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넷맘 Jan 31. 2019

첫정, 너는 내게 온 우주

넌 아직도 내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란다.

“저만 없으면 되는 거잖아요! 제가 가면 되는 거잖아요! 우리 엄마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큰애가 간호사를 향해 쏘아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품 안의 아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컸다니.


         




너는 내게 온 우주였다.

나의 청춘이었고, 삶의 원동력이었다.

너를 처음 임신했을 때 느꼈던 설렘, 너와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뭉클함, 너를 처음 울렸을 때 느꼈던 불안함, 네가 나에게 지어준 천사 같은 미소. 너의 작은 몸짓 하나가, 너의 작은 표정 하나가, 너의 작은 소리 하나가 나에게는 모두 커다란 의미였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어.’      


스물일곱, 엄마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던 내게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난 너는 설렘보다는 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아이가 우는 이유조차 몰랐던 초보 엄마,

모든 게 어리숙했던 철부지 같은 엄마,

네가 울면 따라 울었던 울보 엄마, 그게 바로 나였다.


너를 달랠 자신이 없어 젖만 들이밀었고 너를 재울 자신이 없어 아기띠를 메고 정처 없이 돌아다녔지. 그러다 겨우 잠든 너를 방에 눕히고 조용히 베란다로 건너가 식은 밥을 먹었지. 그러나 그마저도 제대로 삼키지 못한 채 잠에서 깬 너에게로 부리나케 달려갔어.


너의 몸짓 하나가, 너의 표정 하나가, 너의 작은 소리 하나가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의미였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처음이었기에.     






세쌍둥이 출산 후 둘째 날이었다. 이따금 훗배앓이가 찾아왔지만 진통제로 견딜 만했다. 우두커니 병원 침대에 누워 있자니 큰애가 계속 생각났다.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본 적이 없었던 아들, 이틀 전 엄마를 출산 병동에 데려다주면서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되레 엄마를 다독여준 아들, 아빠도 엄마도 없이 할머니 댁에 덩그러니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계속 마음이 쓰였다.


마침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앞에선 씩씩했던 큰애가 할머니 댁에서는 밥도 잘 먹지 않고 시무룩하단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짠해졌다.     

“오늘 제가 병원에서 데리고 자볼게요. 조리원에 가면 2주 동안 못 보게 될 테니.”     

그렇게 큰애가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까 싶어 병실을 2인실로 옮겼다.      

“엄마, 보고 싶었어! 정말! 정말!”     

분명 이틀 전에 헤어졌건만 우리는 마치 이산가족 상봉을 하듯 절절했다. 일곱 살 아이는 어느새 엄마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아기가 되어 있었다.




벌써 밤 10시였다. 우리는 잘 준비를 마치고 좁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그때, 한 간호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미성년자는 병원에서 잘 수 없습니다. 미성년자는 보호자가 아니잖아요. 집으로 보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웠다. 이 늦은 밤에 아이를 되돌려 보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느끼게 될 상실감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죄송하지만 오늘 밤만 어떻게 안 될까요? 지금 이 시간에 어떻게 아이만 보내나요. 하루만 허락해주실 수 없나요?”

“저희는 규정대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는 안 됩니다. 미성년자는 안 됩니다.”     



냉정한 답변만 이어졌다. 안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바로 그때 큰애가 벌떡 일어나더니 양말을 주섬주섬 신기 시작했다. 두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이었다.     

“저만 없으면 되는 거잖아요! 제가 가면 되는 거잖아요! 우리 엄마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큰애가 간호사를 향해 쏘아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품 안의 아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컸다니, 누군가를 향해 쏘아대는 아이의 모습이 낯설고도 놀라웠다. 그리고 동시에 미안했다.


세쌍둥이 임신 후 가장 마음에 걸렸던 큰애, 아이를 위해 계획한 임신이었지만 세쌍둥이 임신이 되레 아이에게 커다란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병실에서 벌어진 아이의 이 낯선 행동은 마치 아이가 짊어진 커다란 마음의 짐이 벌써부터 표출되는 것처럼 보였다.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의 선택이 아이를 앞으로도 힘들게 할 것만 같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부둥켜안고 생전 처음 본 간호사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간호사는 한참을 바라보다 말없이 가버렸다. 그것은 암묵의 허락이었다.



