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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Sep 03. 2017

애들은 몰라도 되는 일일교사의 속마음 - 2

2편


#5

"I hate you!"


오동통한 3학년짜리 소녀가 소리를 지르곤 교실을 뛰쳐나갔다. 나는 곧바로 교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교장 선생님이 교실 문에 기대어 부루퉁해있는 아이를 다. (캐나다에서 교장, 교감 선생님은 교사를 서포트해주는 역할로,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도맡아 케어한다. 때문에 특수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항아로 익히 알려진 아이라 모든 과정은 순조롭다면 순조롭게 처리되었다. 감기로 컨디션이 저조한 날이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아이는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간에 아이패드를 (항상 그놈의 아이패드가 문제다!) 붙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몇 번 주의를 주었지만 못 들은 척이다. 나는 곧바로, 유치원부터 중~저학년 만국 공통어인 '다섯 셀 동안 제자리에 놓으세요'를 시전 했다. 어설프게 반항하는 아이에게만 통하는 언어이니만큼 만만찮은 이 친구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기분이 별로였던 내 표정도 한몫했나 보다. 자신을 몰아세운다고 느낀 아이가 불편한 상황에서 도망친 것이다.


교사는 Power struggle (기싸움)의 기류가 생길 때 아이의 성향에 따라 그냥 넘어갈 것인지, 대응할 것인지,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빠르게 결정한다. 학생들은 처음 보는 나를 시시각각 관찰하고, 나도 반마다 아이마다 다른 분위기를 빨리 읽어내야 한다. 그날의 교사로서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선을 그어주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나를 알아간다. 매일 새로운 반에 들어가야 하는 일일교사에게 필수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임무다.


반항적인 아이를 다룰 때가 가장 조심스럽다. 이 아이가 어떤 일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사전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 무턱대고 강압적으로 대할 수도, 너무 무르게 대할 수도 없다. 결국 살살 찔러가며 반응을 살피는 것이 최선이다. 이 날수업 시작하고 얼마 안돼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탐색할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나의 여유 없는 태도는 반항심에 기름을 부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는 아니었다. 문을 박차고 나간 친구의 이름이 담임선생님이 지목한 요주의 인물 리스트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담임 선생님이 Substitute Folder (일일교사를 위한 폴더) 안에 하루 일과, 자주 쓰는 교전략, 주의를 요하는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는다. 굉장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 앞에서는 문제가 전혀 없던 아이가 갑자기 어려운 케이스로 변모하는 경우도 있고, 선생님이 소위 문제아라고 지목한 학생이 나와 상성이 잘 맞아서인지, 아니면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서인지 유순하게 구는 일도 많았다. 어떤 이는 Substitute folder에 있는 정보에 크게 의미를 두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부러 편견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매일 아침 반에 들어가기 전 기도한다. 무슨 신성한 의식이 아니라 내가 두렵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 익숙지 않은 아이들의 신변이 내 손에 달린다 (무서우면 극단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법. 애들 사고 날 수도 있어!). 마음도 돌봐야 한다. 나에게는 하루뿐인 시간이지만 어린 시절의 순간이 인생  마음에 남을 수 있다. 나는 그랬다. 하고 많은 초등학생의 나날 중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장면은 어이없게 평범한 순간이었다. 누군가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가 여과 없이 마음에 새겨진다. 좋은 말은 따뜻함으로 치환되어 지금까지도 마음을 덥히고 피식 웃게 만든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처가 되어 이때까지 생각을 제어하는 말도 있다.



#6

"선생님은 상은이가 제일 이뻤어~"


뻥 뚫린 겨울 하늘 아래서 맞은 3학년 마지막 날, 위아래로 빨간 정장을 입은 담임선생님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내 자존감의 보루가 된 말. 지금 생각해 보면 나 말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조용한 나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본심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했을 수도 있고. 이런 구구절절한 경우의 수를 세어봐도 이미 마음에 각인된 말은 언제 어디서나 따뜻하다. 어려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소곤소곤




#7

내 최악의 기억은 단소 시험을 봤던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왜인지 필 받고 몇 날 며칠 열심히 단소 연습을 했다. 시험 날, 선생님은 교탁 옆에서 한 명 한 명 단소를 불게 했다. 부끄럼이 많았던 나는 모두가 보는 앞서 단소 연주를 해야 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다. 긴장해서 연습량의 반의 반도 못하고 낮은 점수를 받았다. 속상했다. 재시험을 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는 선생님 말에 가진 용기를 모조리 쥐어짜서 앞에 섰다. 긴장을 떨쳐 내치 못한 나는 또다시 삐걱댔다. 부끄러움에 제자리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나의 등 뒤로 선생님이 한 마디 했다.


