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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yuun Dec 20. 2023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루틴

새벽에 아쉬탕가 요가를 마치고 매일 오는 스타벅스 지점에 들렀다.


어제 빈야사 두 수업을 무리해서 했는지 오늘은 좀 힘들었고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밤새 쌓인 눈 위를 걸어오느라 에너지를 너무 미리 뺏겨서 그런 걸 수도. 스타벅스에서 매일 시키는 오늘의 커피 쇼트 사이즈와 공복이 오늘따라 힘들어 추가로 베이컨 치즈 토스트도 시켜 먹었다.


난 요즘 아침에 출근 전 꼭 이렇게 스타벅스에 들르지 않으면 조금 허전하다. 오전에 오면 바리스타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와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각자의 할 일을 하는 꼭 아는 사람 같이 느껴지는 손님들로부터 느껴지는 익숙함이 왠지 좋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이에서 이 시간은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 사회학에서 유명한 논문인 그라노베터의 ‘약한 유대의 힘 Strength of weak ties'에서는 아주 가깝고 친한 사이 혹은 가족과의 강한 유대 관계 못지않게 약한 유대에 놀라운 힘이 있다고 한다.


약한 유대 관계는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다. 마주치면 짧은 상호작용을 하거나 가까워지긴 어렵지만 만났을 때 매너 있게 대하게 되는 그런 모든 관계를 포함한다. 자주 가는 마트의 캐시어가 될 수도 있고 늘 가는 미용실의 헤어디자이너, 단골 카페의 바리스타가 될 수 있겠다. 긴 대화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짓거나 좋은 하루 되시라고 늘 말해주는 그런 사람들까지도 약한 유대 관계에 해당된다. 나에겐 요가 선생님들이 약한 유대를 가진 분들이다. 요가원에 가면 언제나 따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고 틀어진 몸의

정렬을 잡아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


실제로 약한 유대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것보다는 정서적으로 더 안정되고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가족한테서 받은 스트레스가 밖에서 만난 따듯한 사람들 덕분에 조금 누그러지는 경험을 많이 느껴본 것 같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습관적으로 지메일앱을 켰다. 다 읽지도 못할 여러 뉴스레터 가운데 ‘불확실성을 대처하는 법‘이란 주제로 한 제목이 눈에 띄었다.


불확실성이 늘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통제 가능한 범위의 확실한 무언가를 루틴으로 매일 실행하는 것이 얼마나 큰 안정감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상의 작은 것이라도 통제 가능한 확실한 기둥들 (certainty anchors)이 있으면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구석이 생기는 것이다. 통제를 뺏긴 것만큼 절망스럽고 혼란스러운 것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일정한 통제가 있고 리듬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온갖 것에 주의를 뺏기고 여러 요구 사항들에 치이게 되며 중심을 잃기 쉽다.


이 뉴스레터에서는 루틴의 사례로 한 전설적인 무용가가 종교의식을 치르듯 따르는 일과를 소개한다. 그녀는 매일 5시 30분에 기상해 택시를 타고 운동을 하러 가며 늘 같은 트레이너에게 트레이닝을 받고 샤워한 후 삶은 달걀 3개, 커피를 먹고, 1시간 동안 업무 연락들을 처리한 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두 시간 동안 일하고 회사 직원들과 리허싱을 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고 두어 시간 책을 읽은 뒤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성공을 한 유명인들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매일 큰 변화가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반복을 통해 내공을 쌓는 경우가 많다. 천재적이라고 여겨지는 예술가들도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영감으로 훌륭한 작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반복하며 쌓아 올린 것에서 얻는 힘을 통해 좋은 작품을 내놓는 것이다.


나도 요즘에서야 진정한 의미의 루틴의 가치를 깨달아가고 있다. 내가 만든 일상의 규칙을 빠짐없이 지키며 매일을 반복할 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내적 고요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샤 세이건은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에서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맞서기 위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통제가능한 것처럼 느끼게 해 주는 의식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내내 다룬다.


남편인 존이 매일 퇴근하며 “출발!”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에 약간 설레는 마음과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그런 작은 의식,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실천하기 어려운 것도 아닌 타인과 함께 하는 사소한 약속들이 삶에 기분 좋은 리듬을 가져다주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의식을 치르며 살든 간에, 날마다 느끼는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어쩌면 시시각각 불확실성을 느끼며 살 수도 있다. 이런 불확실성에 맞서기 위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통제해 보려고 만들어 낸 작은 도구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p91)
- 사샤세이건


끝으로, 매일 같은 것을 같은 시간에 하는 것도 꾸준함을 이어가는데 필요한 것 같다.


시간을 정해 놓는 것은 일종의 약속이며 약속한 시간에 무언가 하는 것은 좀 더 중압감이 느껴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의식적으로 빼두며 마음 가짐이 좀 더 달라진다. 보통 규칙적으로 하려는 것들은 때때로 할 맛이 나지 않거나 스킵하고 싶은 충동도 생기기 마련인데 시간을 정해놓으면 오래 반복하다 보면 양치질하듯 행동하기 위한 전환에 인지적 노력이 덜 들게

된다. 하기 싫을 때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시간이 이미 지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언제나 같은 시각에 찾아와 주면 좋겠다고 한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만약 아무 때나 불쑥불쑥 나타난다면 언제부터 어린 왕자를 기다려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고, 또 곱게 마음을 단장하고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행복감을 느낄 수도 없어서 의식이 필요하다 ‘고 하며 의식이 무엇인지 너무 아름답게 표현한다.

이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만들고, 지금 이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요즘 나의 루틴은 아침 또는 새벽 요가 후 스타벅스에 잠깐 앉아하는 저널링과 책 읽기이다. 책을 집중해서 끝까지 읽어본 게 정말 오래된 것 같았는데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완독을 하고자 마음먹고 한 달간 한 챕터씩 읽어나갔다. 많이 읽고 빨리 읽는데 신경 쓰지 않고 매일 한 페이지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하니 책 읽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고 거의 한 달이 돼 갈 때 완성했다.


어떤 것이든 한 번에 잘 해내고 빠르게 성취하는 것보다는 작은 것들에 충실하고 분명한 의도를 갖고 하되 결과에 대한 집착은 내려놔보는 것이 불확실성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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