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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Apr 11. 2024

세기의 축구 대결

엄마와 아들의 소통방법


 아들 둘을 키운다는 것은, 음 뭐랄까.

 

 할 말이 너무 많으면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매번 장벽에 부딪히고 한숨 쉬는 사이 다시 웃고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가 도로 제자리다. 때론 소리 지르고 회유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려 노력해 보지만 나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축구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에 아이들과의 소통도 있었다.  축구를 갈 때만큼은 삼십 분씩 먼저 가서 기다리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축구하는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마침 선생님께서 방학이벤트로 다음 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엄마가 축구를 한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하던 아이들은 온종일 함께 축구하는 날만을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당일 엄마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모였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새싹처럼 여기저기 피어났다.


 처음에는 엄마와 아들이 한 팀이 되어 훈련을 했다. 서로 패스를 주고 받다가 마지막에 골을 넣는 것.

최선을 다해 서로 공을 넘겨주는 일은 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소통이었다.  서로의 보폭에 맞추어 움직이고 서로를 응원했다. 어떤 팀은 이기고 어떤 팀은 졌다. 아이들은 골이 들어가면 점프하며 기뻐하고 안들어가면 엄청나게 안타까워했지만 승부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아들이 엄마에게 골이 안 들어갔지만 괜찮다고, 혹은 엄마 짱 잘했다고 응원해 주는 일, 그런 일이 평소에 있었던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게임을 함께 하는 마음이었다.  질 때도 신나게 질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이긴 자의 잘난척하지 않는 멋짐이 실내 풋살장 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경기는 또 달랐다.  훈련을 마치고 아들들 vs 엄마들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번만큼은 엄마들도 아들들도 결코 봐주지 않겠다며 웃었. 악수하는 끝에  결의가 묻어났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고루 섞여 있었다. 엄마들은 아이들보다 키가 컸지만 아이들은 훌륭한 보노샘에게 오래 배웠고, 또 에너지가 넘치고 빠르다. 어느 팀이 더 잘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막상 막하의 대결이었다. 어느 쪽도 봐주거나 양보하지 않았다. 모두가 숨을 몰아쉬었다. 엄마와 아들이 공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대치하기도 했다. 정강이를 차이기도 하고 서로 부딪히기도 했다.  엄마들 3 아이들 2로 승부가 끝나가는 듯했다. 그러다 1분을 남겨두고 아이들은 기적 같은 패스를 이어갔다.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전략적인 패스로 아이들이 마지막 한골을 넣었다!

 팽팽한 맞대결 끝에 경기는 3:3으로 비겼다. 그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승부차기가 시작되었다.  아들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과 엄마도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오고 갔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서로를 응원하면서 이기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승부차기가 이어졌다.


 결국 아이들의 승리로 끝났다. 내가 이기거나 내 아이가 이기거나. 어느 쪽이든 기쁜 마음일 수 밖에 없는 행복한 게임이었다.


마주 보고 서서 우리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악수했다. 그리고 꼭 안아주었다.  부모와 아이, 가르치고 배워야 할 사이가 아닌 함께 땀 흘린 자들 사이의 연대감. 가슴 어딘가에서 울컥함이 몰려왔다.

수업이 끝나고 다 함께 중국집으로 향했다.

짜장 짬뽕 탕수육을 먹으며 아이들은 승리의 기쁨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팽팽한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엄마들을 이긴 영웅담은 오래도록 자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내 핸드폰 게임을 시작하며 또다시 현실 모자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한참을 축구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그때는 말이야, 그렇게 했어야지

-골키퍼는 낙하를 해야 한다고.


-아. 그렇구나. 엄마가 몰랐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는구나! 너넨 오래 배웠잖아!


주말에 공원에서 다시 한 판 붙기로 하고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아주 깊은 잠을 잤고 달콤한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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