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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an 24. 2019

나 홀로 출산

<세쌍둥이 나홀로 출산하다.>


“세쌍둥이라 마취약을 다량 투여할 겁니다. 허리를 굽혀주세요.”
새우등처럼 굽어진 척추 사이로 마취제가 들어가자 정신이 몽롱해졌다.
마취과 의사는 다리, 팔, 목, 뺨을 순서대로 꼬집었다. 감각이 없었고 갑자기 졸려왔다.   




  


출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남편은 며칠 후 미국으로 출국을 해야 했다.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국내 모 항공사에 입사하여 부기장 예비 교육을 한 달간 받아야 했다. 그토록 원했던 남편의 취업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 유학 후 바로 입사가 될 줄 알았던 순진했던 기대와는 달리 남편의 공백은 점점 길어졌고 결국 유학 후 1년 반 동안 나는 집안의 가장 역할을 이어가야 했다.

   

“미안해. 이번에도 낙방이야.”     


담담한 척 이야기하는 남편에게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그의 낙방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초조함은 세쌍둥이를 임신하면서 점차 불러오는 나의 배와 비례 공식을 성립하며 한없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랬기에 남편의 입사 소식은 내 어깨에 얹혀 있던 돌덩어리들을 덜어낼 수 있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세쌍둥이 출산을 코앞에 둔 바로 이 시점에 입사를 하다니.      


또 한 번 닥친 얄궂은 운명에 신이라는 존재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루라도 더 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절실한 바람인 것을. 35주라는 최대 만삭 주수를 채운 것만으로도 커다란 영광인 것을.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얄궂은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임신 35주 4일, 정확히 남편이 출국한 지 1주일 후 J교수는 세쌍둥이를 만나자고 했다.      


“지금까지 잘 버티셨어요. 36주를 넘기게 되면 자궁에 무리가 갈 수 있어요. 지금도 충분히 오래 견딘 거예요.”     

큰애와의 짧은 이별을 뒤로하고 수술 전날 친정엄마와 병원으로 향했다. 간호사는 수술이 내일 오후 마지막 타임이라고 했다. 간단한 수술 전 검사를 받고 병원 침대에 누우니 사뭇 긴장이 밀려왔다. 그렇게 어김없이 내일이 밝았다.     


수술 당일은 금식이었다. 오후까지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아무렇지 않았던 목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침을 꼴깍 삼켜보았다. 아직 9시 반인데 어떻게 하루를 견뎌야 할지 걱정이 밀려왔다. 친정엄마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간 뒤 나는 아무도 없는 병원 침대에 누워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환자님, 수술실로 이동할게요.”

갑자기 간호사가 분주하게 소변줄을 꽂았다.


“뭐, 뭐라고요? 오늘 오후 마지막 수술이라고 그러셨는데요?”

“교수님 일정이 갑자기 변경되셨어요. 수술 후 금식하셔야 하니 오전 수술이 더 좋아요. 운이 좋으신 거예요.”

간호사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방금 친정엄마께서 식사하러 가셨어요. 남편도 없고 저 혼자란 말이에요….”

휠체어에 앉은 만삭의 산모는 어느새 분만장에 들어가 수술 동의서에 스스로 사인을 했다. 두려움에 눈물이 두 눈에 그렁그렁 맺혔다.


“울지 말자. 내가 울면 아기들도 불안하잖아.”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남편도 엄마도 없이 차가운 분만장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내 신세가 참으로 처량했다.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간호사는 수술실을 향해 힘껏 휠체어를 밀었다.     


“아영아, 겁내지 마! 할 수 있어! 잘될 거니까 걱정 마.”

엄마였다. 수술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엄마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내 두 눈을 가득 메운 눈물이 당장이라도 넘실거릴 것만 같았다. 바로 이 모습, 큰애의 출산 때 보았던 엄마의 얼굴이었다. 가슴이 벌렁대는 것처럼 세차게 뛰었고 두 눈에 넘실거리던 눈물은 어느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잊고 있던 첫 번째 출산의 공포가 온몸을 휘감으며 내 몸뚱이를 짓눌렀다. 차가운 수술실 공기, 희미한 수술실 조명, 차갑게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던 마취약, 감각이 없는 다리를 세차게 흔들어 꺼냈아기까지. 찰나의 기억은 온몸에 곤히 잠들어있던 세포들을 깨웠다. 두려웠다.     






