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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Sep 30. 2023

실패하지 않았기에 성공한 여행도 있다

제1차 온가족 여행

여행 중 가장 어려운 여행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기준이라면 인도, 중남미, 아프리카 같은 곳들에서 진행되는 여행일 것이다. 환경과 치안이 여행자 친화적이지 않은 곳들. 아울러 사회 인프라가 언제나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보장을 하지 못 하는 곳들이기에 다양한 변수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일정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무엇보다 무겁게 만든다. 그래서, 돌아온 후에는 거기에서 무얼 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는 경우도 있다. 17년 전, 40일에 걸쳐 종단했던 아프리카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내가, 2022년 가을 경주에서의 2박 3일에 대해 뒤죽박죽인 기억을 갖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 여행은 거의 대부분 혼자였다. 결혼 이후에야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던 내게 세 가족, 열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여행을 계획하는 일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세 가족의 성향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부모님 : 아버지는 여행 회피형, 어머니는 여행 선호형. 두 분이 이곳저곳 잘 돌아다니셨지만 100% 어머니가 운전을 하고 아버지는 동승하는 형태. 아버지는 2시간 이상의 여행을 가급적 피하시는 성향.      

우리 집 : 부부 모두 여행 선호형. 여느 아이들처럼 장거리 이동을 싫어하는 아들 둘이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낯선 곳을 좋아하는 성향.     

동생네 :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여행을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인 내 동생. 제수씨와 두 아들들 역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기호를 파악하지는 못 했던 상황.     


이런 가족들이 경주로의 여행을 계획하게 된 건, 통영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제안이 시발이 됐다. 역귀성임에도, 설이나 추석이면 왕복 15시간씩 서울을 오가는 게 너무 고단한 일이니, 중간에 만나 미리 명절을 보내자는 말씀이었다. 마침 그 제안을 하신 게 가을 초입이었고, 가을은 단풍이 좋고, 단풍은 경주가 좋으며, 경주까지는 KTX 타면 세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는 귀납적 대화 끝에 온 가족이 한 달 뒤 경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래, 일이 되려면 이렇게도 되는 법이지. 그럼 이제 계획을 세워야 했다. 물론 그 계획은, 한 번도 장남 노릇을 하지 않고 40년 이상 살아온 여행 전문가인 내 몫이었다.      


1) 콘셉트 : 70점만 넘기면 잘한 거다

총 인원 10명. 부모님은 70대, 아들 며느리들은 40대, 아이들은 10살 전후. 이들 중 성인 기준 여행 선호자와 비선호자는, 드러난 것으로만 판단하자면, 3:3. 이럴 때는 여행 선호자의 기호에 맞추면서 비선호자도 불평하지 않을(사실 불평할 사람은 어딜 가도 불평을 하기 마련이지만) 유명한 장소들 위주로 일정을 계획해야 한다. 항상 모든 인원이 동시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취향에 맞춰 다른 곳을 방문할 A팀, B팀을 구성하는 것도 염두에 뒀다. 

부모님의 체력 안배도 중요하지만 귀가 후 주위 사람들에게 “거기가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긴 하더라니까”라는 이야깃거리 겸 자랑거리를 만들어드리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 경주의 유명 유적지는 교과과정 중 한 번 이상 등장하는 곳들이 많으니,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교외체험학습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래서,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설명해줄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나 역사적 사실들도 몇 개는 외워야 했다. 항상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은, 누군가의 100% 만족을 위하는 게 아니라 될 수 있으면 더 많은 가족들에게 “그래도 이만하면”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여행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2) 협의 : 여행이 필요 없다는 사람과 여행을 계획하는 법

부모님께 현지에서 드시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곳을 미리 여쭤봤지만 “첫 온가족 여행”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즐거우신 상황. 무엇보다 “니가 잘 알 거 아냐?”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 말씀처럼, 나는 이미 경주를 셀 수 없이 많이 다녀왔던 터였다. 그래서 세세한 사항들은 동생과 협의하기로 했지만, 여행 비선호자가 아니라 여행 무용론자에 가까운 동생은 내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나중에 가서 다른 말 안 하는 것도 동생의 성격이었기에, 아내와 둘이 동선을 짜는 게 홀가분했다.

