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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물고기 Jul 05. 2023

You are what you eat

[밑미 리추얼 외면일기] 2023.07.05.

2023.07.05. 수요일. 맑고 서늘함

 
"You are what you eat"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먹는 것이 물리적으로 우리의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음식에 대한 취향은 사람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제법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주로 어떤 음식을 즐겨 드시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서 우리는 누군가가 어려서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어느 국가(지방) 출신인지, 어떤 종교를 믿거나 어떤 사상을 지지하는지, 어느 세대 사람인지, 낯선 문화를 얼마나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인지, 지금의 건강 상태가 어떻고 외모나 건강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까지 어느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나는 어려서 짜장면을 주문하면 꼭 계란후라이를 올려주던 동네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짜장면을 먹을 때면 아직도 왠지 야박하게 느껴져서 서운하다. 고추장과 물엿, 굵은 가래떡으로 만들어 벌겋고 진득한 부산식 떡볶이와 오뎅국물에 푹 익어 짭짤하고 노골노골해진 '물떡'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새우와 조개와 생선구이를 몹시 좋아한다. 가리비 철이 되면 몇킬로씩 주문해서 열심히 껍질을 닦아 쪄먹고, 구워먹고, 파스타에 넣고, 감바스를 만들어 먹는다. 


반면 족발, 순대, 선지, 닭발, 닭똥집, 오돌뼈, 막창, 곱창, 꼼장어, 알탕을 먹지 않는다. 이 음식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대체로 한국인이 술안주로 몹시 좋아하는 음식이고) 뭔가 적나라한 재료로 만들었다는 점인데, 채식주의자도 아니면서 동물의 내장기관이나 신체부위임이 외관상 명백한 음식들만 골라서 먹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좀 위선적으로 보이는 취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먹고싶은데도 꾹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면서 먹고싶었던 적이 없었을 뿐이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사자가 고기를 먹고 판다가 댓잎을 먹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일 수도 있고, 고기를 먹거나 댓잎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길러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 나에게 무엇을 먹일지 오롯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 이상 앞으로 생길 취향은 나의 책임이다. 꼭 음식에 대한 취향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무엇을 추구하는 이유에 대해 나의 언어로 정리하지 못하면 "그야 다른 사자들도 다 고기를 먹으니까!" 이상의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될테다. 



모세씨는 딸기를 먹지 않습니다. 과일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이 껍질이다, 라고 배웠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것을 가르쳐준 사람은 모세씨의 아버지로 사과든 복숭아든 과일은 반드시 껍질을 벗긴 것만 먹는다고 합니다. 사과든 복숭아든 뭐든 모세씨의 어머니가 과도로 껍질을 벗겨내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받아먹는다고 합니다. 농약이 과육 깊숙이 스몄을 수도 있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어떤 오물이 들러붙었을지 누가 알겠냐,라면서 껍질을 빨아서 알맹이를 먹어야 하는 포도와, 딱히 벗길 껍질조차 없는 딸기를 혐오한다는 것입니다.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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