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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Aug 17. 2017

애들은 몰라도 되는 일일교사의 속마음 - 1

1편

#0


지난 5월, 일일교사로 채용되어 생에 첫 출근을 했다. 

출근하기 며칠 전 저지른 한 가지 실수라면 바로 유튜브에서 일일교사 체험담을 줄줄이 시청한 일이다. 그 지옥의 반나절에 대한 일담은 대개 미국 사람들 입에서 나왔다. 미국은 캐나다와 달리 교사 자격증이 없는 일반인도 시험을 통과하면 일일교사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은 있지만 가르치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첫 출근에 아이들에게 크게 데이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 시점 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심은 극대화되어 '학생들한테 산채로 잡아먹히고 말 거야...' 까지 발전했다. 대체 애들을 뭐라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몇 년 전 캐나다에는 공평한 채용 기회를 위한 법이 새로이 제정되었다. 모든 교대 졸업자는 적어도 1년간 일일교사로 일해야 정교사 지원을 할 자격이 주어진다. 따라서 일일교사는 정교사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등용문 같은 단계다. 선생님이 부족한 시골지역은 바로 정교사로 일할 수 있지만. 그런데도 캐나다에는 선생님이 넘쳐나서 도시에서 교사가 되려면 적어도 3-5년을 일일교사라는 비정규직으로 버텨야 한다는 도시괴담... 이 아닌 현실이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있을 테지만, 짧은 두 달의 시간 동안에도 많은 것을 느꼈다. 당시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혼자 낄낄대며 추억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생겼다. 그림을 잘 그려서 칭찬받은 일보다 아이들과 만든 에피소드를 되새길 때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선다. 가끔씩 꺼내보기 위해 행복한 기억을 몇 가지 풀어놓는다.




#1


첫 직장이기에 옷을 어떻게 입을까 고민이 많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가장 정장틱한 것은 파란 블레이져, 하얀 와이셔츠에 감색 정장 바지였다. 

교대 교수님들의 조언에 따른 코디였다.

"It is always better to be overdressed than underdressed."
+ 일요일 저녁에 할머니와 같이 저녁 식사한다는 기분으로 입어라. (캐나다 할머니들은 엄격하신가 봄)

이번에는 교생이 아닌 일일교사로 교실에 서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더 차려입었다. 보통 선생님들은 편한 옷차림을 하지만 아이들과 면식이 없는 나는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 입어야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매번 다른 학교로 출근하기 때문에 코디 걱정할 일은 없다. 블루 정장, 너로 정했다! 일단 처음 가는 학교는 무조건 이 정장을 교복으로 삼았다. 출근을 하고 일일교사로 체크인을 하면 목걸이에 걸린 학교 마스터 키를 준다. 정장에 사원증아니야 간지!! 남몰래 뿌듯해하는 사알못(사회생활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유치원으로 일일 발령이 났을 때, 다섯 살짜리 꼬마 학생이 엄청나게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저기... 혹시... 경찰이에요?? Are you a cop??" 

(은근 기대하는 표정 스침)


탕탕


그래. 내 심장을 저격한 너 잡으러 왔다!

이 일은 저학년 반에서도 몇 번 반복되었다. 나의 흐물한 속마음을 모르는 아이들은 정장에서 모종의 포스를 느꼈던 것이다.

모든것은 계획대로.




#2


"나는 닌자다~ I am a Ninja~"

머리에 웬 끈을 두른 6학년 남자애가 나 들으란 듯이 외치는 말이다.

자기는 멋있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내 눈에는 영락없는 회식자리 술 취한 아저씨다. 

앉으라고 몇 번을 말해도 안 듣고 저 모양이다. 낌새를 보니 일일교사 약 올려 보려는 타입이다.

녀석이 하는 짓을 pushing my button (일부러 열 받는 포인트를 자꾸 누른다는 말)

또는 testing the limit (어디까지 참을 수 있나 보자)이라고 한다. 이 짓이 스릴 있어 재미있나 보다?

일일교사지만 그날만큼은 학생들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때문에 저 머리에 감긴 줄이 심히 신경 쓰인다. 풀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 말했다가는 쥐뿔도 안 먹힌다. 내적 갈등. 일단 지켜보자.

녀석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마침 체육 시간이라 밖으로 나갈 타이밍이므로 쿨한 척,


"그래, 가자 닌자야! Okay, let's go ninja!"


말을 던졌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잠자코 교실문 뒤로 가 선다. 그러면서 하는 말.


"쌤이 내가 본 일일교사 중 최고! You're the best sub teacher ever!"


...?? 

내가 쿨한 게 아니라 너랑 괜히 기싸움하기 싫어서 그런 거야. 모르지?

응 모르고 넘어가.

