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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Feb 07. 2019

아들 넷 ‘육아 지옥’, 독박 육아를 결심하다.

당장 오늘 이모님과 함께 육아를 하면 혼자 할 때보다 몸은 당연히 편할 것이다.
그러나 포근한 이 그늘 밑에 계속 있다면 홀로 서기는 영영 힘들 것이다.
두려웠지만 결단이 필요했다.  

    




세쌍둥이를 키우면서 잠을 기대한 것은 사치였다. 생후 50일, 아기들의 뱃골이 작다보니 수유량과 수유 간격 이 크지 않았고 한 아이당 하루 평균 8~10회 정도 수유를 했다. 배변 활동은 또 어찌나 왕성한지 한 아이당 소변 10~15회, 대변 2~4회, 나는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아이 들의 먹고 싸고 자는 욕구에 집중해야 했다. 거기에 1호, 2호, 3호 돌아가며 틈틈이 모유까지 먹이려니 하루가 너무 버거웠다.


물론 내 작은 젖은 넘쳐나는 세 아이의 식욕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큰애를 키우며 모유가 아이를 컨트롤하기에 좀 더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이번에는 모유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전체 수유 횟수 중 삼분의 일 정도만 아이별로 젖을 물렸고 세 아이에게 공평하게 모유를 먹이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모유를 먹으려 하는 아이는 모유 횟수를 조금 더 늘리고, 분유를 먹으려 하는 아이는 분유 횟수를 조금 더 늘렸다. 엄마의 모유가 아이에게 주는 장점은 일일이 적기 힘들 정도로 넘쳐나지만 육아라는 거대한 산맥에서 산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엄마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나의 하루는 너무나도 빨리 돌아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시 나에게 하루의 개념은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1호가 울면 2호가 따라 울고 2호가 잠이 들면 3호가 깨어나고, 3호에게 젖을 물리면 1호가 배고프다고 보채는 단 30분의 휴식도 주어지지 않는 육아,

단 한 시간의 꿀잠도 허락되지 않는 육아,

단 한 끼의 식사도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는 육아,

내게 하루는 24시간 끝나지 않는 ‘육아 지옥’이었다.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차디찬 현실의 바다에 뛰어드니 턱밑으로 자꾸 차가운 바닷물이 차올라 더 이상 숨을 쉬기가 벅찼다.     

밤마다 잠을 못 잔다. 한 시간을 내리 자본 적이 없다. 수면 교육을 시켜야 할까.
막내를 조금 울렸더니 온몸에 땀이 흠뻑하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다.
잘하고 있는 걸까. 나아질 수 있을까. 어렵다.
-2016년 6월 4일(생후 52일) 육아일기 중에서     



생후 100일, 수유 횟수는 6~7회로 줄어들었고 아이들이 중간에 깨지 않고 자는 시간도 조금씩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은 통잠을 자지 않았고 한 아이 당 밤에 세 번씩은 깼다. 1호 세 번, 2호 세 번, 3호 세 번. 그렇게 나는 밤중에도 9번 이상을 일어나 차례대로 아이들을 다시 재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비몽사몽 잠에 취해 똑같은 얼굴의 일란성 쌍둥이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1호를 수유하고 나서 3호에게 줄 것을 다시 1호에게 수유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고 한 아이의 기저귀만 연이어 갈기도 했다.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매일 되풀이되는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현실에서 부족한 잠은 저질 체력으로 이어졌고 나는 한 마리의 좀비가 되어 있었다. 초점 없는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시커먼 다크서클이 가슴까지 내려온 나의 몰골은 마치 <워킹데드>에 나오는 좀비 같았다.      


‘잠이 뭔가요? 잠이 먹는 건가요? 자본 게 언제였더라? 자… 고… 싶… 다….’     


내리 자고 싶었다. 대학 시절 밤새 술 먹고 하루 종일을 내리 자던 그 꿀 같은 시절은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세 시간만, 단 세 시간만 내리 자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지 않으면 나도 잘 수 없는 법! 나는 자기 위해, 아니 살기 위해 수면 교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퍼버법, 안눕법 등 여러 가지 수면법을 시도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가장 큰 문제는 수면 교육에는 일관성이 필요했는데 출퇴근 이모님이 있을 때는 내 방식대로 밀어붙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규정상 이모님은 엄마의 육아 방식을 따라야 했지만 그녀는 수면 교육을 시키려는 나를 요즘의 별난 엄마로 취급하며 매번 못마땅한 시선을 주었다.     


