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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원 Sep 20. 2021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15)'가장 첫기억의 추석'

열다섯 번째 이야기, 내 생에 가장 첫 번째 기억의 추석 이야기


시어머니 명희의 첫 기억의 추석


내 나이 칠십!

추석을 칠십 번째 보내고 있다. 어린 시절 천진난만해서 추석이 되면 너무나 좋았던 기억. 엄마를 돕는다고 떡을 빗고, 엄마가 심부름시키면 좋아서 뛰고, 송편 찔 때 깔아 놓아야 하는 솔을 따러 가서 바구니에 한가득 따 머리에 이고 왔던 그 옛날의 기억.

가마솥에다 솔을 깔고 엄마는 송편 만든 것을 한가득 넣으시고, 나는 장작을 지피던 먼 옛날의 기억들.

참 눈물 나게 아름다운 때 묻지 않았던 어린 시절... 추석날이면 예를 올리고 손님들이 오시고 참 좋았었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추석 날에 손님으로 오신 친척 오빠였다. 오빠 친구이기도 한... 그 오빠의 노랫소리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집 대청마루에서 부르던 그 오빠의 노래.

 가에타노 도니체티 作 <사랑의 묘약>에서 네모리노가 부르는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얼마나 잘 부르시든지. 추석 하면 한가위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노랫소리가 귓가에 머물러 있었던 그때 잊지 못하는 추석(?)이었다.

그 노래를 좋아해서 남몰래 눈물을 그렇게도 많이 흘린 나의 삶이었었나도 생각해보면서...ㅎㅎㅎ


2021년 추석도 나의 삶에 있어서 뜻깊은 한가위다. 며느라기랑 브런치에 글을 기재하면서 맞이하는 첫 번째 추석이기에... 내 삶에 이런 행복한 일이 생겼다는 것, 그래서 이번 추석은 더 뜻깊은 한가위다.

마음속에는 언제나 유행가 가사 글귀를 새기면서 살았었는데...


운명이 나를 안고 살았나

내가 운명을 안고 살았나

- 류계영 <인생>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이 나를 안고도 살고, 내가 운명을 안고도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현재는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다. 남편과 아들과 자부와 소중한 나의 손자와 이렇게 이번 추석은 행복하게 맞이한다.

살아 있음에 인내했으므로 현재 내가 존재한다. 2021년 추석이야말로 나에게 있어 fantastic(?) 그 자체인 것이다.


9月 18 SAT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며느리 채원의 첫 기억의 추석


 희미한 기억 속에 어린 나는 명절이면 동생과 함께 한복을 입고 외가댁에 갔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은 흑석동에 있었다.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 그곳은 동네의 가장 높은 자리의 단독주택이었다. 자리가 좋아 절을 짓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단다. (그만큼 높았다 ㅎㅎㅎ) 국민학생 때부터 그곳에서 자란 엄마에게 흑석동 집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나는 가끔 그곳에 가고 싶다.


 적당한 크기의 마당에는 은행나무와 감나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을이면 은행 열매를 따다 주셨다. 버터를 살짝 넣고 소금을 친 볶은 은행을 먹을 때면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감을 따다 홍시를 만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독 감을 좋아했던 나는 특히 '할머니의 감'이 좋았다.

"감을 하루에 그렇게 많이 먹으면 화장실 못 간다!!!"

라고 하시면서도 내가 달라는대로 계속 감을 깎아주시던 할머니.

 육 남매에 손주 13명 중에서도 감은 내 거였다. 추석 때면 우르르 있는 가족들 틈에 나를 조용히 부엌으로 부르셨다. 부엌의 뒷문으로 나가면 작은 광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장독대와 각종 식료품들이 있었다. 할머니는 그 사이에서 작은 바구니에 담긴 홍시를 내게 내밀었다. "이것밖에 안 남았어, 여기서 먹고 들어가~"

젊었던 우리 할머니와 으히히 하면서 할머니의 홍시를 먹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보다 더 어렸을 때의 기억을 잘 안고 살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10살 때는 5-6살 정도의 기억을 지금 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아이 곁에서 생각한다. '어린 시절'로 뭉뚱그려지는 지금의 기억들이 10살에는 더 명확한 기억들이었고 그러한 기억들이 쌓이고 잊히고를 반복해 단단하게 성장해 나가는 게 아닐까.


 태어난 지 200일도 안되었던 작년의 추석과는 다르게 걷고, 달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것저것 만지고 노는 지금의 기억은 아이의 인생의 첫 추석의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왁자지껄 온 가족이 한 번에 모여 보낼 수 있는 추석은 아니지만 가족들과 마주 보고 하하호호 웃으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따뜻한 순간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의 아이가 어렸던 시절을 떠올릴 올해의 나의 추석은 그 어느 날에 기억될 만큼, 가을바람을 온전히 느끼며 평화롭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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