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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 드는 것.

반짝. 눈이 반짝이는 순간들의 수집.

by 뱅울 Mar 03. 2025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이 좋다. 시도 때도 없이 부릅뜨고 쳐다보는 눈에서 느껴지는 반짝임 그런 것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의 그 에너지가 느껴지는 반짝임이 좋다.


최근에 창작활동을 좀 더 부담 없이 하기 위해서 미화팀 매니저로 근무를 시작했다. 미화사원(여사님이라고 부른다)분들이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미화작업을 하시면 나는 여사님들이 작업해 두신 곳과 특히 외부에 노출된 장소의 상태를 점검하고 근무 중 민원알림이 발생할 경우 가서 처리하는 일을 담당한다. 일을 시작한 지 3일째 되던 날, 오전 점검 작업에 여사님 한분과 함께 점검을 돌면서 꿀팁들을 전수받는 시간이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현장직만의 빠른 일처리 꿀팁들을 한가득 알려주셨다. 오전 내내 웃는 얼굴과 엄청 빠른 발걸음으로 일을 착착 처리해 내시는 능숙한 손길을 보면서 정말 멋지다라고 생각했는데, 하이라이트는 잠깐 쉬는 시간에 있었다. 나도 나름 빠릿빠릿한 편이라 알려주시는 대로 같이 점검을 돌다 보니 오전 작업이 조금 일찍 끝났고 그 덕분에 잠깐의 짬이 났다. 둘이 점검하니까 금방 끝났다며 사무실로 복귀해선 아주 짧은 믹스커피타임을 가지게 됐다. 종이컵에 진하게 믹스커피 두 잔을 타서 한잔은 나에게 건네주시며, 이런저런 간단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 일, 얼마나 하셨어요?" "나? 미화일은 17년 했지~" 사실 그 말에서 꽤 많이 놀랐다. 17년 동안이나 이 일을 지속하게 해 준 그 기반이 되는 마음이 궁금해져서 물어볼까 말까 고민을 하던 차에 내 마음을 읽은 듯 여사님은 커피 한 모금 하고선 말을 이어가셨다. "이 일, 자부심 없으면 절대 오래 못해요. 매니저님은 이 일이 처음이겠지만은 나는 17년 동안 이걸 했잖아. 내가 이걸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건, 그 누구보다 내가 담당한 구역이 제일 깨끗하도록 만들겠다는 마음. 그게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사님. 진짜 멋지세요. 진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진짜 멋있었다.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나도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그리고 그때부터 세상의 모든 미화여사님들이 너무 멋지고 대단하게 보인다. 저분들의 마음속에 무슨 씨앗이 심어져 있을까.


비정기연재 중인 미화 매니저 근무 이야기를 담은 *<점검하겠습니다> 만화의 일부.비정기연재 중인 미화 매니저 근무 이야기를 담은 *<점검하겠습니다> 만화의 일부.


어제는 미키 17을 보고 왔다. 영화를 보면 남편과 나는 늘 영화 설명 영상을 보는데 마침 봉준호 감독님의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 내용과 함께 영화를 촬영할 때의 감독님의 모습들을 오버레이 해서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배우에게 직접 장면에 대한 설명을 온몸을 동원해서 하는 장면, 카메라 앞에서 촬영을 지휘하는 모습 그 속에서 감독님의 눈빛은 그 무엇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미키 17을 보면서 영화의 내용이 재미있었던 것을 넘어, 스토리의 입체적인 구성이 보는 내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봤었는데 그때의 감정과 반짝이는 눈빛이 겹쳐지는 거다. 아.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멋질 수 있을까? 진짜 부럽고 멋지다. 인터뷰 영상을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그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나보다 몇십 년을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과 말속에서 감탄하는 이런 순간 들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놀랍다. 요즘은 살기가 참 어렵고 앞으로 더 어려울 것이라는 그런 암흑과도 같은 세상을, 나보다 더 많이 보고 경험했음에도, 직업이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 말하고 계속 좋아할 수 있는 그 마음을 멋지다고 느낀다. 나도 모르게 정말 멋지다는 말이 새어 나온다. 그 말의 끝에는 항상 혼자 되뇌는 문장이 하나 더 있다. 나도 저렇게 반짝이는 눈을 가진 채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고.


오늘은 우연히 빵집에서 갓 구운 모닝빵을 꺼내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남자 제빵사를 만났다. 미소를 머금고 빵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모습. 남편과 함께 그 모습을 보면서 진짜 멋지다. 내뱉었다. 그리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 글을 구상하는 와중에 만난 그 모습에 또다시 확신했다.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점검하겠습니다>는 아래 인스타그램에서 연재중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p/DGVcvmIPvVG/?igsh=NDNsZGo5NHk1NXA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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