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을 발전의 동기로 삼고 나의 이야기를 써야 변화할 수 있다
“나는 왜 이런 것도 못하는 걸까?”
“내가 그때 이걸 하지 말고 그걸 했으면 한평생 이러고 살지는 않을 텐데…”
“그렇게 해야 하는지 누가 몰라서 그러나! 먹고사는데 바쁘니까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우리는 살다 보면 불만이 참 많다. 나 자신에게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집에 있으면 아내의 말에 기분 상하고 아이들의 행동은 성에 차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사는 꼴 같지 않고, 후배는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멍청이 같다. 여길 가도 저길 가도 온통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과 불만이 발에 걸리는 세상이다.
그런데 해결할 방법이 없다. 누군가 하나 없어져야 해결될 것 같기 때문이다. 뭔가 바꿔보자니 욕구가 막연하고 그냥 있자니 일상의 지겨움이 불만으로 터진다. 하는 일이 모두 시간 낭비 같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살다 죽겠다.”는 천하의 막말을 쏟아낸다. 그뿐인가? 설상가상으로 남의 집 떡은 커 보이고, 내 주변은 다 거지 같다. 불만이 많아질 때는 이런 말들도 많이 정제된 표현이 된다.
새로움에는 수고가 뒤따른다. 변화에는 의지와 태도와 행동, 그리고 기다림이 수반된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인맥도 만들어야 한다. 맘에 들지 않아도 이를 꽉 물고 기다리고 들어줘야 한다. 조금의 새로움을 수용하는 것도 이런데, 뿌리째 뒤집어 새롭게 한다는 변혁이란, 말해 무엇할까 싶다.
물론 이렇게 수고롭게 변화를 추구해도 시간이 좀 지나면 또다시 불만이 찾아온다. “이렇게 하지 말고 이게 더 좋았을걸…”, “이제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선택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타협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완벽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완벽은 매력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불만을 성장 조건 혹은 발전의 동기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저 최신 트렌드를 쫓아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남들이 열광하는 것을 생각 없이 따라갈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을 정성스럽게 들여다봐야 한다. 인생은 짧고 자원도 한계가 있다. 허망한 것을 쫓지 말고 당연한 것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인간은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마음은 자꾸 현실에 초점을 두지 못하고 저기 저 먼 곳을 향한다.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발전의 동기가 아니라 불만으로 보이니 눈여겨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먼 곳 자주 봐 바야 그건 나에게 오지 않는다. 내가 가야 하는데 가까이 있는 것들이 발목을 잡는다. 설령 그곳으로 가까이 간다 한들 그 주변에 늘어진 불만은 또 어쩔 것인가? 이러니 일상의 문제에는 무익하고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공허한 추측만 무성한 책만 읽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신기한 것에 눈 돌리지 말고 내 주변에 있는 당연한 존재를 눈여겨봐야 한다. 나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하나씩 모아 내 이야기를 써봐야 한다. 거기서부터 한 발짝 앞을 조망해야 이를 수 있다. 수고가 필요하다고는 앞서 말해 두었다. 수고를 각오해야 한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나를 이루는 또 다른 나의 일부인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감춰진 바람과 상처와 욕구를 발견해야 한다. 그들의 내면엔 분명 나와 관계된 불만 혹은 욕구가 있다.
그들과 관계가 깊어지면, 또 우리가 살고 있는 그곳을 잘 알게 되면 힘을 얻게 될 기회, 변화할 기회가 많아진다. 우리의 자아와 우리의 현실은 우리 자신도 다 이해하지 못한 많은 가능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쓰고, 주변 사람들의 욕구와 상처를 돌아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대행자가 아니라 주체자가 될 수 있다.
일을 개선하고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이제 우리는 먼 곳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우리 자신을 보다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현실과 더 깊은 관계 맺기를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힘이 되고 나에게서 진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바라는 자와 할 수 있는 자의 시선을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