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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잘 맞는 것들을 오래도록 좋아하며 사는 삶

나만 아는 디테일한 취향들을 모아 모아

by 뱅울

"뱅울님이 꿈꾸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얼마 전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온 질문. 한참을 생각해 보다가 문득 욕심쟁이로 살아남기 시리즈는 어쩌면 내가 꿈꾸는 삶을 줄줄이 다짐하는 글인 것이 아닐까. 그래서 브런치 글들을 쭉 훑었다. 아이고. 너무 많다. 어쩌지. 이 많은 걸 어떻게 줄여내야 하지. 이래저래 고민해 봤는데 줄일 말이 더 이상 생각이 나질 않아서 결국 '나와 잘 맞는 것들을 오래도록 좋아하며 사는 삶이자, '로 시작하는 두 줄짜리 한 문장을 적어 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부족하다거나 좀 더 자세히 답변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봐주세요.'라고.


어린 시절 과자 박스 안쪽에 있는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걸 즐겼다. 어쩜 이렇게 그림 속에 작은 사물들을 잘 숨겨놓을 수 있을까? 감탄하며 하나하나씩 찾아 동그라미 치는 그 짜릿함이 좋았다. 고래의 꼬리 끝에 숨어있던 나비를 찾는 순간, 내가 이걸 찾았다!!! 하며 연필을 잡아드는 그런 순간들.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부터는 복작복작 여러 요소들이 들어차있는 일러스트를 한참 서서 구경하는 걸 좋아하게 됐다. 이 사람은 여길 그릴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부분엔 어쩜 이렇게 예쁘고 앙증맞은 시계를 그려 넣었을까. 어떻게 이렇게 멋진 패턴을 배경지에 그려 넣을 생각을 했을까. 가까이서 봤다가 멀리서 봤다가 한참을 서성이며 작가가 숨겨놓은 작은 요소들을 찾는 재미가 있어서.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게 재밌다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내가 그리는 그림과 만화에는 작은 요소들이 숨어있다. 나만 아는 그런 것들. 작은 요소들을 그려 넣고 무슨 보물을 숨겨놓은 것 마냥 후후후하며 업로드를 한다. 작은 보물 찾기를 혼자 주최하는 기분으로. 대개는 그걸 못 찾는 분들이 많은데, (뭘 숨겼는지 숨겨둔 게 있는지 뭐 그런 얘기를 하질 않으니까 감상하는 입장이 달라서 그렇겠지만은.) 갑자기 '작가님. 저기 책장에 책이름이 ㅋㅋㅋ'라는 댓글이 달리면 또 다른 짜릿함이 몰려온다. 아 이 분이 이걸 봤다는 건, 이쪽 방면에서 나와 취향이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뻐진다. 그 댓글의 'ㅋㅋㅋ'와 함께 한참 웃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답글을 달아본다. '이걸 알아보시다니!'


이런 게 '나와 잘 맞는 것' 인가보다 싶었다. 나만 아는 디테일한 취향들을 나만 알아차리는 시선에 배치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 그런 취향 중에는 손뜨개로 만든 담요가 있다. 그리고 또 그중에 제일은 엄마가 만들어준 것. 엄마가 사용하는 색감과 모티브의 배치가 너무 좋다. 기계로 뜬 것보다 손으로 하나하나 비벼뜬 담요는 사이사이에 생긴 공기층 덕분에 한 층 더 따뜻함이 유지된다. 그리고 한 번씩 쓰다듬을 때마다 엄마의 손을 쓰다듬는 기분이 들어서 또 좋다. 이걸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는 계절이 겨울인 것이 또 내가 겨울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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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머리맡 협탁 위에는 줄을 잡아당겨 껐다켤 수 있는 은은한 전구색 조명이 있다. 남편의 머리맡 협탁 위에는 80년대에 제작되어 여태 미국에서 살다가 얼마 전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에 첫 입성을 한 제너럴 일렉트릭 시계라디오 아저씨가 있다. 매일 아침 우리를 라디오로 깨워주신다. 아침에 그렇게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 지난 주말에 GUVS에 들렀다가 엄청 멋진 가격으로 데려온, 체리우드 프레임에 흔하지 않은 초록실로 직조된 의자가 통창 앞에서 잘 잤니 인사를 건넨다. TV 옆에는 여러 연령대의 LP판이 쪼르륵 꽂혀서 여유가 가득한 날 선택받을 준비를 하고 있고, 소파의 팔받침대에는 어제 읽다만 두 권의 책-고양이와 할아버지 6권, 마스다미리 누구나의 일생-이 펼쳐질 준비가 끝난 채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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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멀리서 보면 단지 누군가의 집일 뿐인 이 공간에는 잠깐만 고개를 돌려도 심어놓은 작은 디테일들이 있다. 조금씩 취향은 바뀌겠지만은, 그럼에도 작은 요소들을 숨겨놓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싶다. 약간의 소망이 있다면 나와 잘 맞는 것들이,, 막 그렇게 비싼 것들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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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