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물림을 끊는 어머니
꿈에서의 엄마는 자신의 고통을 자식에게까지 주지 않기 위해 손에 피를 묻혀가며 시어머니로부터 받는 어떠한 대물림을 끊어낸다. 실제 우리 가족과도 비슷하다. 방에서 처참한 일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관여하지 않는 남편과 문지방 너머에서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는 자식.
엄마는 할머니에게 쌓인 게 많다. 아빠가 장남이기 때문에 의무감에 모시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엄마는 과연 할머니를 끝까지 책임지려 했을까? 그런 엄마의 감정이 터져 나왔을 때는 최근이었다. 치매 걸린 할머니와 갱년기 엄마가 제대로 부딪혔던 날. 기억이 편집되어 오해가 쌓인 할머니는 애꿎은 엄마에게 화풀이를 했다. 엄마는 자기가 만만하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한번 터진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그때 엄마가 했던 말들 중에 가장 마음에 쓰였던 말이 있었다.
난 내 자식들 살려야겠으니까.
나에게는 저 말이 확 꽂혔다. 고마움보다는 안쓰러움이 컸다. 엄마는 가끔 아빠에게도 감정이 불쑥 터질 때가 있다. 아빠가 장난을 칠 때면 당신 이혼사유 엄청 많은 거 알지? 라며 화를 내곤 했다. 그렇게 괴로운 집안에서 엄마가 버티고 있어야 했던 이유는 뭘까. 어릴 적 이혼이 흠이 되던 시절에도 동네에 이혼가정이 흔할 정도로 단란한 가정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그만큼 가난한 동네였다. 어렵게 살다 보니 버티는 건 더 어려웠겠지. 하지만 엄마는 이혼하지 않고 버텨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엄마는 우리를 위해 지금껏 버틴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아빠가 성격이 많이 유순해져서 살만해졌지만 예전에는 화가 나면 욕부터 시작해서 물건을 다 집어던지거나 폭력도 서슴지 않아 언니와 나도 많이 맞고 자랐다. 사랑의 매 수준이 아니었다. 아빠가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정서적 대물림이었을 거다. 스무 살 초반에 언니를 낳게 되면서 우리 집안에 들어와 시부모님과 함께 몇십 년을 살아가며 지켜봐 왔을 엄마는 언니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이나 가족에 대한 비밀을 지켜왔다. 최근에서야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조금씩 알게 된 거다. 엄마 세대는 자식 교육에 대한 정보가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언니와 나는 할머니 손에 길러지며 거의 방치되었다. 사회에서 시련들을 직접 겪어가며 내면을 다져야 했다.
우리는 그저 생존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었다.
엄마는 실질적인 전통도 끊어내려 애쓰고 있다. 때마다 지내야 했던 제사도 최근 들어서야 절에 맡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산소도 납골당으로 옮길 예정이다. 자식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함이었다.
이런 엄마의 노력들이 꿈에도 비슷하게 투영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내 안의 어떤 정서를 끊어내려 한 것일까. 시어머니라 하면 같은 여자로서의 억압, 통제 안에 살아야 했던 정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며느리에게 돌려주며 며느리를 쥐 잡듯 잡는 시어머니의 형태. 그런 부정적 정서를 대물림하는 인물의 죽음이란 내게는 반가운 점으로 보인다.
앞서 1편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에게 옮겨져 온 수많은 감정 중에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것도 있을 거라 생각된다. 그들의 감정은 나와는 별개의 것으로 인지하기 시작했고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아닐까.
다만 방법이 너무 공격적으로 느껴져 회피했던 부분이 마음에 남는다. 꿈은 끊어내야 할 것은 단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 행위가 내게는 아직 잔인하게 느껴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