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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야니 Oct 22. 2021

내가 가진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을 내놓을 때

까르마요가를 실천하라

어느날 아쉬람의 스와미지가 들려준 얘기다. 오래전 캐나다에서 스승을 모시고 히말라야의 깊은 수행처로 여행을 떠났다. 그 곳에서 중요한 의식이 있었더랬다.  전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정성스러운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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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당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정갈하게 옷을 입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덕지 덕지 기운 누더기옷을 입은 거지여인이었다. 여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여인은 스와미지가 걸치고 있는 옷을 가르키며 달라고 했다. 난감했다. 히말라야의 새벽 산은 몹시 추운 곳이었다. 그리고 스와미지가 입고 있는  주황색 옷은 산야시(세속을 포기하고 영적 길을 걷는 자)에게만 줄 수 있도록 계율에 정해져있었다. 스와미지는 망설이다 겨우 여벌의 다른 옷을 찾아 여인에게 주고 얼른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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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의식이 시작되려는 홀에 스와미지와 스와미지의 스승님과 많은 제자들이 모였다. 입구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그리고 아까 그 누더기를 걸친 거지여인이 다시 나타났다.  여인이 원하는게 무엇이더냐. 스승님이 물었다. 여인은 스승님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스승님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가 입고 있던 최고급 캐시미어로 만든 주황색 옷을 벗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여인은 빙긋 미소를 짓고 그 장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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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람에서 스와미지는 이 얘기를 들려주며 그 때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를 덤덤히 고백했다. 주저함 없이 옷을 벗어주었던 스승님은 그 거지여인이 바로 그 날 그 의식을 위해 찾아왔던 신이었음을 단번에 꿰뚫어보았던 것이다. 신을 향한 헌신(박티요가)과 이기심 없는 사랑의 행위(까르마요가)의 실천을 몸소 스승님은 보여주었다. 스와미지는 말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 때는 내가 가진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을 내놓으십시오. 내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중에서 고르지 말며,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 중에서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내주십시오. 그는 나 자신으로 하여금 나의 에고를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실천시켜주는 귀한 신의 현현입니다. "


아쉬람을 나오며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제주에 돌아가면 나는 꼭 까르마요가를 하리라. 결심을 하고 또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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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냐요가(지식의 요가/경전공부/자아탐구)와 라자요가(하타요가/아사나/명상)에 너무 집중해 에고가 한없이 높아졌던 나. 아쉬람의 박티요가와 까르마요가로 겨우 몸 마음의 불균형을 해소시켰던 터였다. 나 절대 속세에 휩쓸리지 않으리, 두 눈 부릅 뜨고 하산한 2020년 6월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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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르마 요가 원칙  **

1. 나는 행위자가 아니다. 나는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그저 도구이다. 신이 인간에게 쓰는 러브레터의 펜슬로 나 자신을 여기고 행하라.


2. 나의 행위에 대한 어떤 결과라도 그냥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3.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라.


4. 그냥 니가 해야할 일을 하라.


