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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Aug 19. 2017

캐나다 학생을 괴롭히는 사악한 문제들

학력평가 채점관 체험기


                                      삑 - 삐빅 - 삑 - 삑



                                                                                                   삐비빅 - 삑 - 삐빅 - 삑빅

                            삐빅 - 삑 - 삐익 - 삑



                                                                       삑 - 삐빅 - 삑 - 삑




                                            삑




                                                                                                                            삐빅





7월 12일, 콘퍼런스 홀의 높은 천장은 바코드 찍는 소리로 가득했다. 사람 키 높이의 파란 커튼으로 벽을 쳐서 운동장한 공간을 수십 개의 방으로 나누었다. 복도를 따라 교실이 늘어선 학교 같다. 방 안에 앉은 백여 명의 사람들은 책상 위에 쌓인 종이 더미에 열중하고 있다. 뻥 뚫린 천장이 무색하다. 한 손에는 종이뭉치, 다른 한 손에는 스캐너를 들고 한 권이 끝나면 다음 권으로.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시키는 반복적인 움직임과 스캐너의 기계음은 공장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내 자리는 앞에서 두 번째 줄, 책상 끝이다. 그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러시 아워를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일터에 도착했다. 옆 자리의 인도 아주머니는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사는데도 아침 출근길에 잡혀 겨우 제시간에 도착했다고 한다. 빠르게 아침인사를 건넨 우리는 곧바로 일에 몰두했다.   전지에 커다랗게 적힌 한 문장. 오늘의 목표량: 400! (Today's target: 400!)


EQAO scorer로 5일간 일당을 뛰었다. EQAO는 Education Quality Assessment of Ontario, 온타리오 주제 학력 수행평가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초등학교는 primary (1-3학년)와 junior (4-6학년) 두 부로 나뉜다. 꼭짓점인 3학년과 6학년이 시험을 치른다. 교육부는 여기서 산출한 통계로 계획과 전략을 짠다. 주관식의 비율이 높은 시험이라 나 같이 여름에 할 일 없는 교사를 데려다 일당을 주고 채점관으로 쓴다.


우리 팀 감독은 어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marker가 아니라 scorer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라고 일주일 내내 강조했다. 뭔가 어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원어민이 아니므로 짐작할 뿐이다. 채점관은 한 학생의 능력치를 평가하는 직책이 아니라 단순히 시험지 답안을 토대로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는 역할이라 생각하라는 뜻 같다. 그 덕에 눈 앞의 데이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험지가 담지 못 아이들의  모습도 자주 떠올랐다. 나의 동료 채점관과 슈퍼바이저는 하나같이 어떻게 하면 점수를 더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렇다 해도 아이들과 나는 10, 20, 30, 또는 40의 모양으로만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숫자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이들 몫이다.


내가 속한 팀은 전체 국어 시험에서 Reading, 독해 주관식 2 문항만을 5일 내내 채점했다. 같은 문제를 하루에 적게는 200에서 많게는 500번 가까이 점수를 매긴다. 첫날 오리엔테이션 때 채점 기준과 샘플 답안을 가지고 맹연습을 시켰다. 연습용 문제도 스캐너로 찍어서 전산화하기 때문에 감독은 팀원이 매긴 점수를 실시간으로 대조해서 피드백을 줄 수 있다. 우리들이 어느 정도 정확도를 내자 본격적인 채점작되었다. 그 이후로는 반복, 반복, 그리고 또 반복되는 똑같은 문제다.


우리 팀은 짧은 이야기를 읽고 1. 내용 요약 2. 중심인물의 성격을 유추하는 질문을 담당했다. 삭막한 공장 분위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가끔 보이는 재기 넘치는 답안 덕이다.


캐릭터에 과하게 감정을 이입해서 격한 어조로 쓴 아이 (시험 참 재미있게 볼 수도 있구나...)
지나치게 적절한 관용어를 쓴 아이 ('업보, 업보, 업보죠 뭐. karma, karma, karma...' 푸훗)
아예 소설을 쓴 녀석 (답이랑 전혀 상관없었지만 재밌게 읽었단다. 다른 답안도 읽게 만드는 마성의 흡입력...!)
채점관과 대화 또는 딜을 시도하는 아이들 ('안 좋은 답 써서 죄송해요. (I'm sorry for using a bad answer).' '알잖아요 (you know)' 등 댓글을 달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혼자 떠드는 애 ('나도 쓰다듬을 수염이 있었으면... 그냥 한번 생각해 봤어요 (If only I had a beard to stroke. That's just what I think.)')
협박하는 놈 '배짱 있으면 전화해 보시지 EQAO: 666-666-6666 (Call me EQAO if you dare)" 번호 뭔데 이거 무서워...
지문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이 인물의 성격은?이라는 질문에 '내 머리 속 목소리가 능글맞게 들려서 (because the voice in my head made it sound sneaky.)' 라니 너의 목소리가 들려~냐고.
글씨가 너무 작아서 현미경으로 봐야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들 (시험을 르네상스 시대 털 한 올 한 올 그림 그리는 장인 정신으로 보나. 옆자리 노안 오시는 인도 아주머니가 이런 시험지를 보고 절망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몇 번 목격했다...)


스펠링이나 문법 오류는 채점 기준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용 자체보다 글씨나 스펠링을 해독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았다. 개손 새손 쓴 글씨야 흔하고요. 또 기상천외하지만 제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스펠링이 여럿.


cautious -> coshis
said -> sayed
reasonable -> resnabull (이게 제일 웃겼음)
conversation -> conversaytion
Know -> no, knew -> new
speak -> speek ('ea', 'ee' 동음꽤잘알, 이라고 밖에는...)


