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편지] 로자 아줌마가 모모에게 보낸 편지
라몽 의사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면서 우연히 편지를 발견했다며 나에게 전해줬다. 로자 아줌마가 정신이 완전히 나가기 전에 써두었나 보다. 그녀는 떠났지만 나에겐 편지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나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뭘까?
안녕 모모야
내가 정신을 잃는 순간까지 살뜰히 돌봐줘서 고마워. 정신병자 같은 네 아빠가 왔을 때 거짓말로 너를 구해주었는데. 너 또한 나를 선한 거짓말로 구해줬구나. 정말이지 병원에서 식물인간처럼 죽어가고 싶지는 않았단다. 때로는 거짓말이 우리 생에선 축복이구나. 적어도 우리 둘에겐 말이야.
넌 항상 이게 궁금했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하밀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했다지만 난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해. 그걸 너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었어. 비록 돈을 받았지만 난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봤지. 너만 해도 그렇지 않니? 유태인인 내가 아랍인 아이를 키운다는 게 상식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지 않니? 내가 70 가까이 살 수 있었던 것도 다 아이들이 있어서, 내가 사랑할 사람이 있어서였어. 다만 난 사랑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고 말하고 싶단다.
내가 너를 거두고, 네가 나를 끝까지 돌본 책임감이라는 거 말이야. 어쩌면 동정심일 수도 있겠지. 예전에 내가 암사자 이야기한 거 기억나니? 암사자는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고. 아이샤는 어쩌면 너를 위해서 카디르의 손에 죽었는지도 몰라. 그런 마음을 알기에 널 저 버릴 수 없었어. 네가 가장 믿음직스럽기도 했지. 대견하게도 너는 나를 가엾게 여겼구나. 그게 사랑이야. 사람들은 모성애, 부성애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책임감과 동정심이 가득한 사랑이겠지. 그런 사랑으로 난 살았단다.
네가 아르튀르를 밤마다 안고 잘 때 가끔 아르튀르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단다. 이불도 잘 덮어 주었지. 너에게 아르튀르 같은 좋은 친구가 생겨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거든. 넌 나이에 비해 조숙했는데 나이도 또래 보다 네 살이나 많아서 어울리기 답답했을 거야. 그 점이 늘 마음에 걸렸어. 너의 마음을 다 받아주는 걱정 인형 같기도 하고, 수호천사 같기도 한 아르튀르가 생겨서 안심이 되었어. 향수가 나에겐 친구였듯이 사람에게는 그런 존재가 필요하단다.
네가 오백 프랑에 쉬페르를 팔고 그 돈을 하수구에 처넣어 버린 날, 기억나니? 난 화를 내며 내 방 문을 걸어 잠갔지. 네가 쉬페르를 팔고 돈을 버려서 그런 게 아니었어. 네 마음 때문에 그랬어. 넌 쉬페르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겠지. 네가 누리지 못한 삶이 얼마나 아쉬웠으면 그렇게 아끼던 쉬페르를 보냈을까. 그 생각에 화가 났어. 사랑은 말이지. 네가 생각한 것처럼 상대방의 행복을 찾아주는 것이기도 해. 하지만, 부족해도 함께 있는 게 사랑일 수도 있어. 쉬페르는 그걸 바랬는지도 몰라. 앞으로 네가 찾아가야 할 사랑은 끝까지 함께 하면 좋겠구나.
모모야. 이제 나도 없고 쉬페르도 없구나. 아르튀르만 남았네. 아르튀르도 좋은 친구이지만,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또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으면 좋겠어.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 지금까지는 사랑이 부족했지만 남아 있는 너의 생에는 사랑이 충만하길 바래. 사랑은 늘 우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사랑해 모모야.
로자 아줌마가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의 영문 책 제목은 자기 앞의 생 《The Life Before Us》다. 영문 책 표지에 나온 로자 아줌마의 사진이 나와 있는데 상상 속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The Life Before Us의 뜻을 직역하면 '우리 앞의 생'이어서 우리에게 남은 생, 즉 여생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영어 원어민 선생님께 문의해본 결과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남아 있는 생'도 되지만 '우리가 직면하는 생 그 자체'도 된단다. 그러므로 '자기 앞의 생'이라는 제목은 탁월한 번역이다.
어린 시절 '모모' 노래를 듣기도 했고 따라 부르기도 했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사가 있었는데도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에서 소개되기도 한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모모 노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기 앞의 생》을 모티브로 만들었단다. 아무 생각 없이 주인공 이름만으로 오해했다. 노래도 감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