여행을 준비하는 사이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 아내와 통화를 하게 된 제수씨는 무척이나 신이 난 목소리로 “형님, 이렇게 멀리 여행 가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가을 경주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었거든요!”라고 했다는 거였다. 빈말이 아니었다. 제수씨는 평소 꾸밈 없는 성격의 소유자인 걸 온 가족이 모두 알고 있었다. 그동안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던 건, 장거리 이동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덕분에 경주에서의 일정을 짜는 게 조금은 즐거워졌다.      


3) 숙소 : 편한 사람들끼리 자는 게 편하니까

펜션은 애초에 제외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뭔가를 해먹어야 한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하고, 먹고, 치우는 데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법. 식사는 모두 사 먹기로 했으니 굳이 펜션일 이유가 없었다. 감성 숙소니 뭐니 하는 곳들도 여행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럴 때는 전문 인력이 관리하는 대규모 숙소가 여행의 편의 증진에 가장 적합하다. 무엇보다 숙소에서 돌발상황 발생시 수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력이 있는 곳이어야 안심할 수 있는 인원 구성이었다. 

10명이 한 방에 묵을 수는 없는 일. 그렇다고 가족끼리 방을 한 개씩 잡기에는 경제적인 면도 고려해야 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이 밤이 되면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는 것도 여행의 목적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을 콘셉트로 잡았다. 즉, 부모님과 나와 동생이 한 방을 쓰고, 아내와 제수씨 그리고 아이들이 한 방을 쓰는 형태였다. 며느리들과 함께 계실 때면 평소와 다른 복장 규정을 준수하느라 고생인 아버지가 이 제안을 크게 반기셨다. 어머니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재밌게 놀 수 있고 아들들은 오랜만에 곁에서 지내게 되니 좋아하셨다. 두 며느리의 의견은 굳이 묻지 않아도 괜찮았다.     

 

4) 음식 :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는 법

솔직히 이야기하자. 경주에는 맛있는 대표 음식이 없다. 경주를 방문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었다. 천년수도인데 왜 맛있는 게 없을까. 경주시청과 경주 소재 각종 공기관, 그리고 몇몇 종가집을 방문해 경주 토박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슬쩍슬쩍 “경주는 뭐가 대표 음식인가요?”라고 묻곤 했지만, 마주 앉은 분들은 “허허허” 하고 웃거나, 난처한 표정을 짓거나, “허허허” 웃으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바다가 있고, 그중에서도 가자미가 유명하긴 하지만 통영에서 10년 넘게 살아온 내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아니었다. 한우? 규모가 큰 고깃집을 하시는 제수씨의 부모님, 그러니까 사돈 내외분 덕분에 동생은 “한우 그거 지겨워”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쌈밥거리가 유명하긴 하지만, 전북 전주가 고향인 어머니 눈에 찰 가능성은 낮았다. 물론 황남빵이나 찰보리빵 같은 것도 있지만, 고단한 하루를 마친 모두가 둘러 앉아 빵과 우유를 먹는 모습은……

그래서 가급적이면 먹는 데에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모두가 함께하는 첫날 저녁은 이것저것 늘어놓고 먹기로 했지만, 그마저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에 무난한 족발, 우리집에서 가져갈 방어와 광어회 세 가지면 충분했다. 다음 날 아침엔 나와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나가 해장국을 먹고, 점심은 적당한 식당을 물색하기로, 저녁은 상황에 맞는 메뉴를 선택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 두 번의 아침 식사 역시 그때 그때 맞춰서 선택하는 걸로. 경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는 없으니까.      


5) 일정

음식과는 다르게, 갈 곳에 대한 선택의 폭은 너무 넓어 고민일 수밖에 없는 곳이 경주다. 그래도 유명한 곳 위주로 동선을 구성하면 큰 고민은 덜 수 있다. 우선 권역을 나누어 보자.      

