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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Nov 23. 2019

여름에 다시 만나

루를 만난 건 작년 여름이었다. 지독히 덥고도 끈적한 계절이었다. 바깥에 서서 숨을 들이쉬고 내뱉을 때면 내 몸안에서 끓는 주전자처럼 뜨거운 김이 나오는 것 같았다. 물기를 잃은 대파처럼 바싹바싹 말라가던 와중에 우연히 ‘시(詩) 원한 여름’이라는 강좌의 광고를 보았다. 7월 첫째 주에서 8월 둘째 주까지, 무더운 여름에 시를 쓰면서 더위를 이겨내자는 내용이었다.


어째서 시였을까. 더위와 시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광고는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나는 홀린 듯 강좌를 신청했다. 아마도 무엇이든 길게 쓰는 행동은 버겁다고 느낀 게 아닐까. 한 문장을 온전하게 끝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시작조차 부담스러웠다. 시는 단어만 나열하고도 내가 시라고 주장하면 그만일 거라는 그런 대책 없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의 시원한 여름이 시작되었다.


루의 첫인상은 눈물이었다. 우리는 자기소개를 할 때 본명은 밝히지 않고 별명으로만 소개하기로 했는데, 루는 첫 시간에 자기 자신을 ‘루’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며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눈물이 많아서 곤란할 때가 많다던 루는 민망해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 말을 하는 순간조차 루의 얼굴에 울먹울먹 물기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물기가 넘치지 않도록, 넘쳐서 마침내 눈물을 쏟아내는 일이 없도록 루의 자아가 둘로 나뉘어 싸우는 중인 것 같았고 모두들 조용히 루의 내면에서 벌어진 치열한 싸움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날 루는 울지 않았다. 길었던 자기소개를 끝마친 루의 얼굴에 안도감이 보였다. “울지 않기.”를 목표로 했던 사람처럼.


그러나 시를 쓰고 낭독하던 순간부터 루의 모든 노력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녀가 별명으로 지은 루는 아마 한자 淚(눈물 루)를 따온 것이라 확신에 가까운 짐작을 할 정도로 그녀는 과연 눈물이 많았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일그러진 레몬, 까지 읽더니 그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 문장을 읽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그녀 옆에서 어떤 사람은 휴지를 건넸고, 또 어떤 사람은 손수건을 쥐어주기도 했고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그날 그녀가 단 여섯 줄을 낭독하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은 20여분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시를 들으면서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큰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마침내 떨어지는 순간을 조용히 지켜보며 나는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어떤 고귀하고 맑은 정신이 깃든 책 한 권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뽑아 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녀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일그러진 레몬 같아서 눈물이 나는 사람이었고, 말라비틀어진 선인장의 모가지를 잡아 쥔 사람의 이야기에도 울 수 있었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 뒤축이 닳은 운동화, 신 포도, 쓸데없이 낮이 길어 슬픈 백수, 하수구의 악취, 날씨가 좋은데 시를 쓰는 사람의 푸념에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다. 견딜 수 없이 차오르는 어떤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때문에 가장 투명하게 표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좀처럼 그런 재능을 타고난 이를 만날 일이 드물었다. 대부분 속에서 꿈틀대는 어떤 것을 감지하는 능력이 형편없이 무딘 편이었고, 나 역시 그런 형편없는 감각을 지닌 밋밋한 사람이었다.


밋밋한 나는 루의 예리함에 끌렸다. 나 말고도 여럿 루에게 끌린 건지, 루의 눈물은 점차 전염되었다. 눈물은 빠른 속도로 옮아갔다. 매주 시를 낭독할 때마다 조금씩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이 늘기 시작하더니 이내 감정이 가장 고조된 부분에 이르러서는 모두들 주저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터져 나오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직 이곳에서만 허락된 시간을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손등으로, 휴지로, 손수건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대충 훔쳐가면서도 사람들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시를 읽으면서 눈물을 보였다. 모두 울기 위해 시를 쓰는 것 같았다.