까르마요가는 돈을 받지 않는 단순한 봉사가 아니다. 돈을 받든 안 받든 나의 행위에 어떤 이기심 없이, 보상을 바라지 않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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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까르마요가를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지만 제대로 하고 있질 못한다. 가정을 위해 일하고 자식을 위해 사랑을 주지만 거기엔 항상 조건이, 기대심이, 결과에 대한 보상이 섞여 있다. 다 키워놓은 자식이 자신에게 효도하길 원하고, 뒷바라지 해주면 가족이 내게 고마워하길 바라며,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가 나오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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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가족과 자식이라도 있으면 사랑으로 어떻게든 까르마요가를 실천하며 산다. 나같은 혼족 수련자들은 가정을 이룬 분들보다 두배 세배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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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면 상대방도 그만큼 내게 베풀어주길 요청한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주며 나는 이 사람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신의 도구가 아닌 행위자가 되어 뭔가 좋은 일을 했다고 뿌듯해한다. <--다 틀렸다.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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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동안 아쉬람에서 까르마요가를 가르쳐도 90프로의 사람들이 그걸 제대로 못 한다. 청소, 텃밭일구기, 요리, 청소와 같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까르마요가의 실천에는 지금까지 해왔던 뿌리 깊은 습과 에고가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타요가를 하며 드롭백컴업을 50개씩 한들 뭔 소용인가. 하누만아사나에서 라자카포타를 하며 양손으로 발을 잡는게 뭔 대수인가. 원체 유연하게 태어났거나 몇년 빡시게 연습하면 된다. 머리서기, 어깨서기 30분 따위, 파드마 명상 몇시간 따위 세상 만고 다 쓸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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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마 요가 없이 쿤달리니는 단 1센치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경전의 말. 진리이며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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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산을 하고 제주로 돌아온 나는 일상에서 까르마요가를 제대로 실천....까지는 못하고 그냥 알아차리는 정도의 수련만으로도 벅차하며 맨날 낑낑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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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나는 최선을 다해 행위의 주체가 아닌 도구로 그를 도왔는가. 내가 가진 최선의 것들을 내놓았는가. 망설임이 있지는 않았는가. 거기에 대해 기대심이 있지는 않았는가. 그 결과에 집착해 잘 되었다고 좋아하고 잘 안되었다고 후회하지는 않았는가... 하아.. 진짜 어렵다.


그런데 동시에 아주 작은 사소한 실천이라도 영혼에 쌓인 업과 때가 아주 뭉텅이채 덜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작은 실천이 가져온 업으로부터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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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시고 7년을 괴로움에 떨며 그리움과 슬픔에 고통 받았다. 그러나 두번째 엄마라 여겼던 지난 8월 외할머니의 죽음은 달랐다. 그것은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 나는 아쉬람에서 배운대로 최선을 다해 까르마요가를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도 내 몸과 마음을 바쳐 간병했지만, 까르마요가의 4가지 원칙을 지켜 그 행위를 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7년을 울며 지난 엄마와 달리, 할머니의 죽음은 몇달이 지나도록 단 한방울의 눈물도 떨구지 않았다. 온전한 영혼의 죽음을 경배하게 되었다. 까르마요가가 아니고서야 그 어떤 수련이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좀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얼마전 집에 놀러온 친구가 장식용으로 전락한 내 DSLR을 보았다. 작년에 혹시 팔 생각 없냐고 묻길래 15만원 정도로 줄 수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난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번에 망설임없이 그 친구가 말도 꺼내기 전에 카메라용품을 바리바리 모두 챙겨 친구에게 주었다. 필요한 친구에게 내가 가진 것을 준다. 그 뿐이다. 호구냐고? ... 다시 위에 올라가 까르마요가 원칙 4개와 내가 하산할 때 무슨 결심으로 내려왔는지 읽어보자.  아니면 부장가아사나부터 수련하도록 하자. (하타요가가 기초인 건 맞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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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을 바라며 한 행동이 아니면 아닐수록 실제로 그 행동에 따른 보상은 반드시 몇 배로 더 크게 돌아온다. <--이걸 강조하면.. 까르마요가가 더 어려워지므로 아쉬람에서는 이런 얘긴 안한다. 그러나 많은 영성책이나 자기계발책이나 시크릿 같은 책에서 이런 말들로 독자들을 솔깃하게 유혹한다. 그리고 지극히도 그것이 진리임을 나는 여러번 경험했다. 하지만 강조컨대 절대 보상을 바라지 마라. 그럼 보상은 절대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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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DSLR을 준지 한달도 안돼 아버지가 나 쓰라고 새거나 진배없는 더 비싼 DSLR을 줬다. 이것봐라? 신기하군!! 생각했으므로 딱히 필요없었지만 받아왔다. 사진 찍는 또 다른 친구가 놀러왔기에 필요하냐며 서프라이즈!! 하며 가방채로 선물해줬다. (아빠 미안!. 하지만 그 친구가 나는 못 챙겨준 아빠 생일 선물도 챙겨준 그 친구얌 ㅎㅎ. )