수술실엔 열 명 남짓 의료진이 있었다. 산부인과, 소아과, 마취과.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의료진이 모였다. 마취과 의사가 말했다.


“세쌍둥이라 마취약을 다량 투여할 겁니다. 허리를 굽혀주세요.”

새우등처럼 굽어진 척추 사이로 마취제가 들어가자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는 다리, 팔, 목, 뺨을 순서대로 꼬집었다. 감각이 없었고 갑자기 졸려왔다. 서서히 정신을 잃는 나의 얼굴을 보자 그는 다급해진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내 뺨을 연거푸 때렸다.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정신을 잃으면 전신마취로 돌려야 합니다.”

생각보다 마취가 급속도로 진행된 것이 문제였다. 보다 못한 J교수는 수술을 빨리 진행하자고 재촉했다. 마취과 의사는 내 뺨을 계속 때렸고, 나는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두려움과 공포가 다시 나를 에워쌌다.


‘아기들만 생각하자. 곧 만나게 될 내 아기들!’

희미한 조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30초가 30분처럼 더디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 순간 아기 울음소리가 수술실에 울려퍼졌다.      


“2016년 4월 14일 10시 12분, 2.3킬로그램 왕자님입니다.”

연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울음소리가 수술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2016년 4월 14일 10시 14분, 2.1킬로그램 왕자님입니다.”


“2016년 4월 14일 10시 15분, 2.63킬로그램 왕자님입니다. 세 명 모두 2킬로그램을 넘기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에요. 정말 수고하셨어요. 축하드려요.”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가느다란 환호성도 새어나왔다.    

 

아기들이 건강하게 태어난 걸 확인하자 그동안의 감정, 즉 두려움, 불안함, 무서움이 북받쳐올랐다. 그리고 감정들은 눈물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엄마의 바람대로 아기들은 모두 건강하게 와주었다. 세쌍둥이는 대개 인큐베이터나 신생아 집중 치료실로 옮겨지지만 우리 아기들은 인큐베이터를 거치지 않고 모두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당시 세쌍둥이가 바로 신생아실로 가기 위해서는 임신 주수 35주 이상, 몸무게 2킬로그램 이상, 자가호흡 가능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는데 세 아기들 모두 그 조건을 충족했다. 아기들은 보통의 아기들처럼 신생아실에 머물렀고, 별탈 없이 퇴원했다. 그렇게 나는 세쌍둥이와 함께 산후조리원으로 향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여느 엄마들처럼.      


퇴원하던 날, 신생아 집중 치료실 창문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던 그 엄마가 생각났다. 그녀의 눈물을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마도 아기를 하루 더 품는 것에 대한 절실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로 인해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알게 되었고, 아기를 하루를 더 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감사했다. 아기들을 건강하게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누구보다 평범하지 않은 임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건강한 아기들을 출산했다. 세쌍둥이를 임신한 바로 그날부터 사회가 지향하는 안전한 길이 아닌 비포장도로를 걸어왔지만 무섭고 두려웠던 소음으로부터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엄마라는 믿음, 해낼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텼고, 결국 아기들을 건강하게 만났다.      


세쌍둥이 임신을 처음 알게 된날, 신을 원망했다. 또다시 벼랑 끝에 나를 서게 만들었던 신이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견딜 수 없을 거라 생각했고, 아들 넷의 엄마가 된다는 사실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신이 내게 준 시련은,

내가 극복할 수 있는 크기였다.






<출생 당시 사진>


일반 산모에게는 아주 당연한 것이지만 아기 발도장은 세쌍둥이 산모에게는 그저 부러운 증표이다.

(아기 발도장은 신생아실로 바로 가는 아기들만 찍는 것이기에...)


이 사진들을 보고있으니 그때의 감정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와주어서 너무 고맙다...


<1호 - 2.3 kg>
<2호 - 2.1 kg>
<3호 - 2.63 kg>


표지는 큰애부터 삼둥이까지,

아들 넷의 출생 사진을 한 사진에 모아봤습니다.

우리 아이들 비슷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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