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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의 의미

by 이은 Jan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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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전에 꿨던 꿈과 이어지는 듯한 꿈을 꿨다.

약 한 달 정도 기간의 차이가 있지만 두 꿈은 묘하게 닮은 점들이 많았다.


첫 번째 꿈.



2024.12.13 <바다에서 놀다가 물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제물로 바쳐질 뻔했다.>

나는 병원에서 일한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숙직실에 누워있다가
남자 동료 한 명과 밖으로 나온다.
나오다 보니 다른 남자동료 한 명이 더 추가되어 나까지 총 세명이다.
아저씨에게 차를 얻어 타고 어떤 해변에 도착한다.
바닷물이 너무 예쁘고 맑아서 신이 난다.
아저씨는 깊은 곳에 가지 말라고 주의한다.

나는 새빨간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몸을 던진다.
수영을 못하지만 아예 힘을 빼고 빠져버리면 뜰 거라는 것을 안다.
어느새 깊은 곳까지 와버렸다.
바닷속의 큰 바위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있다.
사람들은 양반다리를 하고 있다.

잠시 해변가로 나와 이상한 구조물 위에 동료들과 앉는다.
물속에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나와 대화를 시도한다.
결론은 우리가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헐레벌떡 도망간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어떤 차를 골라타야 할까 고민하다 새빨간 차가 눈에 띈다.
우리를 데리고 와줬던 아저씨가 타있다.
난 잽싸게 조수석에 탄다.
아저씨에게 핀잔을 듣는다.
동료 한 명도 뒷좌석에 탄다.
나는 한강(남은 남자 동료)이 와야 한다며 기다린다.
한강이 뛰어오고 남자도 그 뒤로 빠르게 쫓아오는 게 보여서 나는 들고 있던 펜으로 찌를 준비를 한다.
다행히 한강만 차에 탔다.
차가 출발하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돌석상들이 띄엄띄엄 서있다.
아저씨는 그 사이를 능숙하게 운전해서 나간다.


두 번째 꿈.

2024.1.6 <모모에게 꽃을 선물 받았다.>

어떤 체험 전시회장에 온 거 같다.
식당도 있는 거 같고 다양하다.
혼자 길을 따라 여러 방을 지나쳐 로비로 나오니 모모가 다양한 꽃들을 들고 있는 게 보인다.
나를 보자마자 수국을 준다.
꿈모임 사람들에게 주려고 하나보다.
수국도 정말 예뻐서 고맙지만 금방 시드는 거 같다.
하늘색 장미가 더 탐난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다.
꽃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모모와 다시 전시회장 안으로 길을 따라간다.
입구에서 랄라와 만난다. 붉은색 차를 타고 집에 가야 한다.
내 차는 아니고 랄라의 차인데 최근까지는 모모가 몰았던 거 같다.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에 랄라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한다.
좀 특이한 화장실이다.
건물이나 칸막이가 아예 없고 사람이 들어가는 커다란 사이즈의 아이스백 재질의 주머니가 여러 개 나란히 있다.
그 안에 들어가 해결하는 모습을 맞은편에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다.
이제 출발한다. 앞 좌석에 셋이 나란히 앉아간다.
나는 운전석에 모모는 가운데 랄라가 가장 끝 조수석에 있다.
출발하고 나니 내비에 주소를 입력하는 것을 깜빡했다.
랄라를 먼저 데려다줘야 해서 집주소를 물어보며 서로의 집이 어디인지 짧은 대화를 나눈다.

이상하게 브레이크가 헐렁하다.
나는 모모에게 중립으로 잘 설정해 둔 거 맞냐고 묻는다.
모모는 잘해뒀다고 한다.
차 속도가 꽤 빠르다.
이대로라면 부딪힐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길이 막히지 않아서 스무스하게 잘 피해 간다.
신호에 걸려서 서는데 앞차와의 간격이 아슬아슬하다.
생각보다 잘 멈췄다.
차가 망가진 게 아니구나 안심한다.

