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러=일잘러로 인식되어, 습관적 야근이 빈번한 곳이면 다 해당됨
10시가 지나도록 집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순간 너무나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저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일까?
- 야근이 진정 자신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걸까?
- 저 과정에서 자아실현의 짜릿함을 맛보고 있는 것일까?
- 스타트업의 일원으로서, 나 역시 우리 팀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걸까?
- 그냥 그 모든 과정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을 만큼 마냥 즐거운 걸까?
혹은 진짜 몰입하고 즐거워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다기보다는
- 단순히 늦게까지 있다는 게 열심히 일한다는 척도가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닐까?
- 야근을 하지 않으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아서는 아닐까?
- 어차피 늦게까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낮에도 시간의 효율을 좇지 않고 있는 건 아닐까?
- 더 효율적으로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일단은 주어진 일이니까 계속해서 하고 있는 건 아닐까?
- 다들 야근하고 있으니까 그냥 다들 늦게 오고 늦게 가는 건 아닐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나의 모습이었을 야근 풍경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한 달 전 뿐만 아니라, 미국 출장 중에도 나는 분명 잠자는 시간 빼고는 일을 하고 있긴 했다.
그런데 문득 회사로 다시 돌아와서, 그새 더 많아진 구성원이 전부 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맹목적으로 하루의 절반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야근을 자처하고 있는 거지?
조금만 시선을 뒤집어 생각해보니 집단 광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나도 열일하던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때의 나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자발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며,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 그 과정에서 성과가 나오고, 팀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기에 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 나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우리 모두 같이 도모하고 있었기에 더욱 즐거웠을 것이다.
그럼 왜 난 어느 순간 갑자기 그들을 이질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는가?
- 성과는 업무에 쏟은 시간만이 말해주는 게 아니라서
- 성과에 으레 상응하는 보상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게 없어서
- 객관적인 성과가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버려서
- 명확한 기준과 규정이 없는 곳에서 내가 일하는 건 단순히 고용주의 배를 불리는 일만 될 수 있으므로
조금 더 넓혀서 생각해보면 이런 건 아닐까?
- 어쩌면 스타트업이라는 것 자체도 거대한 환상 속에서 구성원들을 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불신
- 그 배후에 탄탄한 세계관을 형성한 말 잘하는 대표들과 vc들이 있겠다는 생각
- 그들의 프레이밍 속에서, 인정 욕구 강한 개인들은 일잘러가 되기 위해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닐까?
- 개인의 효능감을 명분으로 자신의 배를 게걸스럽게 채우는 게 스타트업은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소진될 정도로 업무에 매달린 팀원은 더 이상 그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고 조직에서 배제된다.
냉혹하게 말해서 기업의 측면에서 결국 효율성을 좇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처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개인이 그저 도구로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과연 당연한 걸까?
개개인의 인력 자체를 엄청나게 중시하고 있는 모든 기업들이, 결국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 개인들을 팽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이기적인 양면성에 소름이 돋는다.
물론 그럴 때에도 뻔뻔한 입에서 할 말은 여전히 있다. 남아 있는 팀원들을 위해서는 너희가 나가주는 게 그들을 위해 최선이다 - 라는 소름 돋는 가스라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