그렇게 날 계속 best sub teacher로 생각해줘 ㅠㅠ)

그리고 끈 풀라는 말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겉으로는 쿨 내 풀풀 풍기는 근엄 진지한 나였다.




#3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캐나다 교실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흑발, 빨간 머리, 금방, 헤이즐 머리색 그리고 코도 입 모양도 제각각이다.

모든 아이들이 사랑스럽지만 개중에는 서양 사대주의 영향을 받아버린 내 눈으로 봤을 때

김 묻은 아이들이 많았다. 잘생김. 이걸 말하고 싶었던 거야.


어느 날은 금발 미소 천사를 만났다.

파란 눈은 생기 있고 새로운 선생님도 포용하는 미소에 눈이 부신다.

대화 중 어쩌다가 내가 치비 (chibi. 귀여운 일본 만화 그림체)를 그릴 줄 안다는 것을 듣자

이 미소천사 초6의 눈이 빛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 아이는 될성부른 양덕이었다 (서양 오덕).

금발에 활달한 성격의 아이는 운동 취향이라는 나의 고정관념을 쳐부순 존재다.

와, 교대 제 1 계명 'never assume anything' 아무것도 지레짐작하지 말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체육 시간.

나의 오덕스러움을 커밍아웃 하자 이 친구도 자기가 아는 

나루토 필살기 이름을 죄다 외치며 발야구를 하는 것이었다.

...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요?

그러면서 내가 자기 베프라도 되는 양 친근하게 군다. 

나도 네 베프가 되고 싶어. 너 같이 김이 잔뜩 묻은 사람 내 주변에는 없단다.

그런데 나 오늘 선생님이거든. 속으로 눈물을 훔치며 머리 위로 기어오르려는 녀석을 가차 없이 쳐냈다. 

본심이 아니야 상처받지 마, 미소천사 양덕아...




#4


이런 식으로 나의 동양인/한국인 키워드가 통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특히나 흑인 여자 아이들은 당신 한국인이냐, K-팝 아냐고 먼저 친한 척을 해 와서 놀랐다.

(흑인 여자 아이들과 케이팝의 상관관계 재조명)

점심시간 감독을 서는데 1학년짜리 흑인 여자애 몇 명이 나를 졸졸 따라온다. 

손을 잡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잡아주니 좋아하며 재잘댄다.


"이 노래 알아요? Do you know this song?"


하면서 '너무해~ 너무해~T.T' 꽤나 발음 좋게 부른다.

언니가 K-팝을 좋아해서 매일 듣느라 자기도 따라 한단다.

그러면서 봄~ 봄 뭐시기 부르는데 미안. 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이돌 노래 잘 몰라... 

근데 너 귀여운 건 잘 알겠어. 

다음에 오면 또 손 잡아주렴.

귀여움이 그림에 담기질 않아 괴롭다...ㅠㅠ)


#5


나는 밝은 사람은 아니다.

칭찬을 받아도 좋으라고 하는 소리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인지 순수하게 기뻐할 줄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나를 며칠간 구름 위에 띄운 칭찬이 있었으니...

바로 내가 일일교사를 몇 번 담당했던 3학년 선생님이 하신 말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도 반 분위기를 보면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대충 파악할 수 있다. 기억하기로 이 3학년 반은 유난히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그 반을 담당하는 날이 아니어도 같은 학교로 발령이 나면 운동장이나 복도에서 반 아이들과 선생님을 마주치곤 했다. 학생들은 선생님 좋아하는 티를 냈다. 학교 생활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 아이도 무척 따르는 것을 보고 좋은 선생님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 분과 하교 시간에 같이 뒷정리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미팅 때문에 교실에서 가르칠 수는 없었지만 학교에 죽 계신 참이었다. 시시콜콜 담소를 나누던 선생님은 아이들이 나를 무척 좋아한다며 너는 좋은 선생님이 될 거다, 바로 일을 시작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하셨다.


엄밀히 말해 현실적인 칭찬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고팠던 한 마디였다. 언뜻언뜻 비슷한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은근 존경하던 분에게 그런 온전한 칭찬을 받으니 정말 기뻤다. 며칠간은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아서 스스로도 의아했다. 얼마 안가 잊히는 칭찬도 있지만 이 말은 아직도 가슴속에 소중히 담아두고 있다. 칭찬도 타이밍, 또 순전히 받는 사람 맘이라는 걸 처음 깨달은 충격적인 순간!


아이들은 이 선생님 좋아! 싫어! 간단하게 생각하고 고학년은 거기서 변질(?)되어 쿨해! 안 쿨해! 로 나누는 경향이 있는데, 실은 선생이라도 새내기라 덜덜 떨고 있다든지 베테랑 교사의 칭찬 한마디에 좋아 죽는다든지 하는 세세한 사항은 모르는게 약일터다.



 - to be continued


글, 그림 상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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