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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나요?

남들한테 가치 있는 거 말고 나한테 가치 있는 일.

by 뱅울

요즘 유난히 많이 드는 생각이다. 가치 있는 일. 귀하고 천한 일, 돈 많이 벌고 적게 버는 일 그런 거 말고.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하는 것. 입시의 그 어느 언저리에 잠깐 몸을 담은 경험 덕분에 사람들의 욕망을 꽤 잘 알고 있다. 돈 잘 벌고 대접 잘 받는 귀한 일을 내 자식이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키고 다른 것들도 시키고 뭐 이것저것 안 시키는 것이 없었다. 근데 그렇게 해서. 몇 명이나 원하는 대로 진학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운이 좋아서 다 해낸다고 하더라도 결국 일이 본인과 맞지 않아 그만두는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남편이 어렸을 때 시아버님이 남편에게 시킨 숙제가 있었다고 한다. 동네를 돌아보며 직업들을 알아보는 일. 그 말을 듣고 정말이지 머리가 띵 해졌다. 아버님께 그 질문에 대해 여쭤본 적은 없지만 일단 내가 생각하기에는 단순한 숙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나의 아이에게 현재 이 동네를 구성하는 직업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게 해 준다는 것은, 결국 선택지를 너에게 주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안에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봤을 테고, 그 모든 순간들에 대해 스스로 판단했을 테니까. 당장 나는 이런 걸 하는 사람이 될래요 하기를 바란 것보다는 우리 동네에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하는 넓은 시야를 만들어 준 숙제 같아서 또 감동해 버렸다. 그러니까 엄마아빠의 판단에서 돈 잘 벌고 대접 잘 받는 귀한 일, 그런 걸 위해서 죽어라 공부시키고 스트레스 주고 하는 그런 것 말고. 최대한 많은 선택지를 알려주거나 보여주고서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에 돌아보며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된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싶었다. (뭐 공부를 잘하면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강압적으로 남들이 다하니까 너도 이만큼은 해내야 해 하는 스트레스를 줄 것까지는 없지 않나 하는 거지.)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능력을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가치 있는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작년 한 해 동안 하고 싶었던 그림으로 돈 벌기를 해봤고 성공적으로 펀딩도 해낸 프로젝트의 일원이었다는 것도 좋은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작년이랑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움직여보고 싶어 졌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 졌거든. 에너지를 조금 덜 쓰고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보려고 이것저것 도전해 본 2025년의 두 달이 지났다. 남편이 어린 시절 동네의 직업들을 둘러보던 그때처럼 나도 알바 어플을 켜서 우리 집 주변의 일자리들을 한참이나 찾아봤다. 그러다 하나를 발견했다. 출근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이 물어보더라고. "매니저님 힘들지 않으세요? 요령껏 하세요." 그럴 때마다 너무 짜릿하다. 왜냐면 진짜로 아무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남들보다 좀 더 잘하는 일을 지금 덜 힘들게 해내고 있고, 그리고 이 일은 분명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 인거라. 그래서 요즘은 출근해서 재밌고도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퇴근 후에는 바로 씻고서 노을지는 풍경을 벗삼아 펜을 들고 만화를 그린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 모두를 해내고 있는 요즘,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한 매일을 보내고 있다. 분명 좀 더 정신은 없어졌는데 그게 또 욕심쟁이로 살아남는 과정이니까. 즐겁다.

요즘 해지는 풍경이 너무 예쁘다.


그런데 진짜 또 즐거운 게 뭐냐면, 거기선 내가 뱅울인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핳핳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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