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순간순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될래요.
요즘 들어 유독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에 조금 거부감이 든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이 맞는 말일까. 보통은 직업을 이야기하던데, 그럼 아이들은 그 직업을 위해 커나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특정 직업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왜 그걸 하고 싶냐고 물어보았을 때, 돈을 많이 벌어서요.라는 대답이 나오는 것이 맞느냐 하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생각보다 이렇게 얘기하는 초등학생들을 너무 많이 봐버려서 조금 슬프기도 하다. 그 순간의 대답이 마음 아픈 것이 아니고 이렇게 대답한 아이들의 이십 대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아이들은 괜찮겠지만, 아마도 대다수는 상상했던 것을 이루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을 억지로 하며 살아나가겠지. 그러다 문득 내가 이렇게 살다니 하며 슬픈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겠구나 싶어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다. 생각을 살짝만 바꾸면 언제 어디서든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누구도 그것을 우선으로 가르쳐주지 않겠지만 삶의 목표가 직업이 되지 않기를 다만 바랄 뿐이다. 결국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은 만족과 행복에서 온다는 것을, 서른이 되어 이제야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남편과 넷플릭스에서 퍼펙트데이즈라는 영화를 봤다.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주인공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보는 동안 주인공이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제목을 곱씹으며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보이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로. 엔딩에선 더더욱 본 사람에게 머리 위 물음표를 심어주지만 해석을 찾아보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만의 해석을 만들었고 그게 꽤나 마음에 들어서, 감독의 해석이 내 생각과 다르다면 또 하나의 인생영화를 버리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퍼펙트데이즈는 혼자 일하는 동안에 두 번을 더 돌려봤다. 그리고 마음을 하나 먹었는데(또?), 삶의 목표가 직업이 되지 않기를 늘 생각하고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퍼펙트데이즈 주인공의 직업은 공중화장실 청소부다. 과연 이 직업이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면 그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하는 장면을 벗어나면 행복이 도처에 있다. 화분에 작은 식물들을 심고 그들을 위한 식물 성장조명을 마련해 주고 매일아침 물을 주는 것,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들고 자신만의 보물(청소도구)이 가득 담긴 작은 차에 타 팝송을 들으며 출근하는 것, 점심시간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공원의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을 구경하는 것, 그러다 문득 남기고 싶어 지는 순간에 흑백필름을 말아 넣은 필름카메라를 들어 올려 순간을 담아내는 것, 단골 가게에 가 앉아 간단하게 한잔 하는 것, 목욕탕에 가서 목욕 후에 앉아 나른한 분위기에서 TV를 보는 것. 이런 순간들이 전부 행복인 것이다. 그래서 퍼펙트데이즈를 볼 때마다 큰 이벤트 없이 그 작은 순간들에 배어있는 행복을 느끼는 것이, 너무 좋았다. (비슷한 류의 영화로는 남극의 셰프가 있다.)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목표다. 분명 여유 있는 삶은 아닌데 여유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사실 이전부터 생각해 왔던 건데 퍼펙트데이즈를 보며 더욱 명확해졌다. *직업은 수단이 되기로 하자.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이러고 나니까 재미있게도 제일 먼저 결심한 것은 그림으로 돈 벌기를 멈추자였다. 다르게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억지로 써먹지 않아야겠다는 말이다. 물론 내 만화가, 내 그림이 좋아서 그걸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들과의 일은 계속해나갈 것이지만. 그럼 내 것들을 그리는 데에 힘쓸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만이 가진 대체되지 않는 것들을 더욱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림 그리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이 뒤엉켜서 2024년이 정신없었는데 이제 이걸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인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일을 찾아보고 있다. 직장에서의 일이 집에 와서 내가 하는 것을 침범하지 않는, 딱 일하는 시간 안에서 끝나는 일들을 찾고 있다. 처음 일을 찾아볼 때에는 조금 일하고 그림으로 돈도 같이 벌어야지 했었는데, 퍼펙트데이즈를 보고 나니 그냥 필요한 돈을 다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림으로는 추가수입으로 행복을 벌어야지 싶은 생각에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찾는 중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다는 걸, 아르바이트 어플을 들어가 보고 다시 깨닫게 됐다. 여전히 어느 하나 결정 못한 채 이리저리 재고 있긴 하지만 몇 달 안에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보고 후기를 쓸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바라본다.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크고 싶다. 눈을 크게 뜨고 나만의 순간들을 잘 잡아내보아야지. 그러다 마음에 들면 기록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열어보아야지. 어쩌면 그 기록의 방법이 그림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 돈은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서 변형시켜 보았다.
+) 브런치를 쓰면서 느끼는 건데 매주매주 고민들이 새로 자라나고 머지않은 미래에 그 해결책을 찾아오는 게 좀 신기하다. 욕심부리며 사는 것을 기록하겠다 마음먹고 시작한 것인데 삶의 오답노트를 만들어나가는 것 같아서 또 뿌듯해진다. 아마도 오늘은 쓰고 나니 몇 주 전 글의 해결방법을 스스로 찾아낸 느낌이라 그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