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하라티 Oct 03. 2023

호주에서 히피들의 노래를 부르다

첫 번째 레인보우 개더링은 어떤 것을 준비해야 되는지 예상도 못한 채,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으로 떠났다. 인생에 단 한 번도 자연 속에서 모든 전자기기와 단절된 채 지내본 적이 없는 나는, 호스텔에서 사람들이 기부로 남기고 간 물건 더미 속에서 레인보우 색깔이 담겨 있는, 트로피칼 텐트를 찾았다. 모양과 색은 정말 마음에 드는 텐트였지만, 전혀 방수 기능이 없는 텐트였다. 그리고 로드트립 때에 썼던 침낭 하나. 중고샵 OP Shop에서 구매한 두꺼운 옷 몇 벌. 나는 단 한 번도 야영을 해본 적이 없는 무경험자로, 외부의 문명과 떨어져 지낸다는 개더링을 무작정 찾아갔다.


알려준 지도와 가이드 방향대로 잘 따라가다 나오는 첫 도착지는 차를 주차할 수도 있고, 혹시 차에서 잠을 자고 싶은 사람들(특히, 호주에는 밴이나 차를 침대도 놓고, 집처럼 편하게 개조한 경우가 많다)을 위한 공간으로, ‘집시 캠프’라고들 부른다. 내가 들은 바로는 타 지역, 다른 해에 있던 레인보우에서는 보통 집시 캠프와 메인 캠프 지역 간의 거리가 멀면 꽤나 멀다고 한다. (내가 참여한 호주에서 열린 다른 레인보우 개더링은 2-3시간가량 짐과 함께 걸어야 했다.) 


중고 가게 알록달록 옷들과 친구가 만든 액세서리로 제법 스타일을 내봤다. 집시 캠프에서. LOVE!

그러나 나의 첫 레인보우는 집시 캠프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어가면 메인 공간, 마을에 도착했다. 대 꺼지지 않는 불을 중심으로, 주방과 화장실,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캠프들이 이루어낸 하나의 커뮤니티, 이는 마을이다.


내가 합류한 시점에는 이미 개더링 초기가 아니어서 시설들이 대부분 만들어져 있던 상황이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은 당시에 잘 몰랐다. 우선 처음 도착하면, 환대를 받는다. 


 “Welcome, home”. 


그리고 지나가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우리는 눈과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아마, 태어나 처음으로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며 인사를 해보았다. 마음이 따스한 무언가로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레인보우에는 2번의 식사시간이 있다. 

아침과 저녁, 그리고 그 식사시간에 맞추어 우리는 시간을 가늠할 수 있고, 스케줄을 만든다. 그 음식은 모든 이가 평등하게 먹을 수 있는 비건, 채식으로 어떤 생명에 해를 끼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지향한다. 

사랑과 모두의 땀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언제나 맛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문화를 함께, 그리고 마치 소금과도 같은 우리의 사랑이 들어간 레시피로, 내가 먹는 레인보우의 음식은 매 순간 최고의 맛이었다. 


그리고 식사와 함께 우리는 노래를 한다. 

여기서 부르는 노래들은 레인보우 송이라고 부른다. 레인보우 개더링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이 만들고, 불리어져 온 노래들이고, 아마 지역마다 새로운 노래가 여럿에 불리어지면 추가되기도 하고, 언어도 다를 것이고, 어찌 보면 사람들마다 부르는 스타일이 다르니까, 같은 노래 더라도 가사가 어쩔 때는 조금씩은 다를 때도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영어고 나의 언어가 아니다 보니까, 단어가 잘 와닿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자연적 요소의 단어들이 가사에 있고,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는 더더욱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다. 

자연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고 전체이듯이.


자연 속에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자연에서 유를 창조하고, 그 유 또한 우리가 떠나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설계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 주방, 모든 시설들은 자연 친화적이고, 가지고 온 것은 다시 돌아갈 때 고스란히 가지고 간다. 노래하기, 요리하기 외에 커뮤니티를 위해서는 많은 일손이 필요하고, 가령, 불을 지피기 위한 땔감을 구해오기, 화장실 만들기, 식수 떠 오기. 그 외에, 본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자신의 경험이 담긴 워크숍 프로그램을 원하면 언제든지 열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본인의 자의적인 선택, VOLUNTEER로 참여한다. 그래서 본인이 행복하는 길로 선택해 우리의 시간을 보낸다. 


체스게임과 연이어 이어지는 차와 Chai

기억나는 워크숍과 사람들과의 대화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얼마나 환경과 이 땅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무지했는지를 알았다. 내가 모르고 사용하는 물건들, 내가 돈을 주고 산 것들이 얼마나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지,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 진지하게 아마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으로 perma-culture 지속 가능한 문화에 기인한 마을, 커뮤니티에 대해 들어봤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쓰고 버릴 줄만 알았지,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을 몰랐다.


너무 많은 정보와 새로운 경험들로 가득 차 있던 나는 당시에 자발적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내가 몰랐던 정보와 다른 세상을 경험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에 그리고 여행을 할 때 여러 무리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면서 기분이 좋은 것, 그리고 그것이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천천히 때가 되니 배워갈 수 있었다. 



레인보우는 시계가 없지만, 레인보우 시간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해를 보고 시간을 내 몸속에서 안다. 그 옛날, 해는 우리의 시계가 아니었던가. 

