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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라티 Mar 16. 2024

여행자의 미역국

짐 꾸리기


가지고 온 배낭을 다시 꾸리기 시작했다. 배낭을 싸고, 풀기의 연속은 일상처럼 다가왔다. 배낭에 들어가는 것들로만 삶을 살아가려다 보니, 옷과 화장품들은 점점 간소화되었다. 계속 입던 옷들만 입게 되니 과감히 입지 않는 옷들은 그때그때 정리를 한다. 미니멀리즘의 아이디어는 우리 삶에 가까이에 있다. 안의 미니멀리즘은 마치 언제든 죽을 수 있을 것을 가정한 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짐을 꾸릴 때에도 스스로 던져본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이 옷들이 나에게 그 당시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하지만 행복에 대한 무게를 짐을 싸면서 배우게 것이다. 


5달 전쯤, 태국에서 호주로 들어올 때 나는 200페이지가량 되는 서적. 인도를 꿈꾸는 사람이면 읽어봐야 한다는 소설, Shantaram을 중고로 구매해 들여왔다. 아직도 읽고 있는 중이다. 나의 짐 속에서 가장 무거운 물건이다.


여행자의 미역국


채식을 지향하고 나서 더욱 빠지게 된 것이 해조류의 음식이다. 타지 생활하는 사람이면 알지 않을까. 생일이 다가오면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 생각나고, 지인 생일에 미역국을 꼭 끓여주고 싶은 마음.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간절히 느꼈다. 나는 김치 없이 몇 년을 살아보기도 했다. 여행을 오랫동안 할 적에는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애매하고, 아시아 마트에서 사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되려 꺼려하던 것이 김치다. 유일하게 한국인의 음식으로 가지고 다녔던 것은 미역이다. 


미역은 휴대하기에도 용이하다. 건조되어 있어 불리면 두 배 이상이 되는 미역은 기회가 닿으면 항시 구매해 배낭에 지니고 다녔다. 인가가 없는 곳을 오랫동안 여행하다 보면, 식자재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보관할 냉장고도 없기에 주로 채소와 건조된 곡물류로 식단을 유지한 적이 있다. 미역 몇 줄기를 넣어 국물에 깊은 맛을 가미했다. 라면에 미역 조금만 넣어도 감칠맛이 300프로 상승한다. 생선류를 구하기 힘들 경우, 또는 신선하지 않을 경우 해조류에서 얻는 바다의 짠맛으로 오랫동안 해산물에 의지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고기 없이 버섯과 함께 미역국을 주로 끓였다. 버섯이 없을 경우에는 가끔 쌀과 함께 미역죽을 만들기도 했다. 참기름이 있으면 굉장한 행운이다. 내 주위에 없을 경우에는 있는 대로, 없는 대로 그 기지를 발휘하는 것이 타지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던 나만의 방식인 듯하다. 


생리통이 유독 심했다. 작년 여름, 잠깐 한국을 들렸을 당시 발견한 내 뱃속에 자라 있던 자궁내막종. 십 대 시절에도 유달리 생리통이 심해 나는 통증을 항상 그러려니 해왔다. 점점 많아지는 생리혈의 양, 근 몇 년 사이 급증하는 통증의 정도.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마치 몇 년 동안, 나는 평소에 알지 못하던 나의 내면을 발견해 새삼 놀랐고, 예민하고 어두운 상처를 보듬고, 싸워 나가야만 했다. 사실 내 몸 안에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었던 것.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함께하니 서로가 고통받아왔던 거다. 이후, 나는 자궁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해초류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피를 맑게 도와주는 미역의 효능, 건강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맛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미역 컨넥션


파트너인 장의 고향은 프랑스의 브리타니 지역이다. 그의 고향은 프랑스 서쪽 끝에 위치한 해안 마을, Lampaul-Plouarzel이다. 조용한 이 마을에 아름다운 해안 풍경 말고도 유명한 것이 해초류다. 마트에 가면 식초에 절여둔 해초류들, 건조된 해초류 등 다양한 용도로 요리할 수 있는 해초류 제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어 놀라웠다. 주말에 열리는 동네 마켓에 가게 되면, 해초류 식자재들을 공급하는 로컬 상인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던 제품은 한국의 미역과 비슷한 종류에 잘게 썰어둔 것을 절여서 만든 seaweed tartare였다. 주재료로 올리브 오일과 식초와 해초류를 섞어두고 때에 따라, 피클을 넣기도, 시트러스 레몬을 넣기도 한다. 이는 파스타에 넣어서 만들어도, 샐러드와 곁들여서, 때로 나는 빵에 그저 발라먹기만 해도 맛있었다.



해초류로 소문난 만큼 동네에 어떤 해안가는 간혹 해초류가 너무 많아 냄새로도 소문 나 있다 한다. 나는 해초류 사랑꾼인지라,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강한 짭쪼롭한 해초의 냄새마저도 아름답고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당시 그의 집에 오리발이 있어 가끔 그에게 업혀 바다 멀리까지도 수영해 본 적이 있다. 해수의 온도가 굉장히 차가워 숨이 얻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해초류가 잔뜩 자라 있는 곳에 가 따스함을 느낀다.




미역은 미니멀한 삶을 사는 여행자를 닮았다. 조금만 휴대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고, 맛에 색다른 맛을 더하고,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생일을 함께 축복할 수도 있다. 타 문화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우리는 언제 미역국을 먹는지, 어머니들이 왜 미역국을 먹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비주얼이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미역국물을 나눠 먹으며 정을 나눈다. 오랫동안 끓여 뿌연 국물이 나올 때까지, 끓이면 끓일수록 맛있는 미역국처럼 말이다.



알파라를 떠나기 며칠을 앞두고, 배낭을 싸기도 했지만, 어떤 식재료가 남았는가 정리하기 시작했다. 떠날 때 집을 깔끔하게 비워야 하기에 재료 분배를 잘해야만 한다. 응급식품 같은 기분이 든다. 다행히도 나의 애용 아이템, 건조 미역이 아직 남아 있다. 아직 버섯이 남아 있으니 버섯미역국을 끓이기로 한다. 나는 마늘을 다지지 않고, 알째로 넣어서 국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 중에 일본인 쇼헤이는 항상 그렇게 요리에 마늘을 알째로 넣고, 음식에 서프라이즈가 있다고 말하고는 했다. 입안에 넣으면 살살 녹는 마늘의 맛과 미역의 궁합이 잘 맞다.


통째로 넣은 마늘을 불린 미역과 함께 참기름에 볶는다.



마지막에 버섯을 넣어 완성한 여행자의 건강을 챙기는 미역국.

밥 한 공기에 따뜻한 미역국과 함께, 5년 동안 나를 성장시켜 준 호주의 여정을 되새겨본다. 


해조류의 짭조름함이 스며든 바람이 나를 저 멀리서 부르고 있다. 내 마음도 그에 응답하는지, 설렌다. 이제 알파라의 붉은 땅을 보내줄 준비가 되었나 보다.


-다음 15화를 마지막으로 호주 여정을 마무리하며, 알파라의 레스토랑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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