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라를 떠나기 일주일 정도 남았다. 5년의 여정을 뒤로 호주를 떠난다. 밴으로 여행을 할 당시 우리는 호주에 수많은 곳을 누볐다. 수풀이 우거진 산림, 녹색이 만개하고 물이 주변에 넘쳐나 물놀이할 곳도 가봤고, 바닷가 근처에서 파도와 따스한 햇살, 적당히 옷을 걸쳐 걸어 다니기 좋은 온도의 날들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사막과도 같이 건조하고, 화성의 그림과 같은 빨간 흙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막의 생명들
이곳, 알파라의 삶은 뜨겁고, 건조함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센 생명력을 보인다.
알파라에서 그나마 살기 편했던 것은 모기에 뜯길 일이 별로 없었다. 비가 오고 나면 간혹 모기들이 느껴지지만 많지는 않았다.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가 있다. 파리. 그들은 모든 이들의 숨결을 공유한다.
주방에서 일하면서 파리와의 싸움은 고통스럽고, 예민하다. 주방이 슈퍼마켓 안에 위치해 있어 가게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데리고 오는 파리들이 음식의 냄새를 따라 주방에 안착한다. 그렇다고 음식을 만드는 중에 파리 퇴치 스프레이를 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 덕에 나의 재료 손질 속도는 빨라졌다. 빵과 단 냄새를 좋아하는 듯하다. 샌드위치를 만들려고 빵 슬라이스를 여러 장 나열해 두면, 파리가 빵에 앉으려고 자꾸 달려든다. 손놀림이 빨라질 수밖에. 장은 박스를 잘라서 강력한 파리채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의 사이클이 어느덧 느껴졌다. 어느 날은 평소와 달리 파리가 너무 많이 보이면, 비가 올 때가 되었나 싶다. 비가 올 때 즘 되면, 맹렬히 내 귓가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과감히 머리 위에 앉으려고 한다. 삶의 의지다.
알파라의 개들은 낮에 주로 잠을 잔다. 아침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해가 질 때쯤 몸을 움직여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날이 더우면 땅을 파 흙구덩이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잔다. 그들만의 피서법이다. 비가 오거나, 스프링클러로 물 웅덩이가 만들어지면 진흙탕 속에 들어가 머드팩을 즐기는 모습도 본다. 물에 담그고 나서 흙에 몸을 비비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이곳에 오고 나서 굉장히 더운 날들이 몇 차례 있었다. 주인들이 여행을 갔는지, 아니면 그냥 떠돌아다니는 동네 개들이 알파라 스토어 가게 앞에 굶주림을 드러낸다. 우리 숙소는 바로 가게 옆에 붙어 있고, 대문이라 할 것 없는 철조망 문이 있을 뿐이다. 굶주린 동네 떠돌이 개들이 목을 축이기 위해, 우리 집 문 앞에 찾아오기도 한다. 사람 뿐 만 아니라 동네 개들도 우리의 손님이다.
이곳 동네 개들을 보면 덩치도 크고, 잘 가꾸어진 모습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지레 겁을 먹었다. 사냥할 생명체들도 그다지 없는 알파라의 여름, 그들에게 사람들은 생명줄이다. 하루는 우리의 친구들이자, 가게의 개들인 새미와 마마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중 장이 장난으로 나뭇가지를 던져보았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보고 장난치는 도구보다는, 하나의 무기로 인식하듯 두려움의 표정을 보였다. 나뭇가지나 공을 던지며 놀기에는 척박하고 더운 곳이다. 한 동안 40도를 넘는 기온이었다가, 눈에 띄던 동네 개들이 많이 없어졌다. 마음속으로 그들이 잘 살아남았길 바라지만, 이곳 삶의 현실이다.
알파라의 개미들은 강하다. 마치 이곳 땅의 주인 같다. 작아서 그냥 짓밟으면 되는 존재가 아니다. 지나가다가 잘못 밟으면 뼈가 시리게 아플 때가 있다. 서울살이 동안, 나는 개미 한 마리 찾기 어려워 개미를 딱히 연구해 본 적도 없다. 호주에서 얻은 첫 번째 감흥으로, 수많은 곤충들과 생명들. 그중에 개미는 나의 관찰대상이 되었다. 좋아하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는 이를 위한 배경지식으로 충분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사실은 모든 생명들이 세상의 이치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것 같다. 비가 올 때가 되면 개미들은 더욱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미 많은 일들이 저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지역이동을 하는지, 음식을 열심히 옮기는지 하루는 길고 긴 그들의 고속도로를 발견했다. 비가 잠시 그치면 그 수많은 개미들이 나와 살기 위해, 평소에는 순하던 개미들이 살짝만 발을 내디뎌도 내 발등을 타고 올라와 물고 뜯는다. 탓하기가 어렵다.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르겠고, 그들의 생명력에 놀라울 뿐이다.
코리안 바비큐
마지막 주라 가게에서 더 이상 요리를 하지 않는다. 오늘은 동료들, 그리고 간간히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던 동네 이웃들과 바비큐를 하기로 했다. 호주에서 바비큐는 흔한 이벤트이며,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주말이면 바비큐 하는 날. 공간이 넓은 이곳에서는 자신만의 바비큐 구이를 구비하는 것이 필수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고기를 먹지는 않기로 소문난 우리가 먼저 바비큐 이야기를 꺼내봤다. 매니저들과는 아쉬운 관계로 마무리했지만, 마지막 남은 날들 여기 알파라에, 우리와 함께 한 인연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가끔 동료들이 코리안 바비큐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있다. 사실 치킨과 함께 유명한 것은 코리안 바비큐이다. 바비큐라는 흔한 이름에 코리안이 붙어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20대 시절, 한국에서 친구들이랑 고깃집을 가면 고기 굽기를 그렇게도 좋아했다. 고깃집에 가서 사장님한테 고기 맛있게 굽는 팁도 물어보곤 했다. 한국식 고기 굽기는 가위와 무조건 함께이다. 집게로 고기를 들고 가위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그리고 뭐가 있을까. 쌈장. 다행히 예전에 아시아 마트에서 사 온 된장과 고추장이 있어, 다진 마늘과 참기를 가미해 만들었다. 김치 속으로 만들어둔 양념장이 있어 양파를 채 썰고 버무려, 겉절이를 만들었다. 된장과 미역을 보태 속을 따뜻하게 보태줄 국물도 만든다. 마지막으로 삼겹살을 굽기 좋은 두께로 자르고, 간을 해두었다. 장이 만들어둔 허니 간장양념으로 갈비도 재워두었다. 가끔 만들어 팔던 김밥도 몇 줄 만들어 썰어뒀다.
5달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사실 많은 주말을 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는데, 시간 보내다 보니 미뤄두고 미뤄뒀다. 마지막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을 때, 미루지 말고 행동한다. 늦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쉬운 기억들을 뒤로하고, 고마움만 좋은 기억들로 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