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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게릴라 Oct 24. 2019

살아가면서 한 번은, 하고 싶은 사랑을 하세요

조용한 오후의 에세이


신랑을 따라 마산으로 이사 간 친구를 9개월 만에 만났다. 잊을 만하면, 연락이 와서 1년에 한두 번씩은 꼭 만나게 되는 친구 은이. 대학시절부터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올 때면, 잊지 않고 오는 은이의 카톡. 드물지만 꾸준한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이어져 왔다.


6개월에 한 번, 1년에 한 번. 만날 때마다, 은이는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하나씩은 안고 왔다. 어느 해엔, 아주 오래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또 어느 해엔, 이직이 아닌 직종을 ‘출판’ 쪽으로 바꿔 처음 만든 책을 보내왔고. 어느 날은 동갑내기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을 한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리고 내 친구 중 1호 품절녀로 등극. 결혼을 하자마자 모든 일과 계획을 버리고 마산으로 훌쩍 떠났다.

마산으로 가자마자 은이의 모든 꿈과 계획은 올스탑 됐다. 은이는 오랫동안 ‘홍보팀’에서 일을 하다 ‘출판사’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는데, 그 경력을 소소하게 꾸려 E-BOOK제작이나 독립출판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도시에 나와야 일감을 구할 수 있는데 남편이 군 복무를 마치는 동안, 마산에 꼼짝없이 발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그래서 혹여 내가 모으고 있는 에세이를 엮어 독립출판을 하게 된다면 꼭 도와 달라 농담처럼 주고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번에 또 폭탄 소식을 안고 나타났다.


펑퍼짐한 옷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은이 배가 유독 볼록하다 했더니. 곧 만삭에 접어들어 몸조리를 하러 부산에 내려온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책도 그럼 못 만들어 주는 거야?” 먼저 묻는 철딱서니 없는 친구의 말에 “‘뿌리’ 때문에... 한 5년은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아” 아쉬운 웃음을 내어 보인다. 그리고 어루만지는 배를 보며, 너털웃음이 나왔다.


“이번엔 ‘뿌리’가 발목을 잡는구나” 잠재된 재능이 정말 많은 친구인데, 친구의 경력단절과 당장 앞에 놓인 내 일을 생각하니 한 숨 먼저 푹 ~ 나오고, 가슴으로 흘리는 눈물의 강이 흘러 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내 마음과 다르게 은이 얼굴은 오늘따라 더 뽀얗고 밝아 보였다.


“뿌리 깊은 사람이 되라고 태명이 ‘뿌리’야”

씩_ 웃으며 하는 말에 배 속 아가에게 미안해졌다. “뿌리야, 미안하다. 태어나면, 이모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어떤 삶을 선택하든 은이가 행복하다면, ‘뿌리’는 하늘이 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관과 생각이 참 많이 닮은 친구인데. 서른의 문턱에 너무 다른 삶의 국면을 맞은 우리. 그 이유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우리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은이는 아주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사랑 앞에선 항상 용감했고, 정말~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항상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많은 것을 내어놓았지만, 끝까지 나 자신을 지켰다. ‘나의 일’과 ‘나의 가족’과 ‘나의 삶의 터전’을 끝끝내 버리지 못해 사랑을 버렸다. 이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차이였다.


보다 안락하고 성숙해져 가는 친구의 삶이 부러우면서도. 사실, 나는 은이처럼 내 모든 걸 던질 자신이 아직도 없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꼭 한 번은 은이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긴긴밤_ 오늘은 며칠 전, 태재가 몽땅 연필이 다 닳도록 꾹꾹_눌러써 준 싸인의 글귀가 가슴에 맺힌다.    


“살아가면서 꼭 한 번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정말 하고 싶은 사랑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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