“우리 때는 이렇게 안 키웠는데 요즘 엄마들은 참…. 울면 아이를 바로 데리고 나와야지! 포대기에 업어서 재워봐. 애들은 포대기에 업어서 재워야 해. 그리고 엎어서 재워. 그래야 깊게 오래 자. 두상도 예뻐지고.”     


이상하게 잔소리를 듣는 것 같은 이 느낌,

왠지 모르게 고분고분 대답해야 할 것 같은 이 느낌,

내 집이지만 가시방석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면 교육을 강하게 밀어붙여야겠다는 생각에 자장가를 틀어주고 일정 시간 안아준 뒤 푹 잠들기 전 아이들을 차례대로 눕혔다. 그러나 눕히자마자 아이들은 어김없이 울어댔고 30분이 흘러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다. 울음소리를 듣는 내내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울컥하며 목 안에 뜨거운 것이 고이는 걸 참고 또 참았다. 아이들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화장실에서 나온 이모님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완이 엄마, 애기들 우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자니 너무 안쓰럽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나 못할 것 같아.”    

  

어렵게 구한 이모님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을이었다. 아이가 안쓰러워 눈물을 보이는 이모님의 얼굴을 보며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렇게 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남들 잘만 하는 수면 교육이 왜 난 안 될까? 이모님 없이 독박 육아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   

  

뒤적뒤적 헤집어진 생각들이 내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엉켜놓았다. 이모님의 눈물은 어떤 형태이든 아이에 대한 애정을 의미했다. 그러나 아이의 울음소리에 엄마는 찢어지는 가슴을 겨우 잡고 담담하려고 애를 쓰는데, 제3자가 눈물을 보인다는 건 내겐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잠시 주어진 토막잠조차 이루지 못한 채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지 못하고 결국 밤을 새웠다.      




세쌍둥이를 키우다보니 이 사람 저 사람 훈수를 두었다. 이모님, 친정엄마, 시어머니, 친척. 모두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을 보며 울고 뒤엉키고 짜증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했다. 하지만 그들이 본 아이들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뿐 24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는 건,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건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 무게는 앞으로도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했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내 주관대로 그리고 소신대로 육아를 이끌어가는 게 필요했다.      


언젠가 세쌍둥이 카페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세쌍둥이 독박 육아는 적어도 생후 여섯 달 전에는 시작해야 한다.’    

 

생후 여섯 달 이후에도 독박 육아를 하지 못하면 아이들이 여러 사람 손에 익숙해져 결국 독박 육아를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당장 오늘 이모님과 함께 육아를 하면 혼자 할 때보다 몸은 당연히 편할 것이다. 그러나 포근한 이 그늘 밑에 계속 있다면 홀로 서기는 영영 힘들 것이다. 두려웠지만 결단이 필요했다.     




 


2016년 8월 25일 생후 134일, 그 일이 있던 바로 다음 날부터 나는 독박 육아를 시작했다. 독박 육아를 결정한 이후 하루하루는 정말 힘든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독박 육아를 결정하면서 아이들을 내 방식대로 교육시킬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으며, 간혹 모험도 해볼 수 있었다.


큰애를 키웠을 때는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시도를 과감히 실행했다. 그저 내 소신대로 주관대로 나는 커다란 배의 돛이 되어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듯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나의 여행에는 로맨틱한 드라마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끝없는 실패가 있었고 그 실패를 이겨내는 고통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 끝에는 햇살 같은 순간도 찾아왔다. 독박 육아를 한 지 한 달 후부터 아이들이 하에 12시간 통잠을 자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나는 예전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그런 일상의 중심에 살고 있다. 자는 아이들을 CCTV로 지켜보며 집 앞 식당에 가서 저녁밥을 먹기도 하고, 큰애의 숙제를 봐주기도 하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나만의 저녁 시간을 갖기도 한다. 수면 교육은 내게 큰애를 키웠을 때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저녁의 자유를 선물해주었다.   

   

이따금 나는 ‘그날의 결단이 없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날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난 아직도 이모님과 함께일 것이다.










<엄마를 좀비로 만든 50일 무렵의 세쌍둥이>


<아이들이 동시에 우는 사진>

세 아기가 동시에 우는 것, 혹시 상상되시나요?:(





#세쌍둥이

#독박육아

#삼둥이

#아넷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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