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의 시간을 유형의 결과물로 만들기
SNS에서 글 쓰는 분 대부분은 늘 반응을 바랄 겁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거나 원고청탁 뭐 그리 거창한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댓글 아님 라이크라도. 요즘 브런치 스토리에서 새롭게 제공하는 응원하기 댓글이 달리면 엄청 좋겠지만 그런 일은 잘 없죠.
2018년부터 시작한 본격적인 글쓰기로 이제 5년 차 작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에서 글 쓰며 많은 작가를 만났고, 공동 매거진도 진행했고, 그 경험으로 브런치작가 가이드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쓴 글이 751개, 브런치 매거진이 11개, 브런치북이 17개입니다. 이 정도면 브런치 안방마님으로 브런치스토리에서 뭔가 인정을 해주거나 감사패라도 줘야 할 텐데 아직도 소식이 없네요.
하나라도 애써 만들면 여러 곳에 두루두루 쓰고 싶잖아요. 원소스 멀티유즈를 꿈꾸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유튜브도 안 한 지 오래입니다. 문득, 이 많은 글을 그냥 브런치에 두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최근 덴마크 여행기를 브런치북으로 엮었습니다.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IPC, International People's College) 경험은 독특하기에 다녀오면 특강도 하고 책도 내겠다는 야심 찬 목표가 있었는데요. 회사 내에서 약간의 화제가 되긴 했습니다만 막상 다녀오니 늘 그렇듯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출간을 대비해 덴마크에서 매일 100장이 넘는 사신을 찍고, 기록도 하고, 매일 블로그에 핵심 내용을 남겼습니다. 적극적으로 투고해야 하지만 이 또한 귀찮아서 혹은 해도 안 될 거라는 부정적인 자의식 때문에 일단 보류했습니다.
브런치북을 준비하며 제 글쓰기, 책 쓰기 루틴을 돌아봤습니다. 올 초에 《50대, 평생 성장을 꿈꾸는 직장인》을 낸 후 책 쓰기 또한 중단했어요. 매주 발행한 주간성찰 글을 다시 돌아봤습니다. 어떤 주제로 썼는지, 어떤 내용을 다루었는지 펼쳐서 재조합했습니다.
일과삶 필명에 맞게 주로 직장인으로 경험한 내용과 개인의 삶을 누리는 내용으로 구분되었습니다. 브런치북으로 발행하지 않은 글들을 모아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찐직장인 브런치 북을 발행했습니다. 브런치북과 그동안 쓴 글을 엮어 종이책과 전자책을 낼 예정입니다. 작년에 발행한 브런치북 인생의 책갈피와 아메리카노 샷 추가의 글을 다시 퇴고하고 분류해서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내야겠더라고요.
시작하는 게 어렵지 한 번 시작하면 조금 힘든 일도 하다 보면 수월해지잖아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건 첫 시작의 에너지보다는 덜 드는 것 같아요. 전자책만 낼 생각도 했는데 그러려면 전체 글을 정리하고 편집하는 일이 필요해서 조금 더 애써서 종이책 편집도 했습니다. 두 권을 책을 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이미 바빠져서 독서 시간을 줄였습니다. 손에 작은 사탕이라도 쥐면 기분이 좋아지듯 글쓰기에 투자한 무형의 시간을 유형의 결과물로 얻는다는 점에서 책 판매의 성과나 기획출판의 기회를 떠나 뿌듯합니다.
살면서 루틴 관리가 점점 중요해지는데요. 글 쓰는 루틴도 중요하지만 책 쓰는 루틴도 필요한 것 같아요. 때로는 ‘이렇게 시간 투자해서 글쓰면 뭐 하지?’라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지 않나요? 애써 글 썼는데 반응도 없고 읽히지 않으면 힘 빠지고 글 쓰고 싶은 마음도 사라집니다. 글태기, 글럼프로 연결되기도 하죠. 그래서 내 글에서 빛이나요(내글빛)라는 모임을 만들어 4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는데요. 꾸준히 쓴 글을 엮어 책으로 만듭니다. 돈 안 되는 글쓰기 파이프라인입니다.
《Permission to feel》(감정의 발견)에서 감성지능을 삶에 적용하는 방법으로 메타의 순간(Meta-Moment)을 언급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감정을 알아차리고 숨을 고르며 상황을 파악하는 거죠. 그리고는 '최고의 나(best self)라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행동할까?'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마치 '나의 멘토라면, 나의 롤모델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요?'라는 코칭 질문과 비슷한데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작가는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행동할까?'라고 질문에 여러분은 어떤 답을 하실 건가요? 역시 투고였습니다. 해도 안 될 거라는 귀찮음, 게으름, 핑계를 살짝 밀치고 덴마크 여행 기록을 열었습니다. 뭔가 해보려 마음먹으면 잘 안되는 적 없던가요? 순간 덴마크에서 쓴 일기 파일을 저장한 폴더를 잊어 당황했습니다.
다시 도전해 보는 거죠. 안되면 말고요. 최소한 독립출판은 할 수 있으니까요. 파이프라인을 정돈하고 쌓아가는 과정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녹슬지 않게 잘 닦아 놓으면 언제가 쓸 일이 오지 않을까요?
한 달 휴가 내고 덴마크 여행하기를 다시 살피고, 기록을 재조합하며 목차를 뽑아냈습니다. 기획서를 쓰고 투고했습니다. 거절 메일을 온몸으로 막고 있습니다. 이글을 보는 출판사 에디터가 있다면 연락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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