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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고 싶나요?

by 이은 Ja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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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꾸는 꿈의 특징 중 하나는 집과 차를 마음대로 골라간다는 점이었다. 어릴 적에는 알고 선택하지 않았다. 문이 열려있는 곳이 내 집이다. 라고 생각하며 생존을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점점 꿈속 자아는 영악해져 이곳에 있는 집들은 다 내가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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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보통 아파트 단지에서 골라 들어갔다. 비밀번호가 걸려있지도 않거나 내가 치는 대로 열렸다. 자동차는 집보다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길가와 주차장에는 다양한 차종이 있으니 꿈속 상황이 여유로울수록 더 신중히 골라 스포츠카나 고급 세단을 타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주인이 없어 보이는 집과 차를 탐냈지만 점점 과감해져 그 자리에만 없으면 내가 차지해 버리고 빠르게 달아나거나 문을 잠가버렸다. 하지만 꿈속 상황은 계속 바뀌어 갔고 그에 따른 자아의 태도도 달라졌다. 집문을 열었을 때 누군가가 있어서 도망치듯 나오거나, 주변 눈치를 보느라 차를 마음대로 타질 못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몇 번 언급했듯이 꿈속에서 집과 자동차는 나의 정서와 깊은 연관이 되어있다. 꿈속 자아는 현재 어떤 집에 머물고 있는가, 그곳의 분위기가 삭막한 지, 현실에서는 어떤 연상이 되는 곳인지, 그 집에 누구와 있었는지에 따라 많은 투사가 나온다.


자동차도 마찬가지 사람을 많이 태우고 다니는 버스냐, 가족과 오붓하게 가는 승용차냐에 따라 나는 현재 어떤 인생길을 가고 있는지 어렴풋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무의식은 옷을 마음대로 바꿔 입는 카멜레온 같은 정서와 닮아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으려 하고, 머물 수 없는 기질. 도전적인 모습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의 어떤 꿈을 통해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꿈에서는 집이 정해져 있었지만 막상 앞에 가니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호수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 집이 내 집이 맞나? 의문이 들었다. 함께 들어온 두 사람이 집 안을 헤집으려 하자 겁이 나 신발도 신지 못 하고 도망 나온 기억이 난다.


꿈속 자아는 자신의 집이 어디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마지막에는 맨 발로 뛰쳐나와 길거리를 헤매고 다녀야 했다. 그 의미는 내게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지금껏 나는 뭐 하며 살았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내 집은 어디지? 나를 보호해 줄 집은 누군가에게 침범당했다. 그리고 이제는 신발조차 없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체성 혼란이 찾아온 거다. 정확히 말해 지금껏 진정한 나로 살아본 적이 없던 거다.


항상 느껴왔던 결핍이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을 지지해 주는 부모에 대한 결핍, 친구에 대한 결핍, 자신을 사랑해 주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결핍. 그 빈 틈을 메꾸고자 남의 집도 들어가고, 남의 차도 훔쳐보고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결국 나는 맨 발로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어버린 거다.


누군가는 말했다. 모방에서 예술이 되고, 남의 옷을 입다가 내 옷을 찾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고. '살기만'하면 된다고.


그 위로가 와닿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다시 찾아왔다. 앞으로의 꿈은 나를 어떤 길로 인도해 줄까.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나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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