에너지는 돌고 돈다. 사랑도 돌고 돌아야 사랑이다. 만약 내가 카메라에 애착이 있고 나한테 정말 더욱더 소중한 물건이었다면 좀더 신실한 까르마요가가 되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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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보니 좀더 애착이 있는 다른 예가 생각났다. 10년전 제주에 처음 왔을 때 돌아가신 엄마로부터 상속받은 차를 끌고 내려왔다. 중학교때부터 내가 커서 돈 벌면 엄마 새 차 사줄께! 약속을 했더랬다. 결국 승무원이 되어 제일 먼저 엄마에게 차를 사드렸다. 부모님이 승무원 딸이 사준 차라며 어찌나 신명나게 자랑을 했는지. 그런 차였기 때문에 그 차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그리고 에너지가 몹시 낮았던 제주 초기 정착 시절,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잠시 차를 빌려줬다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 차는 폐차되고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차값을 갚겠다던 그 사람은 그길로 잠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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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차 없이 제주에 살다 꽁쳐놨던 엄마의 부의금으로 새 차를 샀다. 그게 지금 타고 다니는 레이다. 그리고 결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차는 7년동안 남에게 빌려주거나 잠깐이라도 핸들을 맡기지 않았다. 이 얘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어려운 오랜시간의 트라우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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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우리 집에 요가를 하러 잠시 머문 어여쁜 요기니 수련자가 있었다. 가고 싶은 데가 근처에 있는데 차 없으면 가기 불편해서 잠시 차를 빌려줄 수 있냐며 수줍게 물었다. 아.. 그래 솔직히 3초. 그래, 난 딱 3초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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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키를 주며 조심해서 운전해 잘 다녀오라며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차에 대한 갖은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내 차를 폐차시킨 그 사람도 모두 용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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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긴 얘기를 이제는 미주알고주알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에는 차 생각만 해도 차 사고를 내고 잠적한 그 사람과 차를 빌려줬던 어리석은 나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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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 나로 하여금 이 모든 상처를 씻어내게 해준 이는. 내게 차를 빌려달라고 한 그 순한 눈망울의 요기니의 얼굴을 한 신이다.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내어주며 까르마요가를 행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고통으로부터의 치유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 모두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모두를 신으로 여기기로 했다.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준 사람들도 현현한 신이다. 베품으로서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고 기세등등한 에고를 무릎 꿇여주는 고맙고도 고마운 살아있는 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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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마 요가를 실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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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경전과 영성책에서 말한다. 너와 나는 분리되어있지 않은 하나라고. 참나는 이미 풍요롭고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고. 참나는 사랑으로 가득찬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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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덮는다. 밤마다 나는 결가부좌를 짜고 촛불을 켜놓고 보석을 양 손에 쥐고 몇시간이고 만트라를 외며 수련을 한다. 새벽에 일어나 부장가아사나를 30분 유지하고  드롭백 컴업을 수십번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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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가원을 나서서 내 차를 가로막고 불법주차를 한 차를 보고 인상을 쓰고 화를 낸다. 마침 전화가 걸려왔는데 별로 친하지도 않은 누군가가 내 도움을 뻔뻔하게 요청한다. 어이가 없다. 집에 돌아가니 함께 사는 이가 내가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도 아직까지 거실 부엌을 어질러놓고 치워놓질 않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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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보시라. 까르마요가의 실천없이 일상에서 여전히 "너"는 "너"고 "나"는 "나"에 불과하다. 그래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33센치의 여정은 이토록 멀고도 지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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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마 요가를 실천하라.

까르마 요가 없이 쿤달리니는 단 1센치도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머리로 배우고, 몸으로 익힌 그 모든 수련들은 까르마 요가 없이는 모두 제로, 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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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내가 그토록 무지했던 시절에도 얼마나 많은 신들이 나의 고통을 치유하고 깨달음을 돕기 위해 다가왔던걸까.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또는 미움을 통해 내부의 자비와 사랑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그 신들을 나는 얼마나 야멸차게 내쫓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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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지푸라기처럼 내 손에 잡혀 나로 하여금 까르마요가를 실천하게 해준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또 감사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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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부디,

지금 바로 까르마요가를 실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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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나마시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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