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유지하고 싶은지 줄줄 적어보겠습니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진학을 위해 경기도로 올라오면서 의지할만한, 힘들 땐 들를 수 있을 만한 장소를 먼저 찾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곳은 북촌한옥마을이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의 저는 북촌한옥마을과 쌈짓길을 걸으며 벚꽃보다 먼저 피었던 목욕탕 앞의 목련을 마음에 담아왔었지요. 서울의 그 어떤 곳을 돌아다녀보아도, 제 마음속에는 그 동네만큼 제 불안을 잠재워준 든든한 동네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시간만 나면 안국역엘 갔던 것 같아요. 조금 서울이 익숙해질 때쯤, 좀 더 막 돌아다녀도 되겠다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쯤 저는 안국역을 중심으로 조금씩 공간을 넓혀갔습니다. 북촌한옥마을에서 오른쪽으로 좀 더? 왼쪽으로 좀 더? 이번에는 경복궁을 넘어서 좀 더? 하다가 결국 남편이랑 데이트할 때쯤 서촌의 매력을 알아버렸습니다. 연애시절엔 집이 연신내여서 서촌으로 자주 데이트를 하러 가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더욱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있는 서촌.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친정엄마의 생일선물을 찾으러 여기저기 소품샵을 헤매다가 이전부터 점찍어둔 골목의 작은 카페를 들어갔어요. 퀸아망 한 조각이랑 각자 좋아하는 커피 한잔씩을 사다가 마련된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저는 엄마 선물을 찾으러 들렀던 소품샵에서 기록을 좋아하는 제가 거의 일 년 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핸디노트 하나를 찾았어요. 남편의 "하나 해." 덕분에 데려온 그 노트를 꺼내서 좋아하는 펜 뚜껑을 딱 열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그동안 잠깐 멀리했던 드로잉노트를 꺼내어 순간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내가 이걸 이 생활을 너무 바랬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싶었던 것인데. 갑자기 너무 벅차오르는 거예요.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해버려서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좀 지쳐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고 그릇을 싱크대에 내려놓는 순간, 부엌창문에서 들리는 "나는 나~비" 네 글자에 "갈까?"가 되었고 저희는 그 길로 빨리 걷기&달리기로 호수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어제저녁은 고양호수예술축제의 폐막식에 YB가 오는 날이었거든요. 알고는 있었는데 사람이 많다고 해서 안 가고 있었는데, 저 목소리를 듣고 안 갈 수 없었어요.(집까지 공연목소리가 들릴 정도면 어느 정도 일까!) 20분 좀 넘는 거리를 17분 만에 도착해서 엄청난 인파 사이로 뿌옇지만 목소리는 또렷하게 공연을 반 정도 즐길 수 있었어요. 스피커로만 듣는 거랑 스피커와 목소리를 동시에 듣는 건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그러고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빨리 뛰었던 곳을 천천히 걸으며 드론쇼를 봤습니다. 곧이어 폭죽놀이가 시작됐고 가던 걸음을 멈춰서 연석에 걸터앉았습니다. (공사 때문에 차량출입이 안 되는 곳이라 안전했어요.) 앞뒤로는 아무것도 없고 새카만 하늘에, 가로등 몇 개가 켜져 있는 공간. 그리고 연석에 나란히 앉은 남편과 나. 하늘 위로 펼쳐지는 멋진 불꽃놀이. 최근 들어 처음으로 불꽃놀이 그 자체를 즐겼습니다. (불에 타고 있는 금속원소니 뭐니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서요.) 반짝반짝할 때 남편을 바라봤는데 그 사람 눈에서 빛이 번쩍이고 있었어요. 이게 불꽃놀이 때문일테지만 마치 얘가 반짝이는 것 같아서 오늘 우리의 하루가 너무 좋아서 또 한 번 울컥했습니다.
그렇게 감동으로 울렁이는 하루를 보내고 왔습니다. 사실 지난주는 일요일 제외하고 월~토가 거의 지옥 같았어요. 지원사업 마무리단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정산을 해야 하는데 돈이 잘 안 맞아서 좀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차였거든요. 굿즈 발주 일정도 너무 빡빡했고요. 일상이 정신없음으로 한가득 들어차있었는데, 일요일을 지나면서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일주일을 시작할 동력을 마련해 주었어요.
암튼 그래서 제가 뭘 유지하고 싶은가 하면은.. 이 모든 것들을 지켜내고 싶어요. 계속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반짝이는 우리가 함께하는 결혼생활, 순간의 여유를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마음,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재정적인 여유. 얘들을 다 유지하고 싶은 욕심이 제 모든 욕심의 출발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어제 불꽃놀이를 보는 동안에 해보았습니다.
사실 요즘 제가 내는 욕심들이 제 주변에 어떻게 보일까 하는 궁금증과 걱정이 조금 있었거든요? 저는 굳이 남을 잘 안 봐서 제 길로 직진하길 잘하는데 요즘 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아예 꿈부터 다르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도 목적도 전부 다요. 근데 어제를 보내고 나니 확고해졌습니다. 저는 저에게 맞는 꿈을, 제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요. 그러니 계속해서 저는 행복과 여유를 쫓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만의 욕심을 한껏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어디서 들은 건데 현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게 제일 큰 꿈이라면서요? 저는 또 뭣도 모르고 지금의 모든 것을 유지하기 위한 꿈을 한번 꿔보겠습니다. 열심히 벌고 열심히 도전하고 그런 에너지 가득한 삶을 한번 살아내 보려고요.
즐겁게 보낸 일요일이 끝나고 또 정신없는 한 주가 시작되고야 말았습니다. 다가올 일요일의 행복을 위해 또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우리는 다음 주의 욕심으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