대부분 힘 있던 목소리에 물기가 촉촉이 젖어들기까지 채 한 구절도 필요치 않았다. 장마라는 단어가, 언젠가는 엄마, 언니라는 단어가, 또 어느 순간에는 변비라는 단어가 사람들을 울렸다. 장마와 엄마, 언니, 변비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도 모든 눈물이 타당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우리는 눈물에 어떤 변명도, 타당한 근거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우리가 흘린 눈물에는 개연성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시를 낭독하며 다짜고짜 눈물을 흘리고 서로 조용히 타인의 눈물이 멎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 그런 기이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를 생각할 때면 처음으로 루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던 그때가 기억이 난다. 첫 시간에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A4 용지를 쥔 채 낭독을 시작하던 루의 얼굴. 모두 루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루는 늘 조심스러웠다. 말수가 적었다. 그런 그녀가 시를 쓰고, 듣는 일을 할 때만큼은 놀랍도록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주저 없이 표현했다. 말수가 적은 그녀 앞에서 나는 종종 내 말을 검열하게 되었다. 적막과 공백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내 성향이 그녀의 고요함을 깨트릴까 봐 무섭기도 했다. 고요한 그녀의 세계에 불청객 같은 소음으로 폐를 끼치게 될 까 봐 루에게 차마 먼저 다가설 수가 없었다.


“이거 드세요.”

언젠가 루가 바로 옆자리에 앉았을 때 나눠준 초콜릿도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했던가. 초콜릿 자주 드세요?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했던 것 같다. 사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습관처럼 침묵을 깨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이어 붙였던 어수선한 상태였다는 것 밖에는. 그때도 루는 나의 맥락 없는 말에, 정적이 무서워서 아무렇게나 내뱉고 보는 나의 말에 놀랍도록 집중하고 있었다. 말을 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할 정도로 형편없는 내 집중력을 루는 다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도, 끝까지 내 말을 들어주었다. 단 한 글자도 허투루 듣지 않겠다는 듯 내 눈을 오래도록 응시하면서.


루가 눈물을 흘릴 때면 어쩐지 내가 느껴졌다. 그녀는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고, 지금껏 아무런 공통분모도 없이 각자 떨어져 살아왔음에도 나는 루에게서 나의 일부를 보았다. 우리가 비록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루가 슬퍼한 수많은 순간에, 나 역시 다른 장소에서 마음에 생긴 균열을 느끼고 움찔거렸을 것이다. 그녀처럼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는 밋밋한 사람이더라도, 적어도 비슷한 맥락에서 마음의 일렁거림을 느끼고 감정의 동요에 당황했겠지.


더위가 한풀 꺾일 무렵, 시원한 여름 강좌도 끝이 났다. 그 후로 나는 루를 보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나는 그녀의 나이도, 직업도, 본명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언제까지나 나한테는 ‘루’다. 잔잔하던 가슴속에서 문득 파동이 느껴질 때면 이제는 습관적으로 루를 떠올린다. 


어딘가에서 그녀가 또 특유의 예리한 감각으로 마음을 다해 슬퍼하고, 감동하고, 웃고 있는 게 아닐까 제멋대로 상상한다. 어쩌면 루는 지금도 울지 않기 위해 힘쓰는 중일지도 모르겠지만. 루가 이 글을 볼 일은 없겠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전쟁이 조금 덜 벌어졌으면 좋겠다.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다스리는 혼자만 아는 고독한 싸움 같은 것은 할 만한 게 못 되니까. 작년 여름처럼 휴지와 손수건을 건네며 루의 눈물이 멎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 있는 사람들 틈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울고, 더 많이 웃을 일이 생긴다면 좋겠다.


7월의 한가운데, 루가 늘 그렇듯 촉촉하게 젖어든 채 벌게진 두 눈을 숨기지 못하고 절절하게 낭독하던 시의 한 구절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름에 다시 만나.


*제가 좋아하는 눈물 많은 여자들을 생각하면서 쓴 소설입니다.

*커버이미지는 Free Stock Image 사이트인 pexels.com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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