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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뱀

by 이은 Feb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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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4일의 꿈. 


을사년을 맞이해서일까? 꿈에 새하얀 뱀이 나왔다. 꿈은 길지 않았지만 뱀이라는 자체가 임팩트가 커서 꿈지락 모임 때 공유했다. 


<하얀 뱀이 친구를 물어서 혼내다.>

승합차를 타고 일을 하러 간다.
나는 맨 뒷자리, 내 앞자리에 친구가 타 있다. 
새하얀 뱀이 창문을 통해 차 안으로 들어온다. 
갑자기 친구의 얼굴을 몇 번이고 문다. 
나는 뱀을 잡아 혼낸 다음 무릎에 있던 하얀 비닐 가방에 넣는다. 

새하얀 뱀과 하얀 비닐, 하얀 피부의 친구


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뱀은 왜 하필 그 친구를 물었을까? 나에게 뱀이란 통제할 수 없고, 빠르고, 징그럽고, 공격적이며, 악을 상징한다. 하지만 찾아보니 어느 나라에서는 뱀이 행운을 상징한다. 이처럼 뱀이란 이중적인 존재다. 


그렇다면 하얀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선'이다. 꿈에 나온 친구와 나의 가장 큰 공통점은 외부에 보이는 이미지를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사람 간의 배려와 예의를 중요시하며,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을 참지 못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가려 만나게 된다.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한발 물러서서 배려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열린 마음으로 개성을 존중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크게 보면 나나 그 친구는 가려 만나는 성향인 거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선할 수 없고, 의도와는 다르게 결과가 안 좋게 나올 수도 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록 그런 환경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기에 뱀이라는 공격성이 강한 존재를 이용하여 왜 그랬냐며 자기 비하를 하는 내 모습이 투영된 게 아닐까. 


혹은 말 그대로 선한 이미지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겉모습만 보고 착할 거 같다, 순진무구해 보인다는 평가가 많았다. 거기서 끝났다면 다행이지만 그걸 이용해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만만하게 보고 더 신경질 적으로 대하거나, 무례한 말을 서슴없이 뱉으며 나중에 가서야 내가 그랬냐며 뻔뻔해진다. 대학 다닐 때 동기 언니가 넌 참 밋밋하게 생겼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언니의 무례함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들을 때마다 멍해질 정도로 교통사고를 당한 느낌을 받으며 깊은 상처로 남았다. 다른 동기와 비교하기도 하고, 일명 '얼평'이 많았다. 본인은 예쁘다고 생각하는지 우리끼리 등수를 매기자며 스스로를 2등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되어 여성 인권에 대해 열을 내더란다. 이렇듯 여성 인권을 생각하는 선한 사람의 이면에는 무례한 혀가 있었다. 


그 언니는 내 인생의 아주 작은 일부였다. 더 이상 만만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얀 뱀이 되었다. 처음에는 상냥하지만 조금만 선을 넘어오면 공격할 수 있도록. 


나는 그 뱀을 잡아 하얀 비닐에 넣는다. 내 안의 공격성을 통제하는 능력은 있지만, 뱀을 아예 죽이거나 단단한 자물쇠를 걸어 잠근 것이 아니니 언젠가는 또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아마 한동안 그 뱀을 죽일 수 없을 거다. 죽이는 것이 옳은 일인지조차 아직은 모르겠다. 그 뱀과 공존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더 이롭지 않을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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