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없는 관계가 가능할까?
첫 만남
여기, 여행하면서 매일 스쳐 지나가는 우리의 인연과 영원할 것만 같다고 보낸 우리의 시간들이 있다.
장은 한국에서 꽤나 먼 지역인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그런 그를 호주에서 만나 조그만 침대 하나 들어가는 작은 밴에서 함께 생활하며, 사소한 것에서 찾는 행복의 여정이기도 하다.
나의 친구, 가족, 조언자, 스승, 동반자. 매 순간 놀라움을 함께 가져오는 사람.
우리가 제대로 대화를 하며 만난 순간은 호주, 타즈매니아에서 열린 나의 첫 번째 레인보우 개더링이었다. 나는 친구의 밴 근처에 앉아 아마 그림을 끄적였던 것 같다. 그러던 내 앞에 그가 앉았고, 첫인상에 굉장히 밝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내가 앉아 있던 곳은 자기가 아는 친구가 있던 곳도 아닌데, 그냥 빈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기타를 냉큼 집어서 치는데, 꽤나 솜씨가 있다. 우리는 서로가 어디서 왔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작은 정보들을 묻다가 알고 보니 사실 그가 나랑 같이 여행 다녔던 프랑스 친구, 이키오랑 아는 사이라는 것. 지난 순간들이 기억난다. 하루는 이키오가 어느 날, 나에게 자기가 재미있는 프랑스인 친구들 그룹을 만났고, 캠핑을 간 적이 있는데, 나는 당시 왠지 프랑스인 친구들 뿐만 있어서 따로 껴서 가진 않았다. 캠핑을 다녀온 이키오는 다들 인상이 좋고, 사람들이 좋았고, 그중 누군가에 대해 굉장히 사교성이 깊고 재미있으며, 사람들을 너무 잘 챙기는 친구 하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왠지 모르게 장이 그 친구일 것만 같았다.
그는 예전에 한국인 친구들과 같이 산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한국 뮤지션의 노래를 알려줬다고 기타를 치는데, 들어보니 혁오의 ‘위잉 위잉’이다. 순간, 많은 것들이 새로운 이곳 ‘레인보우 개더링’에서 내가 즐겨 듣던 한국 뮤지션의 노래를 들으니 고향에 온 듯, 마음이 참 포근해졌다. 그러고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장은 어느 순간, 다른 친구들을 만나 사라지고 없었다.
2020년 2월, 모든 연락이 단절된 숲 속에 있으면서, 밖에 있다가 들어온 사람들에게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첫 번째 레인보우와 두 번째 레인보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시점이다. 첫 번째 레인보우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생계에 대한 걱정, 일을 구해서 돈을 벌어야 된다는 걱정이 들었고, 갑자기 내 잔고에 대한 걱정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반면, 한 달을 꽉 채운 나의 두 번째 레인보우에서는 자연에 있는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어 최대한 오래 있었고, 이제는 내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저 세상에 나가서 새로운 모험을 해도 되겠다. 또는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궁금해지는 시점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나의 첫 레인보우는 코로나가 터진 시점이었고, 당시에 나는 많은 걱정을 만들어갔다. 친구들에게 물어 물어 레인보우를 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나와, 코로나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작전에 걱정이었지만, 호스텔에서 짐을 풀며 꿈과 같았던 레인보우를 기억해 봤다. 운이 좋게, 레인보우에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던 프랑스 친구, 코코가 당시 일자리를 찾고 있던 나에 대해 기억해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일자리를 추천해 주었다.
부리나케 나의 레인보우 텐트와 함께 짐을 다시 챙겨 나와 도착한 와인용 포도 과수원, 그곳에 장이 있었다. 그리고 12명의 프랑스인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지금 내가 호주에 있는지, 프랑스에 와 있는지 헷갈렸다.
한 사람과의 관계
이번 해 1월 즈음, 여러 명의 친구들과 여행을 함께 다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중에 친구 한 명이 사실 우리 둘이 3년 넘게 만나고 있고, 한 밴에서 함께 생활하며 여행을 다녔다는 정보를 듣고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 아니, 3년 전의 나를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와는 너무나도 다르고, 하루하루 나는 매 순간 변하는데, 너희 둘은 그런 3년이라는 시간을 계속 함께 보냈단 말이야?”
그런 그의 질문에 한 번 나는 우리가 어떤 관계일까? 우리는 어떻게 이 긴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며 거의 매일 24시간을 하루하루 알차게 보냈다.
비슷한 시즈음에 길에서 몇 번 보며 만나 친해진 동네 호주 아저씨에게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다. 아저씨의 외모는 자칫 노숙자 같은 비주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시 보면 자신만의 스타일, 여러 패치로 리폼한 옷이었고, 길에서 친해지고 나서 그런지 아쉬울 것 없이, 가끔 직설적인 질문, 궁금해했던 질문을 하고는 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나요?”
내게 돌아온 대답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답변이었다.
“ 관계는 규정 지을 필요 없는 거야. 나를 어떻게 규정지을 수 없듯이. 네가 행복하면 돼. ”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어느 누구도 내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을 주지는 못했다. 답이라는 것이 없듯이 말이다.
