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마주치지 않을 것

by 초록


빨간 캐리어는

창백한 여자와 재이와 함께 휴게실로 들어갔다

빨간 캐리어가 들고 있던 쇼핑백을 펼치자

화려한 한정식 한상이 펼쳐졌다


재이는 사랑받는 딸에 대해 생각했다

어쩐지 빨간 캐리어에게는

사랑받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감각이 있었다


" 집 나왔거든요."


재이는 멈칫했다


"아니 먹는거 가지고 그러는 건

아무리 그래도 치사하지 않아요?

치사한 건 내가 또 못참지.

그 집 안 들어가요 이제."

재이는 눈을 두어번 껌뻑였고

창백한 여자는 조금 웃었다


"웃겨요? 다행이다.

좀 웃어요,

세상 무너지는 얼굴인 거 모르죠?"


창백한 여자의 얼굴이 잠시 반짝였다


"이모님은 젊어 보여요

사장님은 전에 다른 분이시던데?"


재이를 향한 두사람의 시선에 재이는 당황했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을 것

그렇게 지내온 몇년이었다

재이는 무방비 상태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마음이 조금 녹아

하마터면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낼 뻔 했다


어디서 부터 말해야할까,

재이가 말을 고르는 사이

빨간 캐리어는 이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불볕 더위와 온난화

5년뒤에 사라질 지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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