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하라티 Mar 09. 2024

길들여지지 않을 개와 친구하기

부부(새미인데 요새는 부부가 되었디)와 마마가 우리와 마지막 일주일을 함께하고 있다.


처음에 더럽고 기운 없는 좀비의 눈길로 우리를 쳐다보던 부부. 나는 사실 그를 꺼려했고, 동정했다.

그리고 그를 관찰했다.  Shop dog 인 그는 가게 문 앞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가게 문이 닫히는 5시가 될 때 그는 주변을 맴돌며 시간을 보낸다. 하루는 일 끝나고 가게문을 닫고 돌아가려는데, 더위에 지친 그가 가게 근처에 흙구덩이를 만들어 헥헥거리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미트파이나 닭봉들이 남을 경우에 그에게 조금씩 가져다주었다. 아직도 야생적인(?) 어떤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듯한 행색, 항상 흙투성이인 그의 모습, 그리고 큰 개가 익숙지 않던 나는 가까이 다가가 음식을 주지 못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약간의 경계가 있었던 적이 있다. 그게 어느덧 5달 전이다.


가끔 매니저들이 그를 돌봐주고, 가게 사람들도 그의 존재를 알아 동네 터줏대감 같은 그이다. 사람들은 부부의 나이가 최소 12살 정도는 되어있을 거라고, 그 정도 나이에 이런 아웃백에 사는 camp dog 치고 굉장히 건강한 것이라 했다. 그런 그가 처음에는 불쌍하게만 느껴졌지만, 자꾸 가만히 보니 그는 먹을 것도 잘 얻어먹고 다니고, 자신만의 더위 피서법도 있고, 저녁만 되면 그와 우연히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우리 집에 점점 찾아오니 우리는 그에게 가끔 공간을 공유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내가 안으려 하면 그는 살며시 내 품 안에서 빠져나가곤 했다. 어느덧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면 얼굴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 손에 실어지기도 한다. 너무나도 편안한 공기가 느껴진다. 서로의 말은 하지 않지만, 친구가 되면 한없이 우리는 친구다.



어린 왕자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선생님들과 함께 연극을 만든 적이 있다.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극으로 만들었다. 나는 극에서 여우였고, 어린 왕자에게 나는 친구였다. 그와 나는 ‘관계’와 ‘길들여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부부를 길들였을까, 어떤 시간이 되면 그는 나를 깨우러 달려오고, 해가 질 즈음 우리는 산책을 가기 시작했고, 내가 일을 안 가는 날이면 하루 종일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를 길들여버린 것일까. 여우는 어린 왕자가 공들인 시간 때문에 수많은 장미 중에서 그 장미가 소중해진 것이라 했다. 우리의 시간이 서로를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유일하고 의미 있어지는 것, 수많은 여우 중에서 수많은 인간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 말이다. 그 행복에는 대가로 눈물과 책임이 따른다. 집이라고 할 것 없는 떠돌이라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미안했다.



삶은 양고기


어제저녁에 밥을 먹으러 가게에서 돌아온 부부와 마마. 그들과 어김없이 저녁 산책을 나가면, 부부는 늘 여유롭고 천천히 우리 바로 뒤에서 항상 따라오고, 마마는 조그만 몸으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자신의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사막같이 덥고, 건조한 곳에서 태어나 이곳은 그들의 땅이다. 알파라의 개. 모기가 많아지기 시작하면 나는 걸음을 집으로 향한다. 부부는 많이 걷지 않기 때문에 내가 자리에 일어나 집으로 가는 듯하면 신난 꼬리가 춤을 춘다.


오늘은 집에 가면 그들에게 맛있는 영양식을 주려고 한다. 나를 위해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도 이들에게 고기를 요리함은 특별셰프가 된 기분이다. 예전에 어느 날, 티브이 인간극장에서 스님 한분께서 돌보는 아이들을 위해 햄버거를 만들어주는 모습이 기억난다. 아직 클 나이라, 그들이 좋아할 만한 식단을 만들어주고 싶다 하셨다.


나는 먹지도 않는 음식을 누군가를 위해서 정성스레 만드는 것은 거룩한 기분이다.



냉동고를 정리하다 발견한 양의 큼직한 다리들을 통째로 몇 덩이 가지고 왔다. 냉동육이기에 잘 삶아서 하나씩 쥐어준다. 내 팔뚝보다 큰 덩어리를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아낌없이 먹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자는 꿀 같은 잠을 잔다. 잘 먹고, 잘 자라.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그들이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집에 들여도 우리 곁에 자주 오지 않던 부부는 이제 내 발 밑 근처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나의 조그만 움직임이 그를 깨우면, 그의 반사적인 꼬리가 먼저 행동한다. 너와 함께 여행 간다면 너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삶이 있다.

  

처음에 그를 더럽고 기운 없는 개라고 보았지만, 사실 그는 여유롭고 알파라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영혼이었다. 더러워 보인 것은 이곳의 절반인 붉은 흙에 그의 몸을 치장한 것뿐이었고, 극한 더위가 오면 땅 구덩이를 만들어 흙 속에 몸을 파묻기도 한다. 나는 그의 삶을 몰랐던 것뿐이다. 고맙다. 우리에게 친구들이 되어줘서. 화성과 같은 사막 속에서 즐길 방법을 배울 수 있던 것은 그들 덕분이다.

어젯밤 그의 발을 들여다보았다. 알파라에서 열심히 뛰어다녔던 세월을 증명하듯 딱딱한 굳은살들. 발을 열심히 만지는 나를 보면서 그는 어떠한 근심도 없듯이 잠을 잔다.

마치 사자의 털을 빗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친구니까, 떨어져 있어도 평생 서로를 기억하자.


이전 12화 호주의 마지막 바비큐, 코리안 바비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