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부탁해
곡물의 과잉 생산은 닭고기의 과잉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결국 닭고기의 가격이 떨어졌다. 이에 가금류 회사는 줄어드는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더 많은 닭을 길러야 했다. 결국 닭의 과잉 생산이 야기되었고 닭고기는 물고기처럼 닭을 먹지 말아야 할 동물의 사료로까지 사용되었다.(어류는 과도한 곡물 생산으로 야기된 연안의 오염 때문에 점차 양식으로 전환되는 추세에 있다.) 남아도는 닭고기는 또한 멕시코 같은 나라로 수출되었다. 이에 멕시코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국과 같은 구조, 즉 규모를 키우거나 아예 사업을 포기하며 제 살을 깎아먹는 구조에 의존하게 된다.
<제 3의 식탁>중, 댄 바버, 글항아리
녹색(화학비료의 발명. 석유를 질소비료로 만들어 대량 생산을 만들어낸)혁명과 함께 옥수수 생산량은 급증했다. 넘쳐나는 옥수수의 소비처를 찾아야 했고, 그중 하나는 가축 사료였다. 세계화와 함께 값싼 사료와 축산물이 들어왔다. 국내 농가와 세계 시장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축산업은 규모화를 이루지 못하면 도태되었다. 기계가 들어오고 규모가 커졌다. 대출이 늘고, 외부 의존도가 커졌다. 규모화되었던 축산은 최근 수직계열화로 다시 한번 규모화 되고 있다. 축산인도 현대판 소작농이 되었다.
농촌農村은 이제 마을은 사라지고 농업만 남았다. 산업형 농사만이 ‘진짜’ 농사가 되었다. 규모는 커졌으나, 전통적인 농촌 문화는 사라졌다. 공동체가 사라진 농촌에는 피해의식과 패배주의가 숨을 쉬었다. 공장식 축산이 보통의 축산이 된 것을 축산인만 비난할 수는 없다. 국가 정책을 따라가다보니 지금에 이른 부분이 있다. 고향을 떠나지 않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국가가 포기한 농업에서 그나마 돈이 되고, 안정적인 일이 축산이었다. 젊은 후계농 대부분이 축산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라고 동물에 매여 사는 삶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출에서 대출로 이어지는 생활, 주말도 휴가도 없이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생활을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마을은 승자와 패자로 나뉘었다. 다수의 삶은 척박해졌다. 똥냄새와 파리떼 옆에 살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물과 공기는 오염되었고, 풍경은 삭막해졌다. 축산업에서 축산인과 주민의 갈등만 부각되지만, 축산인은 산업의 끝단에 있을 뿐이다.
축산업은 사료회사, 의약회사, 가공식품회사 등이 얽힌 거대한 산업군이다. 업계는 값싼 식품이 빈곤을 없앨 것이라고 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빈곤은 늘었다. 업계는 비용의 많은 부분을 사회에 전가한다. 온실가스 배출로, 지표수 사용으로, 지하수 오염으로 내일의 자원을 썼고, 열악한 노동으로, 보건 비용으로, 사회가 값을 치르게 했다.
현대의 축산업은 농사와 분리된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효율화 혹은 수익성이라는 단어로 분업화되었다. 각 집의 마당에서 유기적이고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던 가축은 축사로 모여야 했다. 동물을 먹이기 위한 농사를 따로 지어야 했다. 분뇨는 퇴비가 아니라 폐기물이 되었다. 생태계로부터 단절되었다.
우리는 대안축산을 공부하기 위해 우리는 몇몇 대안축산 농장을 찾아갔다. 야산 그대로를 방목장으로 쓰는 농장도 있고, 작은 농가들이 연합해서 공동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는 곳도 있고, 생활소비자협동조합(생협)과 계약 생산하는 곳도 있었다. 야산의 방목장에서는 밥시간을 알리면 돼지 무리가 산에서 우르르 뛰어 내려왔다. 어른 돼지, 새끼 돼지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컸다. 인근농가에서 사과즙을 짜고 남은 부산물을 가져다 먹인다고 했다. 농부들은 돼지가 먹는 사료를 직접 만들었다. 보통의 자연양돈 농가는 쌀겨를 기본으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농부산물을 넣어 발효시켰다. 농장은 소비자가 믿을 수 있는 작은 규모를 유지했고, 신뢰를 보증하는 별도의 인증기관이 필요하지 않았다. 송곳니를 뽑지 않고, 꼬리를 자르지 않았다. 깨끗하고 넓은 집에서 자라는 돼지에게 약은 필요하지 않았다. 자연 교미를 하고 새끼를 낳았다. 자연 양돈 농장은 적정 마릿수를 유지한다. 보통 100여마리. 우리나라 평균 돼지 사육수는 3,000마리이다. 농장에는 똥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자연 양돈 농장에서는 직접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돼지 뼈를 고아서 만든 국밥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구이용, 수육용으로 부위를 섞어, 특정 부위만 판매되는 것을 방지했다. 남는 부위는 소시지를 만들어 버리는 부위가 없도록 했다. 자연 양돈계에 문제가 있다면, 이런 문제에 관심 있는 소비자는 최후엔 채식주의자가 돼버린다는 것이다. 한때 고기를 열심히 사 먹던 나와 주변 친구들도 결국엔 채식주의자로 종결되었다.
자연 양돈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가격 이야기를 꺼냈다. 같은 양을 먹으려면 가격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같은 가격으로 삼겹살을 먹을 수 없다. 구이용이 아닌 국거리나 조림을 먹는다면 비용의 급격한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싼 가격이 아니라, 적정한 가격이다. 싼 가격은 많은 양을 먹는 걸 전제로 설정한 가격이다. 적정양의 고기를 먹는다면, 총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비롯하는 끊임없는 가축전염병의 발병이나, 지나친 육류 섭취로 인류가 겪고 있는 각종 질병을 생각한다면 무엇이 정상인지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