그날 밤은 유독 길었다. 좁디좁은 병원 침대에 아이와 나란히 누워 한 손에는 진통제를 쥐고 또 다른 손으로는 밤새 아이를 쓰다듬었다. 그동안 내 눈앞에는 세쌍둥이를 건강하게 출산하자는 맹목적인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아이들을 낳고 아들 넷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혹독한 현실이 피부로 다가오면서 이 나날들을 함께 이겨내야 할 큰애에 대해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들어왔다.


출산 직후의 공허함, 큰애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복잡 미묘하게 얽혀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퉁퉁 부운 눈으로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땀에 젖은 머릿결을 한쪽 방향으로 쓸어 올려주었다. 아이의 표정은 천사같이 평온해 보였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아이가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이의 콧구멍은 씰룩거렸고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엄마! 아기들 보러 가자. 동생들 보고 싶어. 응? 응?”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들을 차례대로 침대 바구니에 조심히 눕혀 데리고 왔다. 아기들은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엄마 젖을 찾는 듯한 시늉을 했다. 앵두같이 조그마한 입술들이 쉬지 않고 바삐 엄마 젖을 찾았다.     

“엄마! 아기들 너무 귀여워. 꼭 인형 같아. 안녕, 얘들아. 내가 네 형님이다!”     

큰애는 아기들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병실 한 켠을 가득 메운, 지금 이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네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꿈같이 느껴졌다. 가슴이 벅찼다.

‘내가 이 아이들의 엄마구나! 너희들의 엄마가 될 운명이었구나!’     



우리는 아기들을 바래다주고 병원 복도를 지나 편의점으로 향했다. 초코빵을 한입에 베어 물고 바나나우유를 한 손에 쥔

아이의 얼굴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슬쩍 이야기했다.


“알지? 엄마 산후조리원 들어가면 2주간은 못 보는 거. 엄마가 얘기했었잖아.”     

겨우 내뱉은 한마디에 이미 나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엄마의 눈물을 아이가 알아차릴까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응, 엄마. 나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 말씀 잘 듣고 밥도 잘 먹고 숙제도 잘하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 아기들 낳느라 많이 아팠지? 내가 나중에 집에 가면 마사지해줄게.”     

아이의 그 말에 가슴이 철렁거린다. 일곱 살 아이의 대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는 부쩍 커 있었다. 엄마를 위로해줄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아이는 성장해 있었다.     






산후조리원에 도착해서도 큰애 생각이 났다. 나는 밤마다 아이를 생각했고,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한장 한장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그때 나는 ‘큰애앓이’를 했던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큰애앓이라는 표현은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정체불명의 단어지만 둘째를 출산한 엄마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큰애앓이는 아이와 나 사이에 깊숙이 박힌 고리를 조금씩 느슨하게 만들어 그 틈으로 새어나온 사랑을 둘째에게 내려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 같다. 누구나 이별을 하면 그 사람을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가슴앓이의 과정을 겪듯이 나 또한 아이와 내가 온전히 특별했던 그 순간들을 다시 한 번 가슴속에 새기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세상의 전부였던 너. 내 심장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너. 내게 큰애가 세상의 전부였던 것처럼 큰애에게도 난 세상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세 명의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은 아이에게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보다 더 잘 이겨내주었고 엄마가 생각한 것보다 바르고 단단하게 커주었다.      


지난 8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난 서툴고 미숙한 엄마였다.

아이에게 미안했고 고마웠고 불안했고 행복했다.

너로 인해 나는 수만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엄마가 되었다.


     

아들아,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나의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슬플 정도로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내게 찾아왔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아니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면 그렇게.

너를 사랑한다.

너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넌 아직도 내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십년 전, 내 품에 안겨있던 아기는 어느덧 열살이 되었다.

이제 아이는 동생을 안아줄 정도로 성장했다.


이전 06화 나 홀로 출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