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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Nov 01. 2020

25. 대안 축산 연구회

돼지를 부탁해

캡틴 H는 대안축산연구회의 창립자이며, 돼지의 주식이었던 미강을 공급했다. 나를 돼지 앞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 이 여정의 처음과 끝에 그가 있었다. 하지만 그도 결국 변했다. 축산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소에 관한 음모: 지속가능성의 비밀>을 본 후, 마을 신문에 쓴 고해성사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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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자, 소를 기르는 축산인입니다. 사실 축산과 육식에 관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이기에 저도 그에 편승하여 소 길러 돈 벌고, 그 돈으로 고기 먹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유기농업을 하는 농부이고, 아이들의 미래와 건강을 생각하는 아빠로서 계속 외면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보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축산인으로서 문제를 자각하고 대안을 실천해야겠다, 조금이라도 변화를 만들어보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공감하는 몇몇 축산인들과 ‘대안축산연구회’를 결성했습니다. 같이 공부도 하고, 방목 돼지와 닭도 길러보고 있습니다. 


나름 축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양심적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다큐멘터리를 통해 마주한 더 깊은 진실은 충격이었습니다. 양심을 끝없이 후벼파더군요. 솔직히 소도 그만 기르고 채식을 해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많이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내가 먹은 것이, 돈을 버는 일이 환경을 병들게 하고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동물들을 절규하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라도 실천해야만 할 것 같은 절박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쉬운 답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극단의 외침은 사람들이 문제를 더 외면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기축산, 동물복지 축산, 방목 농장, Non-GMO 사료, 자연 양돈 같은 대안 축산이 많아져야겠죠. 대안 축산을 더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요. 소비자도 환경과 건강에 관심을 갖고 이것을 소비해야겠지요. 가축이 사는 동안 조금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건강한 먹이를 먹을 수 있다면, 인간도 이 생명을 몸으로 받아들일 때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지 않을까요. 하... 어쨌든 고기는 좀 줄여야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ㅡ 캡틴 H


고라니 S는 내게 돼지를 키울 수 있는 터를 빌려주었으며, 대안축산연구회의 회장이기도 하다(고장난 전기목책기의 주인!). 내가 지켜본 바로는 고라니 S야말로 진정한 마당쇠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진즉부터 젖소들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왔다. 유기축산을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데, 유기축산에서 요구하는 기준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젖소를 돌보고 있다. 우유 생산량을 늘려주는 곡물사료도 될 수 있는 한 조금만 준다. 우유를 적게 짜는 것이 그의 목표다. 발 병이 자주 나는 젖소들을 위해 발 밑에 까는 깔짚을 자주 교체한다. 송아지 사육장을 넓혀 송아지가 뛰어다닐 수 있게 했다. 이는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善 같은 것인데, 말 수 적은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최근에야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올해 고라니 S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그의 아들이 입학한다. 고라니 S가 그 감회를 적은 글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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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젖소를 키웠다. 집 앞마당이 전부 젖소 축사였고, 어린 나의 놀이터였다. 놀이 상대는 당연히 젖소와 송아지들이었다. 우유와 사료를 주고, 여물도 주며 놀던 것이, 몸이 자라면서 그대로 ‘일'이 되었다. 젖소를 기르는 것은 일로서가 아니라 삶으로 익숙해졌다.


고등학교 시절, 마음 깊게 새긴 것이 있다. ‘더불어 사는 평민', ‘농부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어라', ‘지속 가능한 농업'이다. 농업과 환경, 그리고 이웃과 연관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 전공을 축산과로 정하지 못했다. 배운 대로라면 식량작물을 공부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벼농사를 공부하게 됐다. 집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어 다시 소 키우는 일을 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했다.


젖소를 키우면서 유가공사업도 시작했다. 그런데 초창기에는 친환경 우유가 아닌 일반 우유였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먹이지 못했다. 내가 만들어 파는 것을 내 아이에게 먹이지 못한다는 것이 많이 괴로워 견딜 수 없었다. 몇년의 고심 끝에 소에게 유기농 사료만 먹이고, 항생제와 약품을 끊어 유기축산 인증을 받게 되었다. 그제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조금은 마음을 놓았다. 


대형 트랙터를 몰고 왕왕거리며 들녘을 누비는 나를 그저 축산농장 2세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환경, 농업, 축산업 같은 단어들이 뒤엉켜 항상 복잡하다. 학교에 처음 들어설 때보다 졸업한 뒤의 시간이 점점 길어짐에 따라 그때 새겼던 말들이 조금씩 흐려져 머리가 마비되곤 한다. 


어느새 첫째 아이가 자라서 내가 다닌 학교엘 가고, 아빠가 하는 농사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분은 좋다. 아들이 나를 보고 ‘아버지가 나쁘게만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안도감도 든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을 다시 토해내어 되새김질 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아들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나는 ‘돌아오고 싶은 농장'으로 만드는데 힘쓰려 한다.


ㅡ고라니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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