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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an 10. 2019

알래스카에서 날아온 세쌍둥이

기적처럼 두 번째 아이가 찾아와주었다. 그것도 세 명씩이나.

‘도대체 왜 안 되는 걸까? 혹시 문제가 있는 걸까? 우리는 각자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먼저 남편이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다.
“정자왕입니다.”







처음에는 하나인 줄 알았다. 2주 후 정기검진에서 아기집이 하나 더 보인다는 말을 듣고 내가 쌍둥이 엄마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사뭇 흥분도 되었다. 하지만 기분 좋은 흥분은 거기까지였다. 또다시 2주 후 정기검진에서 아기집 한쪽이 분열된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위험한 임신입니다.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요. 선택유산을 권해드립니다. 저희 병원은 세쌍둥이 분만 못합니다.”

그날, 유명하다던 서울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나에게 선택유산을 권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2014년 가을, 남편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1년 반 만에 하나가 된 우리 세 식구는 너무나도 애틋했다. 서둘러 함께할 보금자리를 구했다.


“둘째 언제 가질 거니? 아이에게 동생은 선물이란다.”

큰애의 첫돌 무렵부터 시어머니는 종종 둘째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동안 남편의 유학을 빌미로 둘째 계획을 미뤄왔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때가 된 것 같았다. 아니, 지금 가져도 가까스로 막차를 타는 느낌이었다. 난 아직 서른하나였지만 큰애는 이미 다섯 살 유치원생이었으니까. 우리는 둘째를 갖기로 결심했다. 외로운 큰애를 위해.





나는 곧바로 방어막을 풀고 경계 태세를 낮추었다. 거제도 몽돌해변 하얀 나래펜션 201호에서 단 한 방에 아이를 가졌던 나는 그때까지도 임신에 있어서는 아주 시건방졌다. 내가 경계를 풀면 아이가 바로 찾아와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임테기는 번번이 한 줄이었고 무심한 생리만이 나를 찾아와주었다.

한 달, 석 달, 여섯 달… 어느덧 시건방은 사라지고 불안이 엄습했다.      

‘도대체 왜 안 되는 걸까? 혹시 문제가 있는 걸까?’      

우리는 각자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먼저 남편이 정자의 활동성을 알아보는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다.

“정자왕입니다.”

마치 비웃음같이 느껴지는 묘한 표정과 함께 들이민 남편의 결과지에는 남편의 정자 활동성이 상위 5퍼센트에 포함될 정도로 우수한 정자라는 소견이 들어 있었다. 그럼 문제는 나란 말인가!      





나는 서울의 한 난임 클리닉을 찾았다. 그렇게 매달 생리 종료 며칠 단위로 병원을 방문하여 정상 배란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를 받았고 배란 정도를 확인하여 배란일도 받았다. 그날이 우리에겐 합궁일이자 의무적으로 관계를 해야 하는 디데이가 되었다. 분명 배란은 문제없다고 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도 안 되는 임신 비법을 따라하기도 했고 견과류, 연어, 호박 등 착상에 좋은 음식도 찾아 먹었다. 그러나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무배란 월경일 수도 있습니다. 배란 기능에는 이상이 없지만 간혹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인도 1년에 한두 번은 무배란이 되기도 하거든요.”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배란될 난포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해주는 정도였다. 벌써 병원을 다닌 지도  여섯 달째, 임신을 계획한 지도 거의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지쳐 있었다.     


“병원 그만 다니자.”

난임 클리닉에서 이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인공수정, 시험관과 같은 시술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둘째를 갖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분간 둘째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것도 아주 멀리 알래스카로. 그렇게 우리는 알래스카로 2주간의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집착에서 해방된 우리에게 뜻밖에 아이가 찾아와주었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마치 마법처럼.


아마도 그날이었던 것 같다. 마타누스카 빙하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던 어느 남루한 호텔에서 차가운 알래스카의 밤공기가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매서운 한기로 방안을 온통 휘감았던 그날, 알래스카의 강렬한 정기가 내 몸 구석구석에 찬란한 빛을 심어준 그날, 칠흑 같은 밤하늘을 빼곡히 채웠던 수많은 별들이 은성한 불빛을 발산하며 내 가슴 속으로 쏟아질 것만 같았던 바로 그날, 우리는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기적처럼 두 번째 아이가 찾아와주었다. 그것도 세 명씩이나. 메이드 인 알.래.스카. 임신을 계획한 지 1년 만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병원 복도에 우두커니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손에는 길게 늘어진 세 장의 초음파 사진이 들려 있었다. 콩알만큼 작은 아기들이 내 안에 그것도 세 명씩이나 있단다. 두 눈으로 아이들을 보았고 두 귀로 아이들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진료실 안을 가득 메웠던 세 개의 우렁찬 심장 소리는 마타누스카 빙하만큼이나 맑고 찬란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도 잠시, 눈앞에 현실이 그려졌다. 6년이 지났지만 아이 하나를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지 선명히 기억했던 나였기에, 그런 미숙한 엄마였기에 아이 넷의 엄마가 된다는 것이 덜컥 겁이 났다. 수많은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다복한 가정의 모습, 아이 넷의 엄마는 적어도 내 상상 속에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아주 어색한 길이었다. 두려웠다. 아이 넷을 양육해야 하는 현실, 유학 후 1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자리 잡지 못한 남편, 그리고 내 꿈. 이 모든 게 뒤섞여 나를 마구 짓눌렀다.




   

“세쌍둥이는 건강하게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어요. 산모도요.”

의사의 그 한마디가 계속 내 귓가를 빙빙 맴돌았다. 선택유산을 권하는 의사의 표정은 냉정했다. 진심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얼굴로 그는 선택유산만이 아이와 엄마가 건강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조언했다. 우선 아이 넷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걱정보다는 세 명의 아기를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정말 선택유산밖에 방법이 없을까. 내가 과연 어떤 아이를 선택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을까.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면 내가 그 아이를 평생 책임질 수 있을까.’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미시적인 정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나아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아이가 자립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될 경우, 예를 들면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경우, 부모의 역할은 그 아이에 대한 무한의 책임이 된다.





남편의 형은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아기 같은 분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다. 나는 어머니와 아주버니가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던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이 어느덧 190센티미터 거인의 커다란 손이 될 때까지도 어머니는 한 순간도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영화 <제8요일>에는 신이 모든 이들을 챙길 수 없기에 엄마라는 존재를 내려주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엄중한 일이다. 한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여정인지 절실하게 느꼈기에 아이 넷의 부모가 된다는 것, 나아가 아픈 아이의 부모가 될 수도 있다는 작은 가능성은 나의 유약한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안이란 건 애초부터 없었다. 간절하게 아이를 원했던 내가 어떤 아이를 선택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으니까. 그길로 세쌍둥이의 신의 손이라 불리는 S병원 교수를 알게 되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향했다.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아니,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엄마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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