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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주 Aug 13. 2023

작은 날갯짓, 소비하는 습관

중고 쇼핑의 재미

OP SHOP


호주에는 중고가게, 여기서는 op shop이라고 많이들 부르는데 (op shop이 뭘까 늘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opportunity shop의 줄임말로, 득템 할 수 있는 가게이다.) 

이러한 한 번 또는 여러 번의 손을 거친 물건들을 재판매하는 가게들이 많다. 얼마나 많은지, 어느 시골 동네를 가도 가게 하나는 만날 수 있다고 해야 되나? 이는 기본적으로 자선단체, 종교단체, 시민협회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가게에 있는 직원들도 자원봉사인 셈이다. 

op shop에 빠지게 된 것은 이키오와 친해지면서부터이다. 프랑스에서도 종종 빈티지 중고샵에서 쇼핑을 했던 그런 그녀가 호주의 중고가게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그녀는 그냥 뭘 입어도, 사실 옷과 아이템이 그녀의 스타일에 녹아 맞아떨어진다고 해야 될까.



이키오, Ikkio


당당하고 아름다운 친구, 이키오. 처음 만난 것은 아마 내가 패킹장에서 일하는 첫날, 블루베리의 품질을 위해 패킹장은 옷을 몇 겹 입어야 될 정도로 추웠고, 추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무수히 쏟아 내려지는 블루베리들의 품질을 체크해 열심히 가려내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 이 일을 하면, 계속 한 방향으로 벨트 위에서 옮겨져 가는 블루베리들 때문에 눈이 어지럽고 피곤하다. 그래도 첫 일이라 열심히 하는데, 건너편에 어떤 여자애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자기 이름이 이키오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나에게 너는 좀 일반적인 한국인들과 달라 보인다?라는 말을 했다. 사실 그 당시,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뭔가 나는 좀 달라 보이니까, 나만의 유니크함이 있음에 안도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다음날, 중간 정도 기장이었던 그녀의 머리가 빡빡이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다. 나에게 너는 좀 독특해라고 말을 해주면서 내 눈에는 너무 독특해 보이는 그녀에게 사랑에 빠졌다. 그녀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그중에 배운 취미는 op shop에서 쇼핑하기이다.

그녀의 쇼핑은 현재 나의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되었다. 그녀처럼 독특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알려주는 쇼핑에 매료될 수 밖에. 장점들이 참 많다.


1. 중고로 사게 되면 새 옷보다 저렴하다.

2. 옛날, 빈티지 복고풍의 옷을 득템 할 수 있어 스타일리쉬해질 수 있다.

3. 새로운 옷을 무수히 찍어내고, 버리고, 낭비하는 우리의 무수한 생산의 사회 속에서 나의 작은 기여로,  조금이나마 그 빠른 속도를 늦출 수 있다.

4. 내가 질린 옷들을 다른 사람이 즐기고, 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나의 작은 몸부림 또는 날갯짓 한 번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metamorphosis


어느 날, 이키오가 op shop에서 굉장히 두껍고 낡은 책 하나를 득템해 찾아왔다. 이 책은 각각의 생일에 대해 점술학적으로 접근한 내용이었고, 365일 가득 해설이 있어서 무슨 백과사전 급의 무게를 지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일을 찾아보았다.


나의 생일은 The day of the Metamorphosis. Metamorhposis는 변태, 변형을 의미한다. 하나의 생물이 탈바꿈하는 그 과정을 의미하며, 내가 태어난 날의 상징으로 탈바꿈이길래 나비보다 오히려 더 좋았다.  

항상 뭔가를 준비하는 듯했다.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입증하듯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나. 항상 기다려오기만 했지만, 이제 입증하기를 거부하고 날개를 펼쳐보려한다.



우리의 순간들이 언제나 우리를 찾아오지는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내가 미루고 미루던, 생각들은 참 많았다. 번데기의 껍질처럼, 그러다 생각이 그 생각을 미루기 위한 생각으로 찾아오게 되면 그 순간은 사라지고 없다. 다시 올 것 같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시는 돌아 오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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