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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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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일과삶 Nov 12. 2019

유머 감각이 우리 삶에 주는 축복

모임을 즐겁게 만들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유머 감각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있잖아. 브룩 쉴즈의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잘생긴 사람이요. 돈 많은 사람이요."

"그건 말이지. Sense of Humor가 있는 사람이야. 유머 감각이라고 들어봤어? 그렇게 예쁜 미녀가 유머 감각을 찾다니 참 대단하지 않아?"

브룩 쉴즈(Brook Shields)는 당시 세계적인 미녀였고, 유머 감각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였다. Sense of Humor라는 표현조차 생소했다.

'도대체 유머 감각이란 무엇일까? 그냥 농담 잘하는 건가?'

그 정도였지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유머 감각에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유머 감각이 나에게 두 방향으로 크게 다가왔다.

1년 동안 함께 공부했던 지인들과 3개월 만에 만났다. 각자 도전 가능한 미래를 두고 근황 토크를 했다. 그중 한 명이 독특한 표현을 했다.

"직장인으로 우리는 늘 나비를 꿈꾸지만 결국 굵은 애벌레만 되어 간다."

"독수리는 알로 태어나기 때문에 병아리와 같이 알에서 깨어나도 자기가 독수리인 것을 모른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직이라는 더 큰 무대로 옮겨가면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이 원래부터 독수리였다고 생각해라."

"2019년 모든 사업이 All Set 되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독수리였다는 생각은 의미 있는 표현이다. 지인은 늘 그렇게 생각해서 기업의 CEO까지 역임했다. 그럼에도 굵은 애벌레나 All Set 같은 용어는 우리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이날 우리가 얼마나 많은 All Set을 언급했는지 모를 만큼 유행어가 되었다. 새해 우리의 목표는 이미 All Set! 이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찼다.

지인의 말을 들으면서 긍정적인 사고와 유머 감각은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으로 생각은 하겠지만 이런 위트 있는 표현과 비유로 다른 사람에게 큰 웃음을 주는 게 유머 감각이 아닐까?

몇 주 동안 열심히 발표 자료를 준비했다. 나름 조금이라도 더 쉽게,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주말에까지 회사에 나와서 정리했다. 그렇게 준비한 자료를 3명이 나눠서 발표했다. 내가 질문을 많이 받아서 30분 발표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은 각각 20분, 5분을 사용했다.

발표에 대한 피드백을 설문으로 받았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내가 가장 낮았다. 순간 마음이 상했다. 내가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만든 자료인데 인정받지 못했다는 느낌에 상처를 받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기에 그냥 편하게 넘어가려 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다.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할 수는 없다. 그냥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세뇌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정말 내가 부족한 건 아닌지 두려움이 생겼다.

같이 발표했던 사람들에게 설문 내용을 공유하면서 쿨한 척 말했다.

"제가 제일 점수가 낮네요. 다들 너무 잘하셨어요."

그런데 세 번째 발표했던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일과삶님이 너무 오래 발표해서 그래요. 오래 말한 사람이 원래 점수가 제일 낮아요."

모두가 그 말에 빵 터져서 웃었다. 반면 나는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생각해보니 내가 발표한 부분은 논란이 있던 분야여서 불만을 가진 사람이 낮은 점수를 줄 수도 있었다. 내 문제라기보다는 내용의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동료는 평소에도 툭 던지는 말로 우리에게 큰 웃음을 준다. 있지도 않은 가상의 인물을 소환한다.

"인도에 있는 라자(Raja)가 밤새 엑셀 작업을 했다. 우리 집에는 낙엽을 줍는 일만 하는 집사 세바스찬(Sebastian)이 있다."

역시 긍정적인 사고와는 좀 다르게 짧게 치고 나오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게 유머 감각이다.

이제야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감탄을 이해할 수 있다. 왜 브룩 쉴즈가 유머 감각을 중요하게 꼽았고 선생님도 그걸 집어서 말했는지 알겠다. 참 오래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