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라서 다행이다.
정답이 있는 것들만을 쫓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수학이 그래서 좋았다. 머리 아프게 고민하더라도 그 머리 아픔의 끝에는 어떻게든 하나의 정답이 있으니까. 그래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문제임에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다. 그래서 정답이 뭔데. 정답이 없는 거라니까? 아니 그럼 결론은 뭔데.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거라고. 나는 그 동그라미도 엑스도 아닌 '세모'의 정도가 싫었고 이해되지 않았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그래도 정답이랑 가까운 것은 있겠지. 그래서 어쩌면 이전의 글과는 모순적이게도 철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머리가 아프다. 그곳이야말로 정답이 없어서.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금 더 낫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살아나가는 것이니까, 깊게 이야기를 나누면 머리가 아파온다.
지난 주말 명절과 아빠 생일을 핑계로 혼자 친정에 다녀왔다. 집에 자식은 둘이지만 첫째인 나와 나보다 두살 어린 내 동생은 삶의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돈을 버는 방식도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도 다르다. 문득 궁금해져서 동생에게 너는 왜 위험도가 높은 투자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동생은, 그럼 너는 어떻게 살고 싶냐고 되물었다. 오 이쯤이야 지난 한 해 주야장천 해왔던 생각이니 바로 내뱉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삶이 좋아. 돈이 굳이 많을 필요는 없고 그냥 입에 풀칠할 정도만 되어도 좋아.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야.라고 했더니 웃으며 그래서 서로 이해가 되지 않는 거라고 했다. 동생은 경제적인 여유가 모든 것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렇구나. 여전히 나는 동생이 이해되지 않지만 그냥 그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는 덕분에 동생은 대구에서 있는 내내 내가 먹어보고 싶다고 한 음식들을 전부 시켜주고, 값비싼 커피도 사주고, 새로운 기기들을 경험하게 해 줬다. 내 입장에서는 조금 과한 소비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온전히 동생의 방식에서 누나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마음이겠거니 하며 감사히 받았다. 그래 어쩌면 저렇게 살아가는 것이 저 아이에게 행복이라면 그건 그 나름대로 행복이고 정답이겠지. 나와 맞지 않는 길일뿐.
그러고 있다가 다큐를 한 편 보는데 스님의 하루 루틴이 나오는 것이다. 기도하고 자연 풍경을 벗 삼아 다도시간을 즐기고, 간단하게 밥을 지어먹고 절을 관리하다 밤이 되면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삶. 보자마자 너무 부럽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물론 그 방송에 나온 일상이 조금 꾸며져 있을 수 있겠고, 보이지 않는 스님들만의 걱정 근심이 있겠지만은 그 삶의 루틴에서 그림 그리기를 살짝 넣으면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더라고. 그래서 그 길로 엄마랑 동생 앞에 가서 스님의 일상이 부럽다. 하면서 산과 구름을 보며 차를 마시고 비질을 하고 그런 잔잔한 마음수양을 하는 그 일상이 너무 부럽더라. 고 했더니 동생이 푸핰 웃으며 엄마에게 얘 머리 빡빡 밀고 스님된다고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며 우스갯소리로 받아쳤다. 그런데 부럽다고 하는 내 모습이 엄마에게는 꽤나 진심으로 보였는지 엄마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진짜?라고 되물었고. 나는 스님이 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삶이 부러워 보였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다만 그 일상을 부럽다고 했을 때 당황한 엄마와 동생의 표정에서 또 다름을 느꼈다. 아 어쩌면은 동생이 아니라 내가 조금 다른 삶의 방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려나 싶어서. 그리고 또 다행이라고 느꼈다. 정답이 없는 이 순간이. 옳고 그름으로 판단되지 않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일요일 한밤의 기차 안에서 한참 동안이나 창밖을 바라봤다. 빛이라고는 드문드문 가로등과 별빛만이 유일한 고요한 산속을 지날 때에도, 건물의 불빛이 하늘에 닿아 별인지 전등인지 모르게 번쩍이는 도심을 지날 때에도.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풍경이 이렇게나 다를 일인가 생각하다, 시선을 기차 내로 돌렸을 때 문득. 유난히 길었던 명절 연휴를 끝내 보내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꽉꽉 들어찬 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정답이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엄마가 싸준 반찬들을 양손 가득 쥐고서 GTX-A를 타러 가기 위해 뒤뚱뒤뚱 올라가는데 갑자기 저 너머에 익숙한 실루엣의 누군가 서있었다. 잔여좌석이 거의 없던 서울행 기차에서 내린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그 틈에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향한 그곳에는 예고 없이 데리러 온 남편이 서 있었다. 이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지하철을 탈 생각에 조금 심란했던 차에 남편을 만나니 얼마나 반갑던지. 그 순간 대구와 기차에서의 일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너무 행복해졌다. 나는 남편 앞에서는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지 싶어서.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방식이 정답이지 싶어서. 동그라미도 엑스도 아닌 세모라서 다행이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