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주의 나그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지나간 일을 후회하며 살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 짧아.
Life appears to be too short to be spent in nursing animosity or registering wrongs."
-《제인 에어》 중에서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 다투고 나서 속상했을 때 애니메이션에서 본 제인 에어는 나에게 삶의 지혜를 알려주었다. 청소년 시절에도 그녀의 도움으로 버텼다. 성인이 되어 남편과 결혼하고 부부싸움을 하거나 아이가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고 속을 끓일 때는 뒷산에 올랐다. 산에서 집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되뇄다.
'그래 멀리서 보면 점같이 작은 집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고 지지고 볶는 거야. 내가 내려놓으면 그만인데. 가정의 평화를 지키자.'
그래서였을까? 부부싸움을 안 한 지 오래다. 이런 나에게 《코스모스》는 우주적 시각으로 다가왔다.
코스모스의 발견은 바로 '어제' 일어난 사건이다. 지난 100만년 동안 우리는 지구 이외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해 왔다. 그것에 비교한다면 아리스타르코스에서 현대까지의 기간은 0.1퍼센트에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오늘에 와서야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우리의 존재가 우주의 목적일 수도 없다는 현실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우리는 스스로를 1조 개의 별들을 각각 거느린 1조개의 은하들이 여기저기 점점이 떠 있는 저 광막한 우주의 바다에 부질없이 떠다니는 초라한 존재로 보고 있다.
-《코스모스》 중에서
지구조차 우주에서 바라봤을때 점에 지나지 않으니, 우리가 길다고 생각하는 인생도, 뒷산에서 바라보는 일상도 우주적 관점에서는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던 나는 수학은 곧잘 했지만 과학엔 젬병이었다. 과학을 왜 그리 싫어했을까? 무조건적인 암기를 강요받았기 때문일까?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했지만 여전히 과학에는 문외한이다. 《코스모스》를 과학 교과서로 채택하면 어떨까? 과학의 정의와 필요성으로 시작해서, 우주적 시각을 제공하고, 진화론과 인류의 탄생부터 우주 탐험, 정보의 중요성, 생태계를 포함한 지구 보호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을 전방위로 다룬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과학의 매력은 오류를 스스로 교정할 줄 안다는 점(자정 능력)이다. 과학은 자기 검증을 생명으로 여겨서 새로운 이론이 인정받으려면 증거 제시라는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므로 분명하다고 평가됐던 것이 거짓으로 판명될 때도 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 확고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절대 진리가 없다는 가정 자체가 유연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에 정답이나 절대 진리는 없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게 내 삶의 원칙과 이론이라면 언제든 새로운 가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성장하는 게 우리의 인생 아닐까?
과학에 관한 책을 읽으며 눈이 번쩍 뜨이게 반가웠던 것은 정보의 중요성으로 책과 도서관을 언급한 내용이었다. DNA에 정보를 저장하기엔 넘쳐났기에 진화를 통해 두뇌가 만들어졌고 그마저도 넘쳐나서 육체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는 책과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서관은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지식과 통찰을 현재의 우리와 연결해주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글쓰기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글쓰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먼 과거에 살던 시민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하나가 되게 했다. 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마법사가 된 것이다.
-《코스모스》 중에서
독서를 취미로 일삼는 사람들은 책에 감탄한다. 저자가 공들여 쏟아부은 시간의 넓이와 사고의 깊이를 단돈 몇만 원에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감사하게 저자와 대화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문득 내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단순한 취미활동이나 관종이어서가 아니라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는 마법사라니. 그렇다. 나는 글쓰기라는 마법을 배우려고 마법 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것이다.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영원한 우주의 나그네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머물러 아웅다웅 다투고 지지고 볶지 말고 우주로 시선을 돌리자.
우리는 나그네로 시작했으며 나그네로 남아 있다. 인류는 우주의 해안에서 충분히 긴 시간을 꾸물대며 꿈을 키워 왔다. 이제야 비로소 별들을 향해 돛을 올릴 준비가 끝난 셈이다.
-《코스모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