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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an 03. 2019

나는야 무인도 한가운데 갇힌 로빈슨 크루소

그저 이해받고 싶었다. 여전히 차오르는 그 작고 사소한 감정들에 대하여.

육아는 고립된 섬처럼 외로운 공간이었다.
엄마라는 외투를 입고 있지만 전혀 내 몸에 맞지 않는 느낌,
당시 나는 엄마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엄마라는 사회 속에 섞이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했다.








외로웠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 상쾌한 공기를 두 팔로 가르며 아무 생각 없이 한참을 뛰고 싶었다. 소낙비가 내리면 땅에서 올라오는 싱그러운 흙냄새를 콧구멍에 밀어넣고 싶었고, 밤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초승달을 바라보면 첫사랑이 떠오르기도 했으며, 욕조 아래로 도르르 떨어지는 물 알갱이에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내 안의 감성은 그대로였지만 나는 변해야 했다. 엄마라는 존재는 지금 이 순간 나를 요동치게 만드는 그 사소한 감정까지도 외면하게 했다. 누군가가 고립된 이 섬에서 목청껏 소리치고 있는 나를 발견해주길 바랐다.

그저 이해받고 싶었다. 내 안에 여전히 차오르는 그 작고 사소한 감정들에 대하여.


  






따르릉. 오랜만에 전화기가 울렸다. 도대체 누구길래.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거실로 가서 잽싸게 전화기를 낚아챈다.

“잘 지냈지? 육아휴직 들어간 거 이제야 봤어. 아기는 잘 크고?”

회사 동료다. 그것도 아주 오랜만의 사적인 통화다. 아직도 나를 찾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낯설 만큼 어색하다.

이제 곧 대리 진급이잖아. 대리급은 시험도 없고 웬만해서는 한번에 진급된다고 하더라고. 육아휴직 1년 내놨더라. 진짜 1년 할 거야?”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전, 선배들은 나에게 육아휴직을 여섯 달 이상 신청할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이 있다는 것을 귀띔해주었다. 바로 진급 문제였다. 6개월 이상의 육아휴직을 신청할 경우 진급 대상이어도 무조건 누락된다는 것이었다.

눈 딱 감고 1년을 쓰기로 했다. 회사는 오래 다닐 거니까 지금 내가 동기들보다 조금 뒤처지더라도 장거리 달리기에서는 별 차이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웬만해서는 바로 진급될 수 있다는 대리 진급에 누락된다는 사실 자체가 속상했다. 육아휴직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회사는 육아휴직자를 무언가 문제 있는 사람처럼 규정짓는 것 같았다.  

우리는 똑같이 대학을 나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취업문을 뚫고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동등하게 경쟁했고 여성이기에 겪는 사회적 차별을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보이지 않는 사회적 차별과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승리자와 패배자가 애초부터 결정되어 있는 싸움. 한 사람이 지쳐나갈 때까지 끝나지 않는 싸움.

   




동료와의 전화를 끊고 나니 말 못할 패배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가슴에 쌓인 응어리라도 풀고 싶지만 품에 잠든 아기는 아무 말이 없다. 연락처를 뒤져보며 전화할 대상을 찾아보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다.

얘는 몇 년간 연락도 안 했잖아. 얘는 전화할 만큼 친하지도 않네. 얘도.’

한참 동안 전화 목록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결국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것을 포기한다. 그나마 가장 친했던 대학 동기가 유력한 후보였는데 아직 싱글인 그녀와는 공감대를 찾기가 힘들었다. 결혼한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모든 것이 가족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와는 달리 싱글인 그녀는 내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다. 전화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가기로 했다.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서.     


 


아파트 놀이터 옆 벤치에 다행히 엄마들 무리가 앉아 있다. 아기를 재우는 척 그 앞을 몇 번 왔다 갔다 해보지만 아무도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핸드폰을 보는 척 바로 옆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어도 보지만 그들에게 나는 그저 투명인간 같은 존재다. 버스 정류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서 무작정 버스를 탄다. 한 백화점 앞에 도착한 나는 정처 없이 그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다 다리가 아프면 백화점 내 수유실에 우두커니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푸드코트에 홀로 앉아 점심을 먹는다. 옆 테이블에 삼삼오오 여러 무리가 앉아 즐겁게 수다를 떠는 모습을 부러운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다 이내 아파트로 돌아가는 버스에 다시 오른다.      




