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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만화를 그리는 뱅울입니다.

라고 자꾸 내뱉어보는 마음.

by 뱅울 Mar 10. 2025

내가 가진 생각들을 내레이션으로 넣어 만화를 그리는 영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틀 뒤, 마침 돈이 생겨서 마이크를 샀고 그대로 만화 그리는 영상을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지 3일 만에 첫 영상이 업로드됐다.


https://youtu.be/9C5QUallCAE

[세상에 허튼짓은 없으니 일단 하고보세요]


작년 한 해를 내내, 그림 그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그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하는 생각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이야기가 담긴 그림이 좋아서, 종이 한 장에 수많은 시간을 쏟아가며 그리는 일러스트를 잘 그리고 싶어 시작한 그림의 2024년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툰으로 지원사업도 하게 되고,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제안도 들어오고, 기업들과 협업도 하면서 나 꽤 괜찮게 만화를 그리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와중에 ‘만화가’라는 종목으로 사업자등록을 필수로 해야 하는 일이 생겼고, 누군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은근슬쩍 “만화가예요~ ”라고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업자등록증이 마치 인증서가 된 것 마냥.


그것이 초심자의 안일함인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반년정도가 흐른 작년 12월쯤이었다. 흔히들 웹툰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런 만화를 그리는 웹툰작가 지인과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내가 가까이하는 지인 중 가장 단호하고 현실적인 사람에게 듣는 만화가의 일상은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지금 같은 마인드로 시간 날 때 그리고 아무렇게나 마무리지어버리고 만화의 규칙 같은 것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는 이야기들, 그런 것들은 사실 만화가라고 불리기 부끄러운 것들이었다. 내가 메일로 오는 ‘작가님’ 소리에 너무 안일해져서 쉽게 바라본 것은 아닐까 반성도 많이 했다. 난 그냥 낙서를 끄적이는 사람쯤 되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콘텐츠를 매력적으로 잘 만드는 사람도 아니니, 이거 내가 여기서 아등바등해 봐야 뭐 될까. 그런데 끝없이 지하를 뚫고 내려가던 나를 다시 꺼내 올려준 것은 또 다름 아닌 그 웹툰작가였다. 나에게 맞을법한 장르들을 문득문득 추천해 주기도 하고, 내가 가진 장점을 살려서 투고하면 좋을만한 플랫폼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별다른 말 없이 하나씩 툭 던져주는 이런 조언들이, 나에게는 그래도 한번 계속해 봐.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런 말 없었더라도 나는 혼자 또 꾸역꾸역 파내려 간 그 땅굴을 다시 올라와서 어떻게든 해보겠노라 마음먹었겠지만은 시간이 오래걸렸겄지…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만화가라고 말하기가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좀 덜 부끄러운 방법으로 ‘만화를 그리는 뱅울’이라고 바꾸어 불려지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만화가나 만화를 그리는 이나 뭐 거기서 거기다 싶을 수 있겠지만, 전자가 훨씬 전문적인 느낌이 든달까. 난 아무래도 불려 말하는 데에는 젬병이라 그냥 만화를 그리고는 있는 사람이니 후자가 낫겠다 싶었다. 그때쯤 생각을 녹인 영상을 만들고 싶어 졌던 것. 다른 사람들의 유튜브 영상을 구경하며, 나는 첫인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아무래도 첫 문장이 반복되면 그게 그 사람을 정의 내릴 수 있게 되는 것 같았거든. 생각을 뱉어내는 영상이지만 사실 저는 만화를 그리거든요. 그런 메시지를 은연중에 주고 싶었다. 그래서 만화 작업 영상을 촬영하기로 하고 영상의 첫 문장을 통일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만화를 그리는 뱅울입니다.”


난 사실 내 목소리 듣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만든 영상이 나에게는 좋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았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첫 영상의 후반부 주저리에는 이 영상이 잘 안 되어도 괜찮다는 말을 둘러둘러 계속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다행히 첫 영상이 반응이 좋았다. 계속할 힘이 생긴 것. 그렇게 지난주까지 한주에 하나씩, 총 4개의 영상이 업로드 됐다. 인스타툰보다는 살짝 어둡고, 브런치보다는 살짝 밝은 유튜브의 나. 여전히 만화를 그리는 내가, 영상 속에 있다. 영상을 하나씩 만들수록 나는 점점 더 만화를 그리는 내가 되어가는 것이 즐겁다. 앞으로도 만화를 그리는 내가 되어야지. 그렇게 불리는 사람이 되어야지. 또 쉽지 않은 마음을 먹고서 하루를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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