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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의 고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대체될 수 없는 사람.

by 뱅울

열아홉,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수시 원서를 쓰는 동안에 나는 매력적이고 유일무이한 사람이고 싶었다.(그래야 뽑아줄 것 같았거든..) 그런데 현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의 고3 수험생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 평범함 속에서 조금이라도 주변 사람들과 다른 나만의 것을 찾아 열심히 포장해 가며 서류를 만들었다. 유난히도 DNA와 줄기세포에 집착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그때 당시 국내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라면 알아주는 교수님 아래에서 더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3 수준에서 평범함을 조금 반짝이도록 열심히 포장한 서류를 가지고서 그 교수님이 있는 대학 학과에 지원했다. 감사하게도 포장한 서류를 잘 봐주셔서, 과학 우수자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설렘을 한가득 안고서 기숙사에 처음으로 입사하던 날. 나는 학교에서 제일 큰 건물 앞에 붙은 현수막 앞에 서서 한참이나 문구를 읽고 또 읽었다. 'NO.1 이 아닌 Only 1' 그때부터였다. 수험생 시절부터 이어온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쉽게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다 로 바뀌어 내 삶의 목표가 된 것이.


그래서 나는 지난 이십 대의 대부분을 주변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조금 독특하게, 그리고 쉽게 내 것들을 넘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래서 매 순간에 조금씩 변주를 넣어가면서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생각이 조금 사그라들었는데, 그건 바로 학원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과학선생님은 나 하나뿐이었고, 대체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시스템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아파도 선생님은 일단 출근을 해야만 했다. 아니라면 그 상황에서 오늘 수업이 있는 모든 아이들의 학부모님께 전화를 돌려서 제가 지금 사정이 이러이러하니 오늘 수업은 없고, 가능한 날짜에 보충을 진행하겠다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하루 빠진 날의 보충은 아이들의 스케줄에 맞추어 며칠 동안 수습해야 했다. 더 많은 뒷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출근을 하고 봐야 하는 노릇이었다. 그때마다 아 제발 누군가 날 대신해서 수업 하루만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은 쉴 수 없다는 것이라는 흐름이 이때쯤 생겼다. 그래서 학원을 관둘 때쯤에는 그냥 기계 속의 톱니바퀴 같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끼어들어갔다가 빠지면 또 누군가 내 역할을 자연스럽게 대체해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자율성이 떨어지는 그 부담감에 짓눌려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때 제일 싫은 말이 생겼다. '너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아악! 누구나 내 일을 해 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때때로 일 좀 대신해 주라 던져주고서 좀 쉬어도 보고 그런 삶이나 살아야겠다. 그게 나한테 맞나 보다.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톱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며 일 년이 지났다. 요즘은 또다시 스멀스멀 그 마음이 커지고 있다.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이! 내가 이 상태인 것을 인지할 때쯤 쌀국수를 먹으며 고수 생각을 했다.

나는 고수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냥 생으로 와작와작 씹어먹을 정도로. 그래서 고수가 없는 쌀국수는 가짜 쌀국수 같달까. 어느 날은 점심으로 벼르고 벼르던 베트남쌀국숫집엘 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베트남쌀국수 체인점인데 양도 많고 차돌양지 스지 쌀국수를 무려 '고수 추가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차돌양지 스지 쌀국수를 주문하고 매장에 들어서서 고수도 주세요 해가지고 바로 나온, 김이 폴폴 나는 쌀국수 위에다가 고수를 얹어서 한입 가득 먹었다. 온몸에 퍼지는 맛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이게 행복이지. 깔끔한 국물과 부드러운 쌀국수면, 그리고 약간 익은 아삭한 숙주에 고수특유의 향이 버무려지면서 바로 이 맛이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고수가 없을 때 대신 넣어먹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생각해 봤다. 이 완벽함을 완성하는 것은 고수라고 생각하는데 고수 없이 먹어야 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괜히 상상해 본 것.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그 특유의 향과 맛이 있는 고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또 떠오른 것은, 이 대체될 수 없는 독특함이 고수를 호불호가 강한 푸성귀로 만든 것이 아닐까. 대체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호불호가 강한 것이 아닐까. 괜히 고수가 잔뜩 들어간 베트남쌀국수를 먹으며,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나의 마음이 떠오른 것이다.


요즘의 'only 1'은 이십 대 내내 가졌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내 그림을, 내 만화를, 내 글과 영상을 보고 간 사람들이 생활하다 문득 어느 순간에 나를 떠올리고 다시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내가 요즘 바라는 모습이다. 그리고 또 조금 달라진 것은 이십 대 때는 모두가 좋아하는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기를 바랐는데,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내가 만든 것들이랑 결이 맞는 사람들이 와악! 좋아해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자꾸만 찾아보게 되는 사람. 비슷한 것들을 아무리 봐도 결국 다시 찾아오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쌀국수의 고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진 것이다. 그나저나 올해는 이만 여유롭게 살아보고 싶댔는데, 여유롭게 사는 거랑 대체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할 수 있을까. 까짓 거, 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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