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언 테트의 《알고 있다는 착각》 후기
처음 AI(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가 세상에 나왔을 때 모두 놀랐죠. 특히 2016년에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으로 우리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AI가 세상을 지배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죠. AI는 점점 진화해서 이제는 챗GPT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고 있습니다.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세상에 숨돌릴 틈도 없이 경쟁하듯 기술은 발달합니다.
질리언 테트는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또 다른 AI(Anthropology Intelligence, 인류학 지능)을 제시합니다.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인류학이라는데 한국에서 인류학 전공자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덴마크에서 만난 영어 선생님이 인류학과 언어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인류학의 존재 정도만 알고 있어요. 한국에 인류학이라는 전공이 있을지도 궁금했어요. 다행히 몇몇 학교에 인류학 혹은 문화인류학이라는 전공이 있네요.
미국인류학회에서 간행한 『인류학과 직업(Bernard and Sibley)』(1975)이라는 책자에 따르면,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학부 졸업생에게 적합한 일자리는 여러 사회 또는 한 사회의 여러 계층이나 인간집단들의 행동유형과 사고방식 또는 생활양식 등 문화적 상이성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예컨대 다문화사회의 정책결정, 시장조사, PR, 광고, 판매, 인사 등의 사업경영 분야에서는 문화인류학도들이 다른 어떤 분야에서보다도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인류학의 전공과 진로 (문화인류학, 2011. 9. 15., 한상복, 이문웅, 김광억)
《알고 있다는 착각》인 사회 인류학 박사인 저자가 타지키스탄에서의 결혼 의식에 관한 연구, 파이낸셜 타임스 편집국장의 경험 등에 기초하여 우리의 삶과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인류학이 다양성, 공감, 변화, 경청, 호기심 차원에서 중요한지 알려줍니다. 낯익어 보인다는 이유로, 낯설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로 우리가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 킷캣, 인텔, GM, 도널드 트럼프,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등 현실의 삶에 조망하여 알려줍니다. 실제 시장조사, 홍보, 마케팅, 인사 등에 인류학이 필요한 이유를 사례로 설명하니 인류학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저자의 주장대로 또 하나의 AI(Anthropology Intelligence)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저자는 인류학 시야, 즉 인류학 지능(Anthropology Intelligence)을 키우는 방법 다섯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우리는 모두 생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의미에서 환경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자연스러운’ 문화적 틀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 존재 자체가 다양성의 산물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인류학 지능이며 그래서 기업에서 다양성을 더 강조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셋째,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 열중해서 그들에게 공감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결국 공감을 위해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 줄 감성지능이 필요하겠더군요. 넷째, 우리 세계를 외부인의 렌즈로 들여다보면서 우리 자신을 더 선명하게 보아야 한다. 낯선 것을 낯익게 만들고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는 이유도 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한 게 아닌가 싶어요. 다섯째, 이런 관점을 통해 사회적 침묵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의식과 상징을 고찰하며, 인류학적 개념의 렌즈를 통해 우리의 관행을 고찰해야 합니다. 다양성과 공감의 시작점이 경청인데요. 우리가 놓친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찾아가야겠죠.
인류학적 시각이 주는 혜택에 관해 저널리스트의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합니다.
저널리스트들이 “이 표제에서 내가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피하려 하는 이 무시무시한 전문용어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을까?”, “나는 누구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질 공간과 시간, 훈련과 보상이 마련될 때 최고의 저널리즘이 완성된다. -《알고 있다는 착각》 중에서
삶은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새로운 시작을 할 줄 알아야 하기에 우리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니체가 말한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관찰하고, 경청하며, 개방형 질문을 던지고,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인류학 지능이 아닌가 싶어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 호기심이 많은 저는 새롭게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면 인류학을 선택하고 싶네요. 이 책은 저에게 낯선 것에 다가갈 용기를 줬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경청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시도를 했습니다. 시드니에서 낯선 곳을 낯설게 느껴보려고 세상을 둘러봤고, 남산에서 70을 바라보는 문화 해설사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0대 초반의 국내 기업에 다니는 개발자들이 인도, 베트남 외주 인력과 어떻게 일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 주변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머물러보려고 합니다.
"낯익어 보인다는 이유로 혹은 낯설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로 간과하고 있는 건 없나요?"
"여러분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는 건 아닐까요? 경청하지 않는 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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