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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Sep 30. 2023

사적이지 않은 여행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내게 여행이란 너무나 사적인 행위였다. 그 숱한 여행을 혼자 다녔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물론 아프리카 종단, 네 번의 유럽 여행, 셀 수 없을 만큼의 아시아 유랑 내내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가끔은 예기치 않은 동행을 만나기도 했고, 그래서 상상하지 못한 즐거운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혼자인 게 더 편했다. 내 여행은 어디까지나 내 의지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혼여행은 처음으로 떠난 동행과의 여행이었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와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는 게 처음이었던 터라 몇 번의 투닥거림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신혼여행은 꽤 즐거웠다. 그래서 신혼 기간 내내 아내와는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출발부터 귀가까지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에 익숙해지자 아이들이 생겼다. 아이들이 성장하자 미취학 아동들의 수발을 드는 일정(여행이 아니다, 결코!)의 난이도가 점차 낮아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가족들과의 여행도 종종 성사되기 시작했다. 게임으로 치면 레벨업 단계를 밟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이 역시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우리 가족들이 여행지에서 만나는 다른 가족들은, 보통 아내 친구들의 가족이었다. 결혼 전부터 몇 번 인사를 나누었던 터라 그리 어색하지 않은 사이라는 게 함께 여행을 도모하는 가장 큰 이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있는 덕분에 아이들은 한 방에 몰아넣으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놀 수 있다는 것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때문에 남편들끼리 외교적 대화를 통해 어색한 시간을 채우다 보면, 아내들은 대학 동기로 변해 그동안 못 나누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루 이틀을 무난하게 넘기게 된다. 이럴 때는 내 여행 경험 따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기에 그저 애들이 놀다 다치지 않게 잘 돌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가와 처가 가족들과의 여행도 몇 차례 진행됐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사촌들만큼 적당히 낯설면서 적당히 친근한 상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작은 아빠네 식구나 외삼촌네 식구와 함께하는 며칠도 평소 경험할 수 없는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조합의 여행 역시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좁은 영역에 한정됐다. 식당의 위생이나 접객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거나, 동선상 돌발상황이 발생할 때 가장 먼저 나서거나, 환자 혹은 컨디션 저하자 발생시 찾아갈 병원이나 약국을 미리 알아두는 것 따위. 쉽게 말해, 하거나 말거나 크게 상관없는 일들이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들에 대한 대비였다.     


대가족 여행 시 신경 써야 할 일이 이렇게 사소한 데에 집중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것 말고는 딱히 신경 쓸 게 없으니까. 본가의 경우 우리 부모님, 처가일 경우 장인 장모님께서 동행하시게 되는데 이럴 경우 여행 코스는 가장 유명한 곳 위주로 채워 넣으면 된다. 어른들이 유명한 곳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은 70대 이상여행객의 이동 편의를 고려한 시설과 동선으로 구성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 곳에서라면 아이들이 힘들다고 징얼거리거나 위험 요소로 인해 다칠 가능성도 낮아진다. 다시 말해, 유명한 곳들만 돌아보는 건, 기대 이상의 놀라움보다는 보편적인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는 일정이 된다는 뜻.      


이제는 각자의 아이들에게 아빠 노릇을 하고 있는 내 친구들과의 여행도 도모한 적이 있긴 하다. 아직 그 여행이 계획단계에서 머물고 있는 이유는, 뒤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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