➀ 숙소인 보문단지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첨성대와 계림, 오릉, 천마총 등

➁ 토함산에 위치한 불국사와 석굴암

➂ 토함산에서 동해 쪽으로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삼층석탑

➃ 물론 좀 더 다양한 경주의 모습을 체험하려면 양동마을이나 양남 주상절리도 좋은 선택이 되겠지만, 시간과 체력은 한정돼 있는 법     

- 이 정도면 2박 3일 동안 차고 넘치는 코스를 구성할 수 있다. 다만 쉼 없이 돌아다니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중간중간 카페에서 잠깐 쉬는 시간을 넣고, 가급적이면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도 좋다. 우리는 황남대총, 대릉원 길건너에 위치한 신라대종 타종 체험을 예약했는데, 선덕대왕신종을 정교하게 복제한 종을 직접 칠 수 있는 기회였던 터라 아이들의 만족도는 꽤 높았다. 타종할 때는 신라 의상을 입을 수 있기에 엄마들의 “인증샷”용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고. 경주공공서비스예약 시스템(wel.gyeongju.go.kr)의 체험신청 항목을 통해 예약이 가능하니 자신의 일정과 맞춰 보는 게 좋겠다.      

이러한 계획 아래 우리 가족 10명의 2박 3일은 다음과 같이 지냈다.     



- 세세한 계획 없이 시작됐던 경주 여행을 정리한 게 저 일정표. 원래는 큰녀석도 물놀이를 하려 했지만, 출발 당일 아침에 콧물이 나오는 바람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전화위복인지, 큰녀석은 박물관을 싫어하는 동생의 방해 없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신라 유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고 한다. 부모님께서도 실물 유물들이 그렇게 아름다울지 몰랐다고 감탄하셨다. 아울러 손자 중 한 명이 박물관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학구적인 모습을 보여드려 굉장히 뿌듯해하셨다. 

- 2일차 오전 중에 불국사부터 감은사지까지 모두 돌아보는 것은 무리였던 터라 석굴암을 나와 점심식사를 했다. 불국사 인근의 관광객들 대상 식당에서의 식사였는데, 한 차례 손님이 빠진 뒤 들어간 덕분인지 갓 지은 밥이 나와 모두 만족하는 한 끼가 됐다. 가급적이면 피크 타임을 비켜가는 게 팁이라면 팁이지만, 성수기에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기도 하다.

- 각 포인트별 이동 시간은 30분에서 40분 사이. 나와 동생이 각각 두 대의 승용차를 운전했는데,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차량별 인원 구성을 바꿨다. 덕분에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아빠 작은 엄마, 사촌들과 이런저런 놀이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지루해하지 않았다.      

- 주차비를 여유롭게 예상하는 게 좋다. 특히 시내권의 경우 우선 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상황인 경우가 많으니 유료인지 무료인지 따지지 않고 자리가 있다면 우선 차를 세웠다. 경주는 서울 및 광역시보다 주차요금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니, 돌아온 후 벌금 통지서에 속상해하는 것보다 안전한 주차장을 찾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다. 

- 원래는 마지막 날 아침 첨성대-계림-천마총을 온 가족이 함께 방문하려 했지만, 제수씨께서 코로나 양성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동생네 가족은 일찍 상경했다. 남은 가족들도 일순 긴장을 하긴 했지만, 증상이 없었을뿐더러 자가진단키트에서도 음성이 나왔던 터라 계획된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다만 부모님께서도 점심 식사는 드시지 않고 KTX에 탑승하시기로 해 결국 경주에서의 마지막 한 끼는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끼리만 먹었다. 마지막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일정 대부분을 소화한 후 일어난 돌발상황이었기에 불행 중 다행이었다. 


가을 경주가 좋긴 참 좋다.


6) 아이들 관리

- 삼대가 함께하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아이들이다. 부모님보다 아이들이 귀해서 그런 게 아니다. 이 녀석들이 지치거나 일정에 흥미를 잃게 되면 칭얼거림이 발생하고 모든 일정이 짜증으로 가득 찰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잘 놀고 잘 웃고 잘 먹으면 어른들은 그것만으로도 다 함께 모인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어린이들 관리는 여행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 아이들 상태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건 딱 하나다. 무엇인가를 제때 공급하는 것. 끼니 외에도 적절한 타이밍에 달콤한 간식을 먹이고, 유적과 관련된 아이템을 선물해주는 것이 대표적이겠다. 그래서 아내는 가방에 초콜릿을 상시 휴대하고 있었고, 대형 관광지에서는 몇 가지 소품 구입을 통해 아이들의 텐션을 끌어올렸다. 아이들이 지칠 무렵이었던 계림에서는 영상과 사진을 통해 선덕대왕신종을 보여주며 “좀 이따 이렇게 큰 종을 직접 쳐볼 거야”라는 말로 남은 일정에서의 파이팅을 이끌어냈다.     