"잘 하지도 못할 거면서 왜 또 나왔대?"


그 말에 무너졌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뚝뚝 흘렀다. 선생님은 미안한 눈치였지만 학년이 끝나도록 사과의 말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발표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았다.



#8

교대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은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무 편견도 가지지 말라 (once you get into a classroom, never assume anything)'였다. 표면적인 정보만 가지고 '이럴 것이다'라고 추측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이름들을 앞에 두고 편견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내가 가진 이 근거 없는 사전 지식은 나를 생소함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보호하고자 주워 든 심리적 쿠션이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학생 때 배우는 지식도 모두 새로운 영역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일일교사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은,


"처음에는 웃음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안 웃어도 안돼."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바로 대응해야 아이들이 널 무르게 보지 않아."
"하겠다고 말한 건 꼭 지켜야 해."
"말 안 들으면 담임선생님에게 언질을 줄 거라고 말해."
"아이들에게 점수 시스템을 써봐. 잘 하는 아이들에게 조그만 상도 주고."


등등, 공공연히 사용되는 전략만 해도 수십, 수백 가지가 넘는다. 처음 나의 목적은, '이 중 어떤 것이 나에게 가장 맞고 또 효과적인지 알아보자'였다. 두 달의 짧은 시간이지만, 학기가 끝날 때 즈음 일렁이는 생각 속에서 한 가지 큰 틀이 떠올랐다. 나의 신조로 삼고 싶은 말이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자."


전략은 필요하다. 나에게 맞는 전략도 별 효과가 없는 것도 분명히 있었다. 어떤 전략은 이 반에서는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반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대응하는 방식도 아이들의 수만큼 다양했다. 유머도, 엄격함도, 가끔 관대한 척 허락하는 자유도 결국 나의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가능했다. 두려움은 사고를 경직한다. 몸이 피곤한 날은 생각이 방어적으로 흘렀다. 하지만 내 마음이 즐거울 때, 아이들이 사랑스러울 때, 이 방법 저 방법 유연하게 써 볼 용기가 생겼고,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웃으며 다가갈 수 있었고, 또 누군가 나를 거부할 때 주눅 들지 않고 품을 수 있었다.


사랑 vs 두려움


#9

두려움이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더 클 때 섣부른 판단할 가능성이 높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얼른 방어태세를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실을 뛰쳐나갔던 여자아이 앞에서 나는 '다른 아이들이 나를 물로 보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으로 다섯을 세었다. 피곤하니까 빨리 문제를 해결하자는 마음도 있었다.


얼마 전 키앤필이라는 드라마 클립을 보며 배꼽 잡고 웃었다. 나의 두려움이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된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싶었다. 흑형 일일교사가 아이들 출석체크를 하는 장면인데, 선생님의 자기소개가 상당히 위협적이다.


"난 교사 생활을 도시에서만 (inner city 소위 꼴통 학교가 많다는 지역) 20년 동안 했다.
그러니까 나랑 장난칠 생각들 하지 말아. 알아들었나?!!"  


그리곤 당당히 출석을 부른다. Jacqueline (재클린)을 제이콸, Blake를 블라~케, Denice를 디-나이스, Aaron을 에이-에이-롼 (빵). '제 이름은 아론인데요...'라고 하면 '이런 #@삐$%^삐-!!!' 지금 대드는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낸다. 얼척이 없어진 아이들은 입술을 오므리고 눈치를 본다. 사실 교사보다는 조교 같은 태도로 교실 앞에 서는 게 더 쉽다.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리 굴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파악하지 못하는 대상에게서 느끼는 두려움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괜찮아. 건강한 긴장이다. 아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1%라도 높은 51%가 되도록 교실문을 열기 전 기도 하자. 자기 관리를 못하는 날도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준비 안된 제 모습을 보고 되려 긴장하는 실수를 알면서도 저지르겠지. '머리에서 가슴 사이 30cm 거리가 멀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알기는 알아도 살아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전략 왕보다는, 나를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신참 일일교사의 작은 소망이다.



글, 그림 상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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