엄마들 모임 같은 거 있지 않아? 거기라도 한번 나가봐.”

보다 못한 남편이 제안을 했다.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여러 엄마들을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며칠 후 아파트 초입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대여섯 명의 엄마들이 모였다. 다들 아기를 데리고 왔고 아기의 연령대도 비슷했다. 우리는 아기 이름과 나이를 서로 묻고 답하며 초반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기에 대한 대화 소재가 고갈되자 어색한 공기가 공간을 메웠다. 그때 한 엄마가 입을 열었다.

“그 드라마 봤어요? 남편이 바람났잖아요. 결국 내연녀랑 된 거예요?”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드라마 이야기는 곧 남편, 시댁, 교육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나는 다음에 태어나면 기독교 믿는 남자랑 결혼할 거라니깐. 세상에서 시댁 제사가 제일 싫어.”

“다들 영유 보낼 거지? 요즘은 일곱 살이면 과거시제를 해야 한대. 자기는 영어 노출 뭐 하고 있어?”

초롱초롱한 눈빛,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는 엄마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그러나 어색한 웃음, 맥 빠진 눈빛, 오직 나만 그들의 대화에 전혀 끼지 못하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타이밍 문제라고 생각했다. 대화란 한 사람의 말이 끝나고 이어져야 하는데 그들과의 대화는 마치 서바이벌처럼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한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의 말을 끊어가며 자기의 말을 시작하는 게 다반사였고, 두 사람이 동시에 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고급 기술까지 선보였다. 마치 토론을 벌이듯 급변하는 이 이야기 배틀에 도저히 내가 낄 작은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타이밍이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것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이 사회, 저 사회, 그 어느 사회에도 섞일 수 없는 철저히 고립된 나의 모습 같았다. 


육아는 고립된 섬처럼 외로운 공간이었다. 엄마라는 외투를 입고 있지만 전혀 내 몸에 맞지 않는 느낌, 당시 나는 엄마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엄마라는 사회 속에 섞이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했다. 아기에 대한 걱정보다는 소녀 같은 감성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잔뜩 지배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안에 차오르는 작고 사소한 감정들은 밖으로 표출되지 못한 채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갔고 나 자신은 철저히 고립되었다.




“그 아침 드라마 있잖아. 나 그거 보는 재미로 살아. 주인공 남자배우가 얼마나 멋있는지.”

여든일곱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아직도 드라마 이야기를 하신다. 그녀의 유일한 낙은 리모컨을 쥐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 것이다. 2015년 폭염에도 불구하고 한류 스타 배용준의 결혼식장을 찾은 약 200명의 일본 팬들 또한 사십대에서 육십대에 이르는 일명 아줌마 팬이었다. 여든일곱 할머니와 어느 일본인 아줌마 팬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수줍은 소녀가 살고 있다.

여자에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방황의 시작이기도 하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다시 취업전선으로 향하는 경단녀의 이야기나, 창업의 길로 뛰어들어 스타트업의 대표가 된 엄마들의 도전기는 미래에 대한 방황을 접고 다시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고 있는 엄마들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어른에게도 여전히 소녀 같은 감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민도 존재한다. 우리의 마음 한켠에 차오르는 이 작고 사소한 감정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닌 평범하고 당연한 감정인 것이다.     




육아는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엄마는 자기 안에 존재하는 그 작고 사소한 감정들을 찾아 누군가와 그 마음을 나눠야만 한다. 동네 엄마들이 모이는 놀이터에서든, 엄마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든, 독서든 글쓰기든 내 감정을 적절히 표출하여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그 작고 사소한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낼 그릇을 찾아야 한다.




세쌍둥이를 낳아 키우면서 내가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글쓰기 덕분이었다. 집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24시간 내내 홀로 육아하며 내 안에 차오르는 그 감정들을 어디로든 쏟아내고 싶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단 한 번도 글쓰기를 해본 적이 없던 내가 하루하루 글을 쓰게 된 계기도 바로 그 감정들을 쏟아낼 그릇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책을 쓰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과거의 나는 고립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세상을 향해 내딛을 한 발자국의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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