바다와 돌만 있어도 즐거운 아이들 덕분에 어른도 즐거울 수 있다.


7) 결산

- 우리의 여행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아니, 크게 다투거나 짜증내는 상황이 없었으니 무난함을 넘어서는 여행이었다 평가해도 되겠다. 각자의 불편함을 모두가 조금씩 참아준 결과였다 생각한다. 너무 교과서적인 이유라 할 수 있겠지만, 실제가 그랬으니 달리 비결을 찾을 방법도 없다.

다만 신라대종을 치기 위해 기다리던 중 발생한 관리자와의 ‘사소한’ 분쟁 때문에 경주시청에 ‘사소한’ 민원을 제기하려 했지만, 아이들이 워낙 좋아했던 터라 묻어두기로 했다. 마지막 일정이 좋으면 모든 게 좋게 기억되는 법이니까.

- 식사는 정말 간소하게 했다. 이틀째 저녁은 모두 피곤했던 관계로 햄버거와 김밥을 포장해 와 먹었는데, 각자 편한 대로 편한 곳에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정한 지역의 특정한 음식이 갖는 의미가 많이 퇴색된 시대에 살고 있으니, 여행지에서 음식에 대한 비중이나 기대를 조금만 낮춰도 전체 여행이 훨씬 여유로워진다. 정 미련을 떨칠 수 없다면 “본점”이나 “원조”에 대한 욕망만 조금 떨쳐내도 괜찮다.      


큰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겼던 여행이지만, 내 기억에는 그다지 선명하게 남아 있질 않다.


8) 후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여행은 내가 경험한 그 어떤 여행보다 힘들었다. 여행사의 인솔자 자격으로 따라간 홍콩에서 고객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뛰어간 경험도 있지만, 세렝게티 초원 수렁에 빠진 트럭을 밀다 수풀 속 사자와 눈이 마주친 적도 있지만, 2022년 11월 경주에서의 2박 3일이 더 힘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경주에서의 모습들은, 이제 와 다시 떠올리니, 대부분 편린들이었다.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뜻. 그래서, 이 원고를 쓰는 동안 아내에게 여러 번 확인과 검수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그 수 많은 여행에서의 다양한 순간들을 세밀하게 기억하던 내가 이런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보고, 아내 역시 적잖은 혼란을 느꼈다고 한다. 그만큼 그 2박 3일이 내게는 다시 없을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잘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한 번 해야 할, 그것도 제대로 해야 할 일을 그리 부끄럽지 않게 해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 가족들에게 그럭저럭 즐거움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 역시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사전에 정해두었던 세 가지 요소가 70점을 목표로 했던 여행을 90점짜리로 만들 수 있었다. 만약 대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다음의 세 가지를 기억해두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면, 훨씬 홀가분한 여행이 될 수 있다.     


① 가급적이면 취사가 불가능한 숙소를 선택하고, 가급적이면 편한 사람들끼리 한 방을 쓰도록 한다. 이때, 아이들을 포함한 쪽이 사용할 방을 최대한 큰 것으로 잡으면 모두 모여 앉기도 편하고 아이들 단속하기도 좋다.  

② 모든 일정을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여러 가족이 차를 갖고 모인다면, 몇 개의 선택 관광지를 두고 취향에 맞게 흩어진 뒤 정해진 시간에 모이도록 하자. 원하는 곳에 간 사람들끼리 더 돈독해지고, 돌아온 후에 이야기를 나눌 소재들도 훨씬 더 다양해진다. 식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 좋아하는 메뉴가 다를 경우에는 식사 후 다시 만나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③ ‘특산’ ‘제철’이라는 타이틀을 제외하면 메뉴 선정에 대한 고민이나 지출부담도 낮출 수 있다. 물론 “기왕에 왔는데”라는 생각에 모두 합의한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하는 것도 한 방법.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걸 굳이 여기서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에서도 못 먹을 음식을 찾는 게 더 힘든 시대가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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