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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의 이야기 1

by 이은 Jan 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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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8 꿈 <어느 가족의 이야기>



지인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다. 꿈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보내줬다. 역시 그림 전공이라 리얼하게 표현했구나 감탄한다.
그림이 움직인다. 애초에 영상이었나?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던 거 같은데 어느새 그림 속으로 들어와 있다.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벽돌로 지어진 2층 단독주택에 자식들을 데리고 사는 부부와 시어머니가 등장한다. 고부갈등이 심해 보인다.

어느 날 밤, 분에 못 이긴 며느리가 안방에서 시어머니를 죽이고 몸을 토막 내 처리하려고 한다. 시어머니의 시신으로 음식을 만들려는 계획이다. 나는 가슴에서 배 아래까지 가운데를 죽 갈라놓은 것을 문 밖에서 지켜보다 너무 잔인해 애써 외면한다.  

아침이 찾아오고 슈렉에서 나오는 당나귀 캐릭터동키가 집으로 찾아온다. 동키는 아이들을 픽업하러 온 거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 놀러 가나 보다. 나도 이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있다. 자식들 중 한 명이다. 아이들이 신이 난 모습으로 집에서 나가지만, 나는 거실에 남는다.

오후의 햇빛이 통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거실을 갈라놓는다. 어둠이 있던 자리를 밀고 들어온 것인지, 빛 때문에 어둠이 생긴 것인지. 그 순서는 알 수 없으나, 빛과 어둠의 뚜렷한 경계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속에는 평화와 불안, 슬픔, 불완전함이 공존한다. 이 모든 에너지의 조합은 영화 미드소마의 대낮의 공포처럼 느껴지며 불쾌한 골짜기 같다.  

나는 엄마를 안아주며 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시어머니를 죽이기까지 했을까. 그 과정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는 그런 와중에도 나에게 망고를 먹겠냐며 물어본다.


1. 그림에서 가족이 되기까지


꿈에서 깨고 난 뒤에도 슬픈 여운이 남아있었다. 눈에 눈물까지 맺혀있던 걸 보면 실제로도 울었나 보다. 최근에 우는 꿈을 꾼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생각해 보니 꿈속 상황이 비슷했다. 누군가의 죽음 후에 위로를 받거나 위로를 해주는. 전에는 엄마에게 위로를 받았다면, 이번에는 엄마를 위로해 주는 입장이었다.

다만, 이 꿈에서의 엄마는 현실의 엄마가 아닐 뿐이다.


누군가의 꿈으로 들어가 내가 그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있는 흐름은 다른 이의 사연과 감정을 나의 일처럼 여기는 정서를 보여주는 것 같다.

꿈모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비슷한 결핍을 느끼기도 하고, 꿈속의 어떤 부분이 나의 일처럼 와닿기도 했다. 깊이 투사가 된 거다.


이런 부분이 과연 내게 좋은 것일까. 꿈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최근에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 걸어오는 모든 말이 다 내것은 아니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인지하기 시작했다. 아, 이 감정이 다른 이에게서 옮겨왔을 수도 있겠구나.


사람들이 부정적인 사람을 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상처받은 인간으로 남기 싫은 이유도 그렇다. 부정적인 감정과 기운이 다른 이에게 옮겨 갈까 봐. 나에게 옮겨질까 봐서이다. 친밀도에 따라서 그걸 견뎌내 주는 이가 있는 반면,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다. 저 사람의 우울이 나에게 번질지도 모르니 조심하자.


이 기본적인 감정의 메커니즘을 몰랐던 게 아닌데, 왜 그동안 다 나의 것처럼 여기며 무력감을 온전히 안으려 했을까. 누군가에게 당한 배신감이 나에게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남겨졌나 보다.


꿈은 내게 경고를 해온다. 너, 너무 몰입하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모임을 그만두고, 사람들과 가벼운 관계로만 남고 싶지는 않다. 꿈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닐 거다. 그저 한쪽으로 기울어진 수평계를 맞춘 것일 뿐.


지금 중요한 것은 분별력이다. 내게 묻혀있던 감정이 꺼내진 상황과 다른 이의 사연을 억지로 끌어안고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배우가 된 상황. 나는 어느 지점에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며, 꿈을 꾸고 난 후에는 일상생활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의례를 해야 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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