 

위의 두 꿈의 닮은 점은 '붉은색'이다.

꿈에서 특정한 색이 강조된다면 자기 연상과 상징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우선 붉은색에 대한 나의 연상은 열정과 피, 혁명, 불, 분노, 사랑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감정적인 상징들이 지배적이다.


왜 붉은색이 강조되었을까?


첫 번째 꿈에서의 나는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수영을 즐기게 된 점이 가장 반가운 부분이지만

여전히 운전대는 다른 이가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를 통제한다. 그러면 안돼. 그러지 말라했지.

중년의 남성은 내게는 대체로 현실주의 경향으로 투사된다.

그들은 먼 과거, 혹은 먼 미래보다는 지금에 충실하려 하며 아픈 상처를 묻어두는 회피적인 모습도 보인다.

꼭 중년이 아니라도 내가 본 남성들은 그랬다.

아버지와 친척들 전 애인들 모두.

그들은 굳이 들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두 번째 꿈에서 나는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있다.

다만 그 차는 본래 나의 차는 아니었고

랄라와 모모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것처럼 계승되어 나에게까지 왔다.

그들은 모두 꿈을 공부하며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비슷한 아픔이 있고, 자유를 갈망하며,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한다.


한 달 사이에 내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이 보인다.


12월쯤까지의 나는 자유를 갈망하기는 하지만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입구에 석상을 여러 개 세워 막아둘 정도로 통제하고 있었다.

나의 분노, 피, 폭력과 연결되는 어떠한 지점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고

결국 다시 감추기로 결정했다.

너무 많이 드러내면 오히려 다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기도 했다.


또한 관계적인 면에서도 흐린 눈을 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아닐 거라고 믿어왔던 친구와의 거리감이 나에게 항상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결국 그 친구와의 인연을 놓아버렸다.

놓고 보니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친구가 아닌 그 친구를 생각하는 나의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내가 놓기만 하면 놓아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 일들이 1월에 반영이 된 것일까?


꿈속에서 나는 여러 체험 전시를 지나 모모에게 다다른다.

모모에게 꽃 선물을 받았을 때는 무지 기뻤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어.

암묵적인 메시지가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붉은색 차를 몰고 각자의 집으로.


랄라가 특이한 화장실을 간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좋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주의해야 하는 건지.

이 부분은 꿈모임을 통해 투사를 받아봐야겠지만

우선 지금의 내게 다가오는 느낌은 브런치와 꿈모임들을 하며

나의 내면을 정돈하는 과정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투영된 것 같기도,

첫 번째 꿈에서 느꼈던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서 나를 다치게 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화장실의 형태가 기이하고 불편감을 준다는 점에서 좋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융의 이론으로 볼 때 붉은색은 충동성과 경고를 나타내기도 한다.

드러낼 것은 드러내되, 조금 더 정돈한 후에 드러내자.


명리학에서 나의 사주를 해석할 때 태양으로 본다.

내 주위에는 물과 금으로 태양을 극하는 에너지들만 있어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환경이거나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내가 힘들 때는 기댈 곳이 없다고 들었다.


갑자기 그 해석이 이 꿈들과 맞물린다.


나의 진짜 모습이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멀리한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서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의 모습이 따로 있는 것도

지금까지 살아오며 깨달았던 부분이다.


참 어렵다.


누군들 안 그런가 싶으면서도

누군가는 밑바닥까지 보여도 옆에 있어주는 친구 한 명이라도 있는가 하면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다.

하지만 너무 불행하게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누구나 하나의 결핍, 외로움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면 난 그런 부분이라는 거니까.

적당히 거리만 유지한다면 나를 통해 위로를 받고 도움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니까.

자립심과 독립심에 따르는 외로움은 평생 감수해야 함을 인지하기만 하면

외롭고 싶지 않다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게 어려울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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