고 싶은 성숙을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과 걸어가는 시간 사이에서

성실한 기록들이 모여 완성된 것이

바로, 오늘의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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