주방에서는 사람들이 배고파하지 않게, 너무 늦어지지 않게  해가 어디쯤 떠 있을 때, 요리를 시작하고, 준비한다. 


레인보우 시간을 알릴 때에는 우리 모두가 알림이 된다. 가령, 식사 시간을 기점으로, 우리는 스케줄을 만든다. 

아침식사 이후, 어딘가에서 나는 소리를 칠 거야. 

워크숍 개최자가 그 이름을 소리 질러 부르고, 그것을 들은 또 누군가가 함께 소리를 지르고, 그 메아리는 메아리를 타서 저 멀리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메아리는 워크숍일 수도 있고, 식사시간을 알릴 때도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일 수도 있다.


레인보우의 부락을 보면, 옛날 옛적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그림이 그려지고, 이해가 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 세상의 4요소. 물, 불, 흙, 공기 이렇게 4가지 기본요소 Element는 우리 삶에 있어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한국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도시, 서울에서 보냈던 나로서는 이 4가지 element에 고마움을 느껴본 적도 없다. 그저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을 뿐이고, 이 편리함이 사실 자연으로부터 이루어졌음에도, 나는 자연에 대해 잊고 지냈다.   



레인보우에 있는 우리들은 모두 가족과도 같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리더가 없고, 어떤 한 사람이 우위를 지니지 않고, 구성원들 각자의 특별함에서 하나 ONENESS를, WHOLENESS 함께하여 더 큰 삶, 조화 HARMONY를 이루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매 식사 시간,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 수 있는 그 시간과 공간(우리는 이를 Circle이라고 부른다) 목소리를 내어, 생각과 마음을 공유하고, 중요한 사안 (새로운 공간을 어디에 어떻게 설치할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불을 지피기 위해 필요한 땔감을 구해오기 등) 최대한 함께 결정한다. 


첫 레인보우에 있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이 circle에서 목소리를 내본 적이 없다. 정보가 너무 많았고, 모든 순간순간이 이해하는 데에 바빴던 듯하다. 내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이 아쉽지는 않다. 언어의 자신감을 넘어서, 한국어였더라도 내가 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말할지 자신이 없었다.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value 가 이 모든 마을 구성원들에게도 과연 의미가 있는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늦은 밤, 하루는 (타즈매니아의 밤은 너무 추워서, 자러 들어가기 전에 꼭 불을 쬐어야만 했다) 모닥불을 쬐는 중, 내 옆에 앉아 있다가 친해진 이스라엘 친구와 대화를 했다. 지내는 레인보우 어디에서나 그렇듯, 그들이 나의 말에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을 거라는 마음에 나는 나의 감정들, 내가 느낀 첫 레인보우, 그리고 내가 아무런 말도 못 하겠다는 것, 하루하루가 마치 나에게 새로운 영감이고 행복하다는 것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런 그는 


“You are awaken, sister. Like a baby.”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깨우쳐진 것이라니. 사실 맞다. 이곳에 우리는 각자 다른 국적, 다른 문화, 다른 과거, 다른 경험을 갖고 온 다 다름으로 이뤄낸 하나의 공동체였지만, 하나의 사랑을 노래하는 하나의 평등하고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 공동체 속에서 나는 세상을 배워나가는 중인,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디딘 아기와도 같았다. 

하나의 작은 마을을 통해서 세상을 배운다. 우리는 이토록 홀로 살아가기 어렵고, 함께 살며 서로가 배우고, 돕고, 자란다. 작은 마을에서 세상을, 하나가 전체임을.

 


하루는 비가 엄청나게 오는 날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시캠프에서 밖으로 나가는 구역이 진흙구덩이가 되어 어지간히 큰 차가 아닌 이상, 지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비가 처음에 오는 날, 당연히 방수기능이 좋지 않아 물로 금방 가득 찼고, 부리나케 텐트를 접은 후, 그날 밤은 같이 온 친구들 중에 텐트에 세 명이서 함께 잠을 청했다. 


다음날이었다. 대략 200명 정도 모여 앉아 있던, circle이었다. 아침식사였던가, 식사 후 조용히 앉아 여느 때처럼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고, 떠들고 있었다. 저 멀리 건너편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의 시선이 느껴졌고, 그 시선이 참 편했다. 지속되는 비에 나는 잘 곳이 없어 도움을 청할만한 상황인데도, 친구들이랑 함께 지내는 것에 있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서, 그저 나의 어처구니없는 텐트의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해 떠들고 다녔다.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누군가에게 전달이 된 것일까.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아침식사 때 저 멀리 건너편에서 눈이 마주쳤던 그가 지금은 내 옆에 앉아있다.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마음으로, 식사 시간에 내 짝꿍은 매번 달랐는데, 오늘은 그가 내 짝꿍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본인은 숲 속에 자신의 집을 튼튼하게 잘 만들어놓아서, 집시 캠프에 본인의 캠퍼밴이 있으니 혹시 필요하면 거기서 지내는 것은 어떠하냐. 비가 그치는 날까지 거기서 지내보라는 너무 따뜻한 권유였다. 아마 나의 불평 이야기를 들었던지, 아직도 생각해 보면 엄청난 배려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본인의 소유물을 흔쾌히 공유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나는 며칠 동안 그의 밴에서 혼자서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빗소리가 밖에서 자장가처럼 들리고, 텐트가 비로 가득 차 있지 않다면 이것이 최고의 잠자리가 아닐까.


이전 05화 내가 몰랐던 세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