보디 아저씨
하루는 호주의 북쪽 퀸즐랜드 주에 있을 때이다. 마치 요정들과 난쟁이들이 지낼 것만 같은 작은 열대우림 마을, Kuranda를 방문했다.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Jackfruit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고, 야자수들, 그리고 울타리에서 자라고 있는, 마치 요정들이 낮잠을 자고 있을 것만 같은 푸른색의 꽃. 이런 신비한 마을에는 마치 판타지 세계 속에서나 있을 법한 마켓이 마을처럼 만들어져 있다.
조그마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수공예품, 액세서리, 옷, 맛있는 차와 과일주스, 커피를 파는 곳들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돌아다니면서 단지 물건을 구경한다는 느낌보다, 이곳 동네 사람들에게서 인사하기도 쉽고, 대화하기 편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지나가다 우연히 우리의 발을 붙든 곳은 마술 도구를 파는 가게였다.
마술 가게 아저씨 이름은 보디 Bohdi이다, 불교철학에서 보리를 가리키는 말로, 있는 그대로를 아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보디는 우리들에게 여러 트릭을 보여주기도 하고, 퍼즐박스라고 숨겨진 퍼즐을 풀어내는 장난감을 보여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때로 많은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눴고, 가령 그는 그의 전 애인들과의 관계,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했다. 떠나야 할 순간, 그는 아이들에게 파는 장난감 같은 원석 목걸이와 내 별자리를 담은 팔찌, 퍼즐박스 등을 선물했고, 우리가 거절하는 순간까지 이것저것 더 챙겨주려 했다. 때로 연락을 주고받자는 말에, 나는 그의 연락처를 저장해 뒀고, 하루는 내가 너무나 지독히 결혼에 대한 고집을 피웠던 때, 장과 지독한 말싸움을 했고, 나는 보디 아저씨의 지혜로운 조언이 궁금해 연락해 봤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잘 지내고 있고, 나는 그런 그에게 관계가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도전은 언제나 사랑과 함께, 그리고 나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을.
"Bring another peace or two of firewood when you come back, please"
두 개의 장작과 또 다른 평화를 가지고 돌아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구글 번역기를 써서 한국어로 보낸 문자.
" 당신은 오늘 당신의 불안에 안전하다고 느끼십니까"
이 정도 깊은 관계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으니, 언젠가는 우리도 결혼을 하지 않겠냐는 나의 질문으로 싸움은 시작했다.
사실 당시 나는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결혼을 왜 해야 되며,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유도 없이 어느 시점에는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확고하게 아니었다. 그는 그의 어머니, 아버지와 사이가 좋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 서로가 친구처럼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젊은 시절, 본인의 선택으로 따로 살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장의 십 대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그는 결혼이 오히려 사랑과 관계를 더 가로막는다고 믿는다. 나는 결혼이 우리의 관계를 가로막는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그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잠시 생각의 정리를 해볼 수도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싸우기로 결정했다. 싸운 이유는 아마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이 맞다고 느낀다는, 우리 인간의 말다툼 근원이 그렇듯 말이다.
장이 내가 원하는 부분을 들어주지 않는다 생각해 더욱더 말도 안 되는 나의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보디와의 문자에, 나는 결혼이라는 것이 마치 관계의 보험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통해 이 사람과 약속해, 모두로부터 나의 관계를 인정받고 싶었다. 국적도 다른 그와, 몇 년을 함께 하면서, 한 번보다 많은 순간, 우리 둘의 끝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순간들 앞에서 나는 그와 언제든 헤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게 걱정이 되었고, 뭔가 보호받고 싶었다.
사실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내가 이를 사랑한다는 것, 그가 나를 사랑하고 서로가 도와가는 관계라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끝이 있다는 것.
하지만 끝이 있어서 슬픈 게 아니라,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결혼을 하든, 결혼을 하지 않든 상관이 없다.
지금 곁에 있는 이와 언제까지 시간을 함께 보낼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로.
우리의 여행이 그렇듯이, 예상치 못함에 대한 만남은 우리의 ‘목적’이라는 이름 하에 예정되어 있던 ‘계획’에 재미뿐만 아니라 때로는 새로운 여행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내 육체를 움직여 이동한다. 가끔은 걷다 보면 마음이 끌리는 곳이 있고, 마음이 끌리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런 예기치 못한 만남 속에 나를 마주하면, 때로는 두려울 때가 있기도 해, 그 새로운 방향에 가지 않을 만한 나만의 이유를 만들어 변명하기 시작한다.
원래의 계획대로, 원래대로, 일정대로 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나의 여행 계획 일정표대로 움직이면, 돈이 덜 들거나, 덜 헤맬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계속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며,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인가 더 깊은 질문이 들 때가 있었다. 우리도 한 때는 돈을 가져다주는 직업에 따라, 여행의 방향을 결정한 적도 있다. 직업에 따라 지역 이동을 하는 일꾼의 방식대로 말이다.
어느 순간은 가끔 이 친구들을 만나고, 저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순간의 순간의 길을 정해 보는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 순간의 여행은 마법과도 같았다.
내가 가고 ‘싶었던’, 또는 내가 ‘가야만’했던 길은 사라지고, 내가 ‘해야만’했던 말은 사라지고 없다.
그 당시의 순간만이 남을 뿐. 처음 보는 누군가가, 편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하면, 그 사람이 이 순간 여기 내 눈앞에 있다는 것 자체에 너무 감사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