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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류보쌈작전 Feb 25. 2018

청춘의 자살

마광수 <청춘>

<아프니까, 청춘이다> 무색하게 들리는 이 말. 청춘이라고 꼭 아파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프다고 견뎌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청춘은 그저 청춘이고 허망한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끝이다. 그뿐이다. 청춘은 표면적으로 더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청춘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랑, 추억, 고독, 죽음, 권태, 같은 수식어들이 뒤따르고는 한다. 마광수는 이런 감정들을 깊이 파고들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어쭙잖은 말 대신 진정한 청춘의 의미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절실한 위로를, 누군가는 비감 어린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서정적인 소설로 말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그 어떤 수식어도 없는 <청춘>이다. 굳이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우리는 청춘이라는 정서에 대해 안다. 사랑, 치기, 고독, 권태, 우수, 성장 같은 것들. 마광수는 그런 감정들을 자전적으로 파고 들어갔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느끼는, 더욱이 청춘 때는 더 절실한 그런 감정들을 말이다. 작품에서 나오는 '다미'는 삶의 권태를 직접적으로 들어내는 인물이다. 다미는 가난한 '남자'와 시를 주고받다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다미는 원래 자유연애형으로 잦은 연애와 프리섹스 향락에 젖은 삶을 살아왔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그녀는 국어국문학과의 문학 소년과 소박하고 가난한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그녀는 갈수록 우울해지고 종국에는 자살했다. 나중에 남자가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재벌 아버지의 첩의 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가정환경에 대한 열등감으로 우울했으며 그것을 방탕한 생활과 프리섹스를 통해 달래고는 했다. 하지만 우울증이 심해져서 그녀는 자살했던 것이다.

 남자와 다미가 주막집에 있을 때, 대학생 무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그녀의 권태와 고통이 잘 드러난다.

[내 나이 아직 어렸을 때에/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어른만 되면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지/그러나 나는 지금 꿈을 이룰 수 없네/나는 이미 어른이기에/안쓰럽게 푸른 새싹으로 올라와/한스럽게 다 자란 싹으로 피어났던/애닯고 허무했던 나의 희망이여]

 이 노래를 듣는 남자는 큰 동요에 빠지지만 다미는 그렇지 않았다. 다미에게는 과거에 그 어떤 희망도 없었을뿐더러 그녀는 이미 정신적으로 어른 되어있었다. 이 노래는 대학생 청년이 불렀지만 사실은 삶에 회한하는 더 늙은 어른의 노래이다. 그리고 어쩌면 정신적으로 조숙한 다미는 이 노래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감명을 느끼지 않았고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은 것이다. 이를 통해 다미가 삶에 대한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미는 자신의 이러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남자에게 매달려보고 사랑을 확인하려 노력했지만 그 마저도 헛됐음을 깨닫고 자살한 것이다. 반면에 남자는 그 노래를 듣자 애틋한 감성과 비감 어린 회억 속에 빠져든다. 남자는 아직 어리고 감수성이 풍부한 청춘이기 때문이다.

 마광수는 누군가의 자살을 탓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그것을 긍정한다. 다미가 자살을 했을 때 남자는 충격을 받아 한달 동안 방안에서 울지만 그는 그녀의 죽음을 통해 자기가 성장했다고 말한다. 죽음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되레 성장을 주기도 한다. 치기 어린 청춘에서 어엿한 어른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죽음에 대한 사색으로, 감정에 휩싸이던 사랑에서 감정에 무뎌지는 사랑으로,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마광수와 다미에게.   



   <자살자를 위하여> 

                                            -다미-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라리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마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마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마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마라


  바람이 부는 것은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닷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마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마라

  그는 가장 솔직한 자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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