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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Nov 27. 2019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용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책으로 읽어본 기억이 없다. 어렴풋이 트럼프 카드 모양의 병사가 창을 들고 앨리스를 쫓아가는 장면만 떠오른다. 이번 기회에 정주행했다. 동화책으로 읽었다면 이해하기 쉬웠을까? 성인용 문학서로 읽어서 쉽지는 않았다.


재미있게 봤던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주원(현빈)과 라임(하지원)이 따로 읽던 동화책이기도 하다. 주원은 마치 자신이 앨리스 증후군에 걸린 사람처럼 라임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동화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는 로맨틱한 표현이지만 실제 앨리스 증후군은 주인공 앨리스처럼 지각된 사물이나 자신의 몸의 크기를 실제와 다르게 느끼고 왜곡하여 바라보는 증상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앨리스 증후군 환자처럼 몽롱한 느낌에 빠졌다. 


시크릿가든 드리마 화면


언어의 유희, 즐거움 


영어 원어민이 이 책을 원서로 읽는다면 무척이나 흥미로울 것이다. 주석이 없었다면 이해하지 못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특히나 저자 루이스 캐럴은 빅토리아 시대 동시를 패러디하여 실어 아이들이 시를 즐겁게 읽도록 했다. 동시를 모르는 우리는 더욱 이해하기가 어렵다.


앨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만, "거꾸로 서서 머리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 사람들은 〈거꾸로 걷는 사람〉이라고 하지." 

실제로는 "거꾸로 서서 머리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 사람들은 〈혐오스러운 존재〉이라고 하지." 라고 혼잣말했다. 


주석에서 아래와 같은 설명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원서도 읽으면 혼란이 더 가중될 것이다.

"앨리스는 antipathy라는 단어를 anti(반대의)+path(길)로 생각해 거꾸로 걷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원래 뜻은 〈혐오스러운 존재〉이다."


이런 묘미를 제대로 읽고, 느끼기 어려우니 책이 더 어렵게 다가온다. 동화책에서는 얼마나 재미있게 언어의 유희를 사용해서 번역했을지 궁금하다. 이 정도로 표현하면 어떨까? 

"거꾸로 서서 머리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 사람들은 〈거간꾼〉이라고 하지." 



정체성과 페르소나, 호기심


앨리스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거나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수수께끼처럼 풀기를 요구하고 또 상대가 앨리스에게 묻기도 한다. 마치 앨리스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 같기도 하고, 책을 읽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과연 나는 누구란 말인가?


앨리스는 삼월 토끼, 쥐, 애벌레, 체셔 고양이, 돼지, 왕비, 거북, 모자 장수, 트럼프 카드 정원사 등 다양한 캐릭터를 만난다. 이들의 모습이 앨리스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모험을 떠나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용기


언니 옆에서 심심하다고 생각한 앨리스는 조끼에서 시계를 꺼내는 토끼가 신기해 호기심으로 쫓아 달려갔다. 토끼굴에 들어가 빠져나올 생각보다는 토끼를 따라가는 생각만 했다. 그런 용기 덕분에 모험이 시작되었고 모험이 끝나는 순간도 앨리스의 외침으로 가능했다.


「누가 너희 따위를 겁낼 줄 알아?」 앨리스가 말했다. (이때쯤 앨리스는 원래 크기로 커져 있었다.) 「너희는 카드에 불과하다고!」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앨리스가 카드에 주눅 들어, 왕비가 무서워 시키는 대로 했다면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결말 부분을 보면 이 모든 이야기가 언니가 동심의 세계를 상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실로 돌아오는 열쇠는 "용기"다. 이렇게 세상에 소리 지르고 싶다.


"세상아, 누가 너희 따위를 겁낼 줄 알아? 겪어보기 전까지 너희는 걱정에 불과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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