덤으로, 나라별 말씨를 드러내는 스펠링 오류도 있다. 가령 'I cawl dit ___'이라고 스펠했다면 아프리카계 사람이지 않을까 추측해서 쓰고자 하는 단어를 찾아본다. 'I call that ___'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시험지에서도 빛나는 아이들의 센수!


채점을 하며 가장 깊게 느낀 것은, 시험을 위한 스킬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느낌상 지문을 어느 수준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채점 기준이 요구하는 요소를 빼먹어서 낮은 점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긴 답을 내놓으면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 착각하고 상관없는 지문을 끌어다 쓰거나 사족을 붙였다. 당연히 짧더라도 EQAO에서 원하는 정보를 포함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EQAO도 잘한 게 없다. 질문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나라도 자칫하면 엉뚱한 답을 내놓을 것 같다. 불안하니까 '이중에 네 취향이 하나쯤은 있겠지'의 정신으로 구구절절 더하고.)


획일화된 시험의 이러한 한계 때문에 EQAO를 싫어하는 선생님을 여럿 만났다. EQAO를, Evil Questions Attacking Ontario students라고 참신하게 부를 수도 있다는 걸 친절하게 설명해준 분들이다. 시험 치는 기술을 가르 시간에 진정한 평가를 하라는 말이다. 점수라는 틀에 개인의 독창성이 꺾이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다. 그렇다고 주 행정에 꼭 필요한 자료를 포기할 수도 없는 일. 그 사이에 낀 교사는 무엇을 해야 좋을까?


나는 시험 치는 기술을 대놓고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들이 점수에 상처 입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점수에 대한 개념이 올바르게 자리 잡도록 도움을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물론 사회나 가정 분위기를 고려하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누구라도 한번 짚어줄 필요는 있다. 이해력과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이 교과목의 궁극적인 목표다. 하지만 '시험은 게임(규칙에 따라 결과가 생기는 일)이다'라는 것을 아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




관계에는 룰이 존재한다. 삶의 모든 요소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자연스레 규칙이 생긴다. 시험도 너와 나 사이 지식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소통과 피드백이라는 의미가 변질되어 인간됨을 좌지우지하면 문제가 된다. 서로의 필요를 알아내기 위한 유용한 도구가 사용자를 상처 입혀서야 되겠는가.


사는 게 아닌 이상, 어느 룰을 중요하게 여기고 또 체득하도록 훈련할 것인 선택하는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가족 내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이는 학교,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규칙은 그 공동체의 문화를 그리는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가자로서 삶을 시작하며 한 영역의 규칙을 익히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초밥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간단한 일도 몇 달이 걸려야 손님 시중드는 , 주방 내 서열, 사장님 대처방법 등이 보이기 시작한다. 권력자인 사장님이 긋는 선의 모양에 따라 일터 분위기는 가족 같을 수도 있고 더럽고 치사할 수도 있다.


이렇듯 세상은 크고 작은 선들과 이를 지키거나 무시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선은 법이라는 진하고 굵은 궁서체로 무시 못할 분위기를 풍긴다. 다른 실선은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존중받기 위해 앙앙 대기도 한다. 사람들은 시끄러운 선을 보면 피한다. 그리고 예민한 이는 쉬이 드러나지 않는 선도 읽을 줄 안다. 그림에 사용된 선이 모양을 그리는 작은 단위이듯 규칙이 모여 그 대상을 표현한다. 이는 알바 집 사장님의 인격으로, 우리 집 가풍으로 아니면 학교 분위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넘어도 되는 선일까?



아이들이 이 점을 어렴풋이나마 알았으면 좋겠다. 결국 시험도 땅에 줄 긋고 누가 어디에 서 있나를 보는 규칙의 집합일 뿐이다. 물론 까불고 노는 땅따먹기 같은 놀이는 아니지만. 그 작은 세계는 인생의 일부분이다. 나도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으니 아이들은 오죽하겠느냐만은, 수준에 맞는 용어로 설명할 수만 있다면 아기도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해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계속 고민하다 보면 좋은 수가 나올 것이라 믿는다.


학생이란 좋든 싫든 시험이라는 게임에 참가해야 다. 하지만 자신이 그 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면 여유가 생긴다. 여러 채널을 돌려가며 게임을 선택할 수 있는 메타인지가 분명히 있다. 나 자신도 규칙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에.

"성숙한 사람은 선을 잘 긋는다."


내가 존경하는 한 멘토의 말이다. 자신을 정의하는 모든 것의 '알맞은 정도'가 어디인지 잘 파악한 사람이다. 세상에 대응하는 자신만의 규칙을 가진 사람이다. '공부 잘해야 성공한다,' '결혼은 몇살에 해야한다' 등 이미 만들어진 룰을 ctrl+c, ctrl+v 하지 않고 자신과 공명하는 규칙을 차용할 용기가 있는 사람. 타인과의 공감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모두 백지로 삶을 출발해서 주변의 규칙과 동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나의 반응을 보며 나만의 선은 어느 동네 어디 즈음인지 발견한다. 나에게 맞는 코드를 수용하고 결국에는 그 규칙으로 가정도 세우고 사회의 룰에 딴지도 걸어보며 산다. 결국 남이 정해준 것이 아닌 나의 게임, 프로그램, 또는 인생을 구축하는 게 성공한 인생 아닐까. 그럴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싶고 아이들이 그 길을